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과학기술인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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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학자가 15세기 초·중엽의 과학기술 중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50여개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 중 절반가량인 24개가 조선의 것이었다. 그 다음이 오스만투르크가 12개, 중국이 9개였다. 일본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는 조선이 세계 최강의 과학기술국이었다는 얘기다.

15세기 초·중엽은 세종시대다. 세종은 왕실과학기술연구소인 흠경각을 설치하여 과학기술의 연구를 독려했다. 강우량을 푼(약 3㎜) 단위까지 측정한 세계 최초의 측우기 발명, 세계 최초의 다연발포인 신기전 개발, 현대과학으로도 풀지 못할 수많은 과학적 미스터리를 갖고 있는 자격루(물시계) 발명 등이 가장 잘 알려진 것들이다. 특히 경복궁에 설치되어 있던 자격루는 중국 사신이 올 때면 해체한 뒤 그들이 다녀간 뒤에 다시 조립했다. 당시의 시계란 국가 기밀 중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과학으로도 자격루는 완벽하게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4월 27일 과학의 달을 맞이해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을 소재로 ‘한국의 과학(세 번째 묶음)’ 기념우표 3종 총 63만장을 발행했다./우정사업본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4월 27일 과학의 달을 맞이해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을 소재로 ‘한국의 과학(세 번째 묶음)’ 기념우표 3종 총 63만장을 발행했다./우정사업본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만 세계 최초의 기록을 가진 과학기술이나 발명품은 수없이 많다. 온실도 그 중 하나다. 이 온실에는 온돌을 깔았다. 현대 기술로 만든 온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온도와 습도, 채광조절은 물론 방수, 보온, 단열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온실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최초의 온실(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발견된 난로시설을 갖춘 온실)보다 무려 150여년이나 앞섰다. 어의인 전순의가 쓴 영농·요리서인 <산가요록>이 발견되면서 이 사실이 증명됐다.

뿐만 아니다. 수학과 천문학의 발전도 눈부셨다. 천재 천문학자인 이순지는 지구 공전 시간을 정확하게 산출했다. 그가 펴낸 <칠정산외편>에는 지구 공전 시간을 찾아내는 계산법이 적혀 있다. 그것에 따라 계산한 결과는 365일 5시간 48분 45초였다. 현대과학과 물리학을 동원해 계산한 것보다 단 1초 차이밖에 없었다(365일 5시간 48분 46초).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종교재판 발언이 나온 것은 1633년이다. <칠정산외편>이 출간된 지 거의 170년이 지난 뒤다. 지구 공전 시간의 계산은 달력 제조의 기초가 됐다. 정확성 여부를 떠나 그 당시 달력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조선, 청나라, 오스만투르크 등 세 나라 뿐이다.

빠뜨릴 수 없는 게 있다. 가장 과학적이고 뛰어난 글자, 한글이다. 필자는 컨디션이 좋으면 취재원이 말하는 속도로 한글자판을 칠 수 있다. 타자 속도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최적으로 자음과 모음이 조합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만 하면 필자처럼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아는 일본 친구에게 했다가 면박을 당한 일이 있다. 그의 입장에서 면박은 당연하다. 일본어로 한자를 칠 때는 소리나는 대로 영어 알파벳으로 쳐서 그것을 일본어로 전환해야 한다. 중국어도 마찬가지다. 한글 타자와는 속도 경쟁이 될 수 없다.
요즘 하루가 멀다고 대선 여론조사가 발표된다. 세계 최초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한 것도 세종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12년(1430년)에 무려 17만2648명에게 찬반 의사를 묻는 역사상 최초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여론조사는 1결당 10되의 세금을 물리는 ‘공법’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법 시안을 갖고 농민에게 의견을 물었다.

뜬금없이 세종대왕의 과학적 퍼포먼스를 소개한 것은 우정사업본부가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을 소재로 한 ‘한국의 과학(세 번째 묶음)’ 기념우표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무선(화약무기과학자), 우장춘(유전육종학자)과 함께 세종대왕이 과학기술정책가로 소개되어 있다. 이번 우표 발행을 계기로, 세계 최강의 과학기술 국가를 건설했던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다시 한 번 과학강국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전기를 다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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