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전문’ 변호사 최강욱… 법의 난해한 위선을 편하고 무섭게 까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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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의 3대 적폐라면 국정원·검찰·언론 적폐를 꼽는다. 특히 검찰 적폐는 사회정의를 뒤틀어놨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오래전부터 이 ‘괴물검찰’과 맞서며 검찰개혁을 주창한 사람이 있다. 그는 팟캐스트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검찰개혁 강연으로 유명하다. 최근 그는 <권력과 검찰-괴물의 탄생과 진화>(2017·창비),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2017·창비)라는 책을 연속 출간했다. 그는 최강욱 변호사(49)다.

박근혜 정권의 3대 적폐 배경에는 뿌리 깊은 ‘진짜 적폐’가 존재한다. 바로 군사문화 적폐다. 최 변호사는 군법무관을 10년 하면서 그 적폐를 꿰뚫고 있다. 게다가 그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5년째 하고 있다. 군과 검찰, 언론 등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우리 사회의 ‘최고권력’을 체험했다. 보통 이 권력에 순치되지만 그는 권력의 적폐와 맞서 싸워 대부분 이겼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그는 ‘적폐청산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고 결론 맺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적폐청산 전문’ 변호사 최강욱… 법의 난해한 위선을 편하고 무섭게 까발리다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

“학문적으로 봐도 ‘법은 정치의 시녀다’라는 말도 있고, 법이 생성되는 과정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법이 집행되는 과정은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법률가들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 법률가를 주권자의 명령대로 서게 하려면 결국 정치가 바로서야 한다.”

그는 특권에 대한 환상과 사회적 묵인 등이 법률가로 하여금 선민의식을 만들었고, 결국 이것이 ‘괴물검찰’을 만든 비극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의 칼을 뽑아 들었다. 비법조인 출신 법무부 장관 임명과 법무부의 탈검사화, 과감한 검찰 인사, 민간 충원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이제 시작이지만 검찰 적폐청산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가.

“법무부와 검찰에 대한 일련의 인사가 진행됐다. 대통령과 정권의 의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참여정부 때 검찰의 속성을 경험했고, 정권을 잃었을 때 ‘권력의 개’(격한 표현이지만 그대로 쓴다)로 충실했던 검찰을 겪어보고도 인식하지 못했다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은 사람이 이뤄내고 제도로써 완성되는 것인데…, 좀 지켜봐야 한다. 중간간부 이후 인사를 보면 ‘미흡하다’는 느낌이다. 장관이 확실히 사람 됨됨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법조 경험이 없는 장관 옆에서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는가. 특히 ‘최변’(최강욱 변호사) 같은 사람이 조언해야 하지 않나.

“나요?(허~허~) 내가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

-법조개혁 특히 검찰개혁에 깊숙이 조언하는 실세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나도 그런 얘기 ‘진하게’ 들었다. 당선자 발표 다음날(5월 1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민정수석에 조국 교수 내정설이 있는데, 조 교수가 전화를 안 받으니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조 교수에게 ‘잘 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몸과 마음이 무겁다’는 답신이 왔다. 그래서 내가 기자들에게 ‘민정수석 수락할 것 같다’고 알려줬다. (그게 전부다) 친한 친구인 민주당 김경수 의원 만난 것이 하마평에 오르고(하~하~), 지금은 친분으로 인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내가 그럴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와 조국 교수의 인연은 30년이 넘는다. 그는 대학(서울대 법대) 입학 논술시험을 볼 때 시험지를 배부하던 당시 조국 조교를 처음 만나 친하게 지냈다. 그는 한인섭 교수의 형사법 강의에서 ‘유전무죄’ 탈주범 지강헌에 대한 리포트로 A플러스 학점을 받았다. 학부생의 이 리포트는 학술지 <법과 사회>에 게재됐는데 조국 조교가 이 학술지 편집을 맡았다고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대학원(석사)에서 조국 교수와 같은 형사법을 전공했다.

그때 A플러스 학점을 준 한 교수는 현 정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이다. 그의 계보 조국 교수(청와대 정무수석)-한인섭 교수(법무·검찰개혁위원장)로 볼 때 현 정부 검찰개혁 실세와 가까운 것은 맞다. 최 변호사는 “대학 때 평생을 좋아하는 인연을 만들었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상의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서울법대 나온 것은 자랑하지 않지만 그런 선배를 만났다는 것만큼은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상은 올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1968년 전북 남원 출신이지만 전남 보성과 여수 등지에서 자랐다. 어릴 때 여수에서 열차 타고 남원 할아버지 집에 올 때 플랫폼 표지판을 보고 한글을 다 깨우쳤다고 한다.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을 지낸 정남기 선생의 조카사위이고, <혼불>의 소설가 최명희가 당고모이다.

그는 전주 전라고를 나와 1986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열렬하게 학생운동을 하지도 않고. 아주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그 경계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가’ 고민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사법시험을 보고 1차에 몇 번 합격하기도 했지만 “꼭 합격해야 한다는 치열함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 진학했던 그는 뒤늦게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했다.

1995년 연수원을 마치고 97년 군법무관을 시작할 때 마침 ‘단군 이래 처음’ 기득권층이 떨었던 사건인 병무비리 사건이 터졌다. 병무비리 합동수사단이 만들어졌다. 그는 여기서 기득권층과 파견된 검사들의 위선, 게다가 언론까지 가세하는 참담한 실태를 목격했다. 사실 그는 ‘세상은 올바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체험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급장 선거에서 내가 당선됐는데, 선생이 원하는 부잣집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선거하는 등 세 번이나 투표를 다시했다. 나중에 선생은 나보고 ‘너는 분단장 하라’고 하고 부잣집 아이를 기어이 반장을 시켰다. 어린 내가 울면서 선생에게 항의한 기억은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내가 ‘삐뚤어진’(세상을 냉철하게 보는) 계기가 그것이다. 그 뒤로도 선생이 ‘너는 왜 봉투를 가져오지 않았나’라는 말과 선생에게 소홀했다는 이유로 전교 1등을 했는데도 상을 주지 않는 등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이후 ‘세상은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우쳤다. 그것은 커서 공직에서도 똑같았다.”

그는 팟캐스트나 책에서 검사의 생리에 대해 자세하고 쉽게 설명한다.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 세계에 해박하다. 그는 “형사법을 공부해서이기도 하지만 검찰의 적폐를 처절하게 체험한 결과”라고 말했다.

2001년 총기분실 사건이 발생했는데 헌병은 한 원사를 진범으로 구속했다. 그러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 그는 군검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의 민간 법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 법원장은 법조계에서 존경받는 인사였다. 그런데 그 법원장은 “조직에 있는 사람이 대세가 정한 것을 거스르면 서로 힘들다, 당신의 위치를 생각하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지역 검찰청도 마찬가지였다. 검사나 판사 모두 진실이나 정의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혼자 수사해 고문으로 사건이 조작된 것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사단장은 사건을 무마하려고 기무사를 동원, 뒷조사를 하며 압박했지만 ‘이 사건을 덮으면 기자회견을 해 폭로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그는 진실을 가려내 억울한 원사를 구하고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한 헌병을 처벌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좌천’으로 전방근무를 ‘명’ 받았다.

2016년 12월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최강욱 변호사와 정봉주 전 의원이 문재인 당시 전 대표와 대담하고 있다.  / 정봉주의 전국구 제공

2016년 12월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최강욱 변호사와 정봉주 전 의원이 문재인 당시 전 대표와 대담하고 있다. / 정봉주의 전국구 제공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진행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의 오지 전방인 인제·원통을 담당하는 3군단 법무참모로 전출됐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는 전무후무한 ‘대형사고’를 쳤다. 전임 군단장 비리가 확인된 것이다. 그는 “부사관 가족들이 어렵게 잣을 따 모은 장학기금까지 횡령했다는 것을 알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횡령한 군단장은 4성 장군으로 승진해 연합사 부사령관이라는 요직에 있어 아무도 그의 비리를 말하지 못했다. 그는 치밀한 수사 끝에 결정적인 비밀장부를 찾아내고 결재를 거부하는 국방부 장관을 설득해 4성 장군을 국고손실죄, 업무상 횡령으로 구속했다.

그의 칼끝은 더 높은 육군참모총장까지 겨눴다.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진급비리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남 총장은 진급심사를 공정하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육본 인사운영실을 압수수색해보니 모두 쇼였다”면서 “그가 국정원장이 됐을 때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남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군개혁에 항의해 전역한 것으로 ‘포장’돼 있다. 그리고 그는 지난 대선에서 ‘종북세력을 뿌리뽑겠다’며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군을 ‘휘젓던’ 그는 2005년 전역해 변호사를 시작했다. 군 인권을 위해 군사법 전공 교수와 군사법연구회(후에 평화군사법연구소로 개칭)라는 학회를 만들었다. 이때 같은 학회에서 활동하던 대학 1년 후배가 바로 이정희 변호사(후에 통합진보당 대표)였다. 그는 이 변호사 추천으로 민변에 가입해 군 불온서적사건, 총리실 민간인 사찰사건, 천안함에 대한 <조선일보> 왜곡보도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민변 사법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법무법인 청맥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정봉주 전 의원과 함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를 진행한다. 이는 수백 개 팟캐스트 중 1~5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다. 시나리오나 원고 없이 이뤄지는 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그는 편안한 말솜씨에 박식한 상식으로 ‘포터블 포털’(움직이는 포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정 전 의원이 국민을 대변해 ‘떠들다’ 감옥 간 것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었다”면서 “같이 떠들자는데 그것도 못 도와주나 싶어 시작한 것이 3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팟캐스트 덕분에 유명인사가 됐다.

“지금도 별로 유명하지 않다.(하~하~) 최근 동영상 팟캐스트에 나가고, 영화 <공범자들>에 방문진 이사로 잠깐 나온 것을 본 사람들이 전철에서 알아보더라.”

-(단도직입적으로) 정치하려는 것 아닌가.

“2008년부터 서울에 출마하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아직) 깜냥이 안 된다고 거절했다. 나는 ‘네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당당히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정치에 관심 많은 그가 정치입문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물론 ‘아직’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스스로 ‘허접한 변호사, 4남매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3녀1남을 둔 그는 경기도 평촌에 살다가 아이들 학원 보내기 싫어 학원이 없는 곳(용인시 양지면)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최 변호사를 기자가 탐구했던 법조인과 비교해 보면, 어린 시절 선생에 대한 실망이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 점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닮았다. 그는 “검찰은 선의로 대하면 선의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이렇게 적폐를 알고 상대하는 기술은 이재명 성남시장을 보는 듯하다. 흔히 변호사에게서 소홀한 인문학적 풍부함은 박원순 서울시장쯤 돼 보였다.

<글·사진 원희복 선임기자·우철훈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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