배호의 ‘능금빛 순정’-내 형제들이 주는 위로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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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배호의 ‘능금빛 순정’-내 형제들이 주는 위로와 용기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은 경북 안동 고성이씨의 종택인 ‘임청각’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 나는 이상룡 선생의 후손으로 안동 산골 작은 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제대로 된 공부는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어려운 집안형편에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욕심이었고, 결국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무작정 형과 누나를 따라 상경하였다. 10남매 중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의지할 곳이라고는 세 남매가 유일했다. 집안일도 모두 함께 해결해 나가야 했다. 신문배달 등을 하며 학업을 이어가던 우리 남매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고, 특히 나에게는 뒷산에 오를 때가 가장 즐거웠다.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 부르며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힐 때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이때 형·누나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조금씩 건너 들었는데, 당시 배호·차중락·김정호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명곡들이 많았던 덕에 지금도 그 시절 노래를 자주 부르곤 한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배호의 <능금빛 순정>인데, 이 곡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같은 곡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곡을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후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블록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적이 있다. 평소 다니던 성당 수녀님이 학업을 이어가기를 조언해주신 덕분에 덕수상고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곧바로 상업은행에 입사하였는데, 그 당시 은행은 꽤 좋은 직장으로 통했다. 은행의 상고 출신 후배들이 은행 내 고졸자와 대졸자 간 차별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나에게 은행 노동조합에서 활동해주기를 간청해 왔다. 당시 노조 집행부에는 대졸자가 많았는지 차별이 커지게 되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상업은행 노동조합 대의원을 맡게 되었다.

그렇게 첫 발을 내디딘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은 상업은행 노조위원장, 금융노련 위원장, 금융산별노조 위원장을 거쳐 한국노총 위원장을 맡는 등 30여년 넘게 이어졌다. 늘 갈등과 대립에 맞서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하는 노동운동가로서의 삶 가운데 노동현장에서는 <광야에서>, <솔아솔아> 같은 노래가 자주 등장했다. 때문에 노동현장 동지들 여럿이 모여 노래방이라도 갈 때면 대중가요가 분위기 전환을 하곤 했는데, 이럴 때 나는 오래전 형·누나에게 배운 배호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 배호의 노래를 부를 때면 노동운동현장 동지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나의 목소리가 배호 노래에 딱 맞춘 듯이 잘 어울린다는 호평을 들으면서 그의 노래를 더욱 즐겨 부르게 되었다. 특히 <능금빛 순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이라 앙코르 요청을 가장 많이 받기도 했다.

배호 노래를 부를 때면 형·누나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외롭지 않기를 바랐던 그 따뜻했던 마음이 느껴진다. 남매애가 유난히 돈독한 우리 10남매는 아직도 매년 연말연초에 한자리에 모여 회포를 푼다. 매년 전국 각지에서 모여 이어나가는 남매계(契) 또한 형제애를 키워가는 소중한 기회다. 남매들은 늘 나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지난 40여년간 노동운동가로서 현실과 부딪치며 끊임없이 노동에 관해 고민해 왔던 삶을 열렬히 지지해주던 이들이었다. <능금빛 순정>은 나에게 소중한 10남매가 전하는 위로와 용기의 노래이다. 그들이 전해준 힘을 얻어 더욱 노동자가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랑이 그립거든 손짓을 해요
말못할 순정은 빨간 능금알
수줍어 수줍어 고개 숙이던
조용히 붉어지는 능금꽃 순정
사랑을 따려거든 손짓을 해요
꽃바람 치며는 빨간 능금알
외로워 외로워 눈물 흘리다
말없이 떨어지는 능금빛 순정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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