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망토 시위 국회의원 김진태… 너무 ‘튕겨나간’ 현실주의자인가, 왜곡된 영웅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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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그동안 10여 차례 열린 태극기 집회 중 규모가 가장 컸다. 이 집회 클라이맥스 때 중앙에서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 사회자가 “여러분이 좋아하는 우리의 영웅 김진태 의원님을 모십니다”라고 소개하자 청중들은 환호했다. 돈으로 동원이 됐든, 자발 참여든 노인들이 대부분인 청중들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에게 열광했다.

김 의원은 보통 이런 환호를 받을 때 “여러분 내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 …여러분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다. 여러분이 내 이름을 계속 부르면 적들은 나를 더 잡아먹지 못해 안달한다”며 관중을 달랜다. 하지만 청중들은 “김진태”를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든다. 마치 무슨 사이비 종교집단이 교주를 맞이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실제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집회를 ‘cult-like’(광신적인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표현했다)

태극기 집회에서 극렬 참가자도 보통 태극기를 그냥 두르는 데 비해 김 의원은 아예 별도 제작한 태극기형 망토를 두른다. 보온 기능까지 되는 이 망토는 치밀하게 태극기 집회를 준비한 증거다. 그는 촛불시국의 대척점인 태극기 시위에서 가장 독보적인 ‘영웅’으로 등장했다. 그가 진실된 영웅이든, 일그러진 영웅이든 분명 그는 이 시대 상황이 만든 ‘인물’이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은 그를 ‘대통령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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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에서 4차례 국회윤리특위 회부

‘김진태의 영웅화’ 과정은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를 통한 청와대 호위무사로서 시작됐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후배 검사를 ‘운동권’이라고 한 것은 기본이고,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 첫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한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대한민국의 적’으로 표현했다. 아무리 그래도 국민의 선택을 받은 동료 의원을 ‘적’으로 몰아붙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의 종북몰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16년 10월 김대중 대통령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에게 “왜곡과 선동으로 눈이 삐뚤어졌다”고 말했다. 종북몰이에 신체 결함까지 더한 이 발언은 정파를 떠나 상식 이하였다. 이 발언은 장애인 단체로부터 ‘최소한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의식도 갖추지 못한 발언’이라는 비판과 함께 엄중한 사과 요구를 받았다.

그의 막말은 종북몰이를 넘어 ‘친정’(검찰)을 능멸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10월 그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부적절한 내연관계를 폭로해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을 무력화시켰다. 2013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 개입에 항의하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10월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자”는 발언으로 유족과 시민으로부터 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의 극언은 2015년 경찰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에 대해서도 이어졌다. 병사라는 주치의 주장을 옹호하고 일베 수준의 “빨간 우비 남성이 덮쳤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백남기 농민의 딸이 시댁 형님의 친정(인도네시아 발리)에 간 것을 두고 “발리로 여행을 갔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대 국회에서만 4차례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됐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시민단체는 그를 공천 부적격자로 지목했지만 당은 그를 공천했고, 그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박근혜 수호를 위한 막말은 ‘재선을 위한 공천용’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박근혜 경호’를 위해선 무엇이든 했다. 지난해 8월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의 호화 유럽 여행을 폭로했다. 이는 대부분의 정치인, 특히 보수정치인이 보수신문과 맞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2016년 11월 17일 “촛불은 바람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는 촛불시위 비난 발언을 시작으로 급기야 태극기 집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도대체 김진태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김진태 개인뿐 아니라 이런 ‘왜곡된 영웅’이 만들어진 정치·사회적 배경이나 과정 모두 연구 대상이다. 아마 후대 정치·사회학자들은 2016~17년 대한민국 정치·사회 현상으로 김진태를 사례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을까 생각된다.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궤적

김진태는 1964년 강원 춘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경북 성주 출신의 특수부대 군인으로, 부대가 있는 춘천 근무 중 교사 출신의 어머니를 만났다. 부친은 6·25 때 북한에 침투하는 특수부대에 근무했고,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해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강원 양구 출신 초등학교 교장선생이었는데, 6·25 때 북한군에 사살당했다고 한다. 그의 철저한 ‘보수·반공의식’은 이런 집안의 DNA가 일찌감치 내재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의 이종사촌은 판사 출신의 박선영 전 선진당 의원으로, 그 역시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23일 단식을 한 보수적 정치인이다.

그는 춘천 성수고등학교를 나와 1983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서울대 법대 시절 그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서울대 법대·군 검찰 출신의 최강욱 변호사는 “재학 중 그 사람을 전혀 몰랐다”면서 83학번 동기들 사이에서는 의원이 되기 전까진 눈에 띄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 동기동창인 이상규 진보당 전 의원도 김진태에 대해 “착하고, 성실하고, 학업에 열심이었다”면서 “보수적·우익적 성향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 대학생 대부분이 그랬지만 그 역시 시국에 저항하는 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80년대 대학에 들어가 백기완, 송건호 등이 저술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읽고 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것이 다 잘못된 거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 중에서 반민특위가 이승만의 방해공작으로 와해되어 친일청산에 실패함으로써 우리의 건국은 정당성을 읽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정의감에 치를 떨며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김진태 <법대로 살까? 멋대로 살까?> 221쪽)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공부에만 치중해 1986년 사법시험(28회)에 합격했다. 1992년 검사 임용을 앞둔 그에게 부친은 “강원도 출신이라고 하면 검찰에서 행세하기 힘들다”면서 “앞으로 너는 경북 출신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진태, <법대로 살까? 멋대로 살까?> 31쪽) 이후 김진태는 자신의 출신지를 ‘경북 상주’로 적었다. TK(대구·경북)의 전성기였던 노태우 정권에서 성공하기 위해 철저한 현실주의자적 면모를 보인 것이다.

그는 검사 시절 공안부에서 근무했지만 정통 공안부 검사가 아닌, 주로 선거법 위반 수사를 많이 했다. 검사 시절에도 그는 보수·극우적 모습을 보인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오히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과거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간첩조작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진실화해위원회에 파견돼 위원장인 송기인 신부의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그가 모신 송기인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은사로 통했다.

그는 17년 검사 재직 중 주로 지방으로 돌았을 뿐 요직에 앉아보거나, 굵직한 사건을 맡지 못했다. 이는 그가 검찰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강원지역의 한 기자는 “원주지청장 시절 그를 좋아하는 후배 검사들이 별로 없는 등 검찰 내에서도 신망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그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을 것이고, 그것은 바로 정치였다. 그는 출신지를 경북 상주에서 춘천으로 바꿨다. 정치입문 전까지 그는 보통의 변호사였다. 2011년 그는 이명박 정권을 비판·조롱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자신의 블로그에 링크하는 열혈 애청자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당 공천을 생각했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만큼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2월 19일 강원도 춘천시 퇴계동 김진태 의원 사무실 앞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김진태 사퇴’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 19일 강원도 춘천시 퇴계동 김진태 의원 사무실 앞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김진태 사퇴’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태극기 집회 땐 영웅, 지역구선 기피대상

그는 2011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과 당 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로 새누리당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의해 지역구(춘천) 공천을 따내고 박근혜의 전폭적 지지로 원하던 금배지를 따냈다. 그는 당선 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은 박근혜 대통령 덕분’이라고 자주 말했다.

친박 의원의 일원이 된 그는 ‘박근혜 보은’에 온몸을 바쳤다. 그동안 현실주의자로 숨겨졌던 그의 ‘보수·극우적 DNA’는 종북몰이 분위기와 맞물려 발현되고 극대화됐다. 탄핵정국에서 많은 친박 의원들이 숨을 죽일 때도 그는 ‘친박 돌격대’ ‘박근혜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그의 이런 행동이 한편(청와대)으로부터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그는 그치지 않았다. 그의 이런 행동은 ‘인지도를 높이려는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정도껏이다. 최근 박근혜 탄핵을 찬성하는 의견이 75~80%(여론조사상)나 된다. 거의 종교화된 일부 ‘친박단체’나 일당 동원이 의심스런 ‘노인단체’, 군복을 입은 ‘극우단체’의 지지가 진정 자신의 정치적 진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까. 철저한 현실주의자 면모를 보인 그가 이런 사실을 모를까. (이 질문에 대답을 듣기 위해 국회 보좌관 등을 통해 여러 번 연락을 넣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는 태극기 집회에서는 영웅으로 통할지 모르지만 정작 지역에서는 인기는커녕 기피대상이다. 지난해 12월 3일 춘천에서 ‘춘천 망신 김진태 즉각 사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가담한 인파는 2만명에 이른다. 전체 춘천시민이 28만명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시위대다. 춘천지역의 한 정당인은 “춘천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시위에 참여했다”면서 “다음 선거 때는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지역의 한 지역기자는 “그는 ‘또×이’ 취급을 받아 그가 기자실에 오면 대부분 외면한다”면서 “지역 시민단체를 고소하는 등 지역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역구에서 그가 주는 국회의원상을 거부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가 잇달아 나타났다. 수상을 거부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김 의원의 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받으면 오히려 기분이 나쁠 것 같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17년 1월 4일자)

김진태는 이런 여론과 지역 분위기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애당초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에 기초했던 인물이다. 법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검사 출신에, 게다가 여론 향배에 민감한 국회의원이라면 ‘주제파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그의 표정을 보면 오히려 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황당한 영웅주의자적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분할 때 ‘현실 검증력’ 기준을 적용한다고 한다. 현실에 대한 왜곡 여부가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분하는 잣대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진태의 현실 검증력에 의문이 든다. 물론 정 박사는 정신질환자가 아닌 보통 사람도 어느 정도 현실 왜곡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자신의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고, 상대방의 행동은 현상으로 판단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김진태는 금배지를 달게 한 동기, 즉 박근혜에 대한 보은을 생각하고, 시민들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의 막말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왜 황당한 영웅주의자가 됐을까. 권력자가 위에서 “잘한다, 잘한다”고 띄우는 바람에 너무 나가버린 것 아닐까. 그것도 본래 예상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점에서 ‘튕겨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너무 튕겨나간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병리현상이든, 사회적 다양성의 단면이든 ‘영웅 김진태 현상’은 사회·정치학자가 풀어야 할 2010년대 과제의 하나가 아닐까.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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