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종철 “언론인도 노동자란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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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들불처럼 번진다’고 표현하나. 최근 자유언론에 대한 폭발적 요구가 그것이다. 5년여 만에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이 동시파업에 돌입한다. 이미 YTN과 EBS 사장은 퇴진했고, 일부 해직기자의 복직이 시작됐다. 이제 시기의 문제일 뿐 이 들불은 9년간 쌓인 언론적폐를 훨훨 태워버릴 것이다.

이 자유언론의 들불은 벼락과 같은 단 한 번의 불씨나 지난겨울 촛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내내 찬 바람 몰아치는 광화문광장에서, 방송사 앞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자유언론을 외친 사람들 덕분이다. 그렇게 투쟁했던 단체를 꼽으라면 현직 언론노동자 단체인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편향보도를 집요하게 감시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이사장 고승우), 진보적 언론인 모임 새언론포럼(회장 강성남) 등이 있다. 이들을 종합적으로 이끈 단체가 자유언론실천재단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종철 “언론인도 노동자란 각성이 필요하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 언론계 원로

김종철 이사장(73)은 19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오랜 재야운동을 거쳐 <연합뉴스> 사장을 지낸 언론계 원로다. 김 이사장은 최근 언론 민주화 요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연한 것이다. 1700만 시민의 촛불혁명으로 박근혜가 탄핵됐다. 촛불시민의 요구는 검찰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 이 세 가지가 가장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넉 달 동안 재벌 부회장이 구속되고 국정원을 비롯해 검찰·대법원 등 사법개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맞춰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과거에도 공영방송을 비롯한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사에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더라도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정권을 홍보하고 이에 반대하는 직원을 탄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른 분야의 개혁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데 비해 언론적폐 청산은 더디다는 느낌을 줬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을 가질 만했다. 문 대통령은 언론개혁에 권력이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처럼 노골적으로 할 수 없는 데다, 국회가 여소야대라는 점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시절 MBC가 중계하는 TV토론에서 ‘MBC가 무너졌다, MBC가 개혁돼야 한다’고 폭탄선언을 할 정도로 언론의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MBC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현 사장을 교체해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이 6(보수)대 3(진보) 그대로여서 또 극우적 인물을 사장으로 뽑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MBC노조와 시민행동이 요구하는 것은 고영주 이사장과 최소한 김광동 이사는 물러나라는 것이다. 그래야 5대 4가 돼 MBC 사장을 제대로 뽑을 수 있다.”

고영주 이사장은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한 인물이다. 이로 인해 문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돼 있고, 사내 블랙리스트를 만든 혐의로 노조에 의해 고발된 상태다. 그러나 이런 소송에 대해 고 이사장은 대법원까지 질질 끌 것이 뻔하다. 그래서 노조와 시민행동이 추진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방통위가 방송사 경영진 해임 권한이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고, 과거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때도 적용됐다”면서 “최근 헌법학계에서도 방통위가 경영진 해임 권한이 있다는 법리해석이 많다”고 말했다.

-이효성 방송위원장 인선은 무난한 인사였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할 때 자주 만나 언론개혁과 진보언론에 대해 의견을 나눴던 사이다.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이 위원장도 방문진의 부당노동행위 관리·감독 잘못,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해임권 행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권이 바뀔 때 특히 공영방송이 문제다. 경영진 선출을 여야 나눠먹기 식으로 하니 생기는 문제다. 구조적 해법은 없나.

“언론장악방지법이 발의돼 있다. 이 법에는 지금의 KBS 이사진 7대 4나 MBC 방문진 이사진 6대 3을 7대 6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문 대통령은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그 역시 여야 추천이라면 정치적 논리에 빠질 것이 뻔하지 않나. 오히려 노조와 같은 직원대표를 이사로 파견하거나 언론학자·언론단체 등에서 이사로 파견하는 등 이사 선출을 다변화하는 것이 중립적이지 않을까.
 
“곤혹스런 문제다. 중립적이라고 칭찬했던 일본의 NHK도 아베 정권이 우익 이사장을 임명하니 신뢰도가 대폭 떨어졌다. 사실 지금 체제라도 방문진이나 KBS 이사회가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사장에 임명하면 된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다.”

요즘 언론개혁 요구가 들불처럼 번지는 분위기에서 주된 관심사는 공영방송이다. 워낙 과거 적폐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외 언론이나 특히 신문 등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공영적 성격이 큰 <서울신문>은 공영방송 문제가 정리되면 곧 (개혁) 대상이 될 것”이라며 “<연합뉴스>가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낙하산으로 <연합뉴스> 사장을 해 할 말은 별로 없지만…(하~하~)”라며 “국가 기간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연간 300억원 넘게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공정성을 잃고 부역행위를 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신문의 선거 영향력 시대 끝나”

최근 공개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발언에서 보면, “인터넷은 종북좌파 잡았다, 인터넷 청소한다” 혹은 “언론이 잘못할 때 쥐어패는 것이 정보기관의 역할”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에 김 이사장은 “공작으로 SNS를 좌지우지하겠다는 망상이고 착각”이라고 일갈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공영방송은 물론,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기성 보수언론, 게다가 종편의 24시간 집요한 보도에도 촛불혁명은 꿋꿋하게 성공했다. 언론환경이 과거와 달라졌다. 

“시대가 변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이 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 10~30대는 종이신문을 거의 안 본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가보면, 스마트폰 SNS로 ‘박근혜가 왜 탄핵돼야 하는가’를 실시간 다 안다. 보수·진보언론 모두 시대의 혁명적 변화를 일깨워주지 못한다. 미디어환경 변화를 기성언론이 따라가지 못한다."

-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기자 의식이 중도·진보(4.58)에서 4년 만에 중도·보수(5.54)로 바뀐 것으로 나온다. 현장에 있으면 젊은 기자들에게서 치열한 문제의식이나 열정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옛날 기자들은 기자를 단순한 직장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민주화운동 투사라는 생각도 했다. 요즘 기자들은 임금이 오르면서 소시민화된 것 같다. 심지어 일단 언론사에 들어오면 기득권 세력에 편입됐다고 안주하는 것 같다. 보수언론은 인사권을 쥔 사주의 눈치봐야 하고…. 승진·인사에 눈치 보는 것은 진보언론도 마찬가지 아닌가.(하~하~) 편안하게 살면서 출세욕을 가진 기자들이 많다.”

7월 13일 자유언론실천재단 김종철 이사장이 함세웅 신부(맨 왼쪽)와 이해동 목사(왼쪽 두 번째)와 함께 70년대 언론 민주화운동에 관해 회고 대담을 하고 있다. /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7월 13일 자유언론실천재단 김종철 이사장이 함세웅 신부(맨 왼쪽)와 이해동 목사(왼쪽 두 번째)와 함께 70년대 언론 민주화운동에 관해 회고 대담을 하고 있다. /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집필한 50여권 책 중에는  문학평론집도

김 이사장은 1944년 충남 연기(세종시)에서 태어났다. 6·25전쟁 다음해 집안이 기울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집안형편상 법대나 상대에 가려 했지만 고3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국문과(서울대)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전인 1967년 <동아일보>에 입사했지만 학군장교(ROTC)로 군대에 가야 했다. 마침 1968년 1·21사태(대규모 북한 무장간첩단 침투사건)로 ‘빡세게’ 군대생활을 했다. 1970년 복직해 수습기간을 거쳐 71년 사회부 기자를 시작했다.

그는 “솔직히 당시 사회과학은 물론 전공인 국문학 공부도 잘 안했다”면서 “72년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 보고 김성수가 친일파인지 알았다”고 말했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인 당시 중앙정보부 보도지침에 항의해 그를 비롯한 기자 180명이 노동조합(당시는 불법)을 결성하며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이 한국 언론사의 한 획을 긋는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이다. 이 선언은 31개 신문·방송·통신으로 이어졌고, 권력은 사주에게 압력을 가해 기자들을 해고하는 것으로 끝났다.

김 이사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78년 10·24 4주년을 맞아 보도되지 못한 사건 200여건을 모아 등사기로 밀어 한일관에서 발표했다. 이를 주동한 기자 10명이 연행됐는데 이는 우리 언론사상 최다 기자 투옥사건이다. 그는 해직 후 1984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시작으로 1985년 문익환 목사가 주도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대변인·사무처장 등을 맡았다.

199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합류해 편집부위원장·논설위원을 하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들어 <연합뉴스> 사장을 해 그나마 유일하게 ‘단맛’을 봤다. 하지만 다시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 최근 촛불국면에서 함세웅 신부가 주도한 민주주의국민행동 공동대표 등 또다시 민주회복의 길을 걸었다. 2014년부터 자유언론실천재단을 이끌고 있다.

김 이사장이 언론계 후배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러한 민주 회복 과정에서도 기자임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내 이름으로 쓴 책이 20권, 내 이름으로 내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한 50권은 될 것”이라며 “생계를 위한 날품팔이였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평론집 <이문구론> <상업주의 소설론> 등을 내는 등 수준급 문학평론가다. 그는 “86년 민통련 대변인 시절 5·3 인천사태로 1년간 도피하는 동안 집에 있던 원고 모두를 압수당했다”면서 “그 원고만 잃지 않았으면 평론집 서너 권은 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 이사장은 2008년 인천재능대학 초빙교수를 하면서 종교·음악·교육·영화 등을 망라한 원고지 1만장 규모의 인문학 총서 5권을 저술했다. 기자가 ‘음악·영화 분야에도 조예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기자는 자료수집해 공부하면서 쓰는 것 아닌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알고 보면 대학시절 아마추어 PD로 세시봉을 기획할 정도로 이 분야에 조예가 깊어 <세시봉 이야기>라는 책도 썼다.

언론계 외부요인도 문제지만 이번에 삼성그룹 장충기 사장에게 보낸 문자에서 보듯이 기자 자신도 문제다. 김 이사장은 “솔직히 그들이(장 사장에게 문자를 보낸 기자) 먹고 살기 힘들어 그랬을까”라고 반문하며 “언론사 퇴직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글을 써야 하는데 안 쓴다, 언론인의 조로증도 문제”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저널리즘의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언론인도 노동자라는 각성이 있어야 한다. 노조가 그나마 공정방송·자유언론을 지켰다. 종이신문은 사양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특히 신문사 논설위원 등은 독창적인 자기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결국 뉴미디어 시대로 갈텐데 전문 미디어 재교육도 필요하다. 우리 자유언론실천재단도 전문 미디어 교육과 시민 미디어 교육을 할 계획이다.”

<글·사진 원희복 선임기자·우철훈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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