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신>의 주제곡 ‘파경’을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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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또 듣다 보면, 작금의 난세를 저지른 일부 속악한 무리들의 사술이야 응당 천벌을 받아야 할 짓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 전승의 무속 혹은 샤머니즘이 일거에 배척될 이유는 전혀 없음을 느끼게 된다.

온나라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한바탕 뒤집어질 듯 기우뚱한 가운데 마침 황대권 선생님의 글이 <경향신문> 7일자에 실려 다행이었다. ‘샤머니즘을 욕되게 하지 마라’는 칼럼이었다. 샤머니즘이나 무속신앙에 대해 서푼어치 지식도 없는 나로서는 최순실 등이 저지른 큰 죄악과 변괴에 대해 통분하면서도 그것이 ‘무속’이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저열한 비웃음으로 회자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하던 차였는데, 오랫동안 농토를 일구면서 도시문명의 비정함을 날카롭게 꿰뚫어본 황대권 선생님의 일갈은 반가웠다.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전체적인 논지를 되새겨 보자면, 우선 황대권 선생님은 “부끄러운 것은 샤머니즘을 빙자하여 온갖 악행과 기행을 일삼는 무리들”이라고 전제하면서 “한국 기독교가 세계 기독교 역사에 유례가 없는 발전을 기록하고 수많은 신자를 거느리게 된 것도 사실은 샤머니즘에 기댄 측면이 크다”고 강조한다. 과연 오늘날의 일부 대형교회들이 “목사와 무당의 구별이 가능한지 모를 정도로 무속적 요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떤 점에서 갈취하고 있음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대 도시인의 불안한 마음에 스며들어 기생하면서 그 마음을 진심으로 치유하기는커녕, 사특한 언어와 행위로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여 그 영혼을 황폐화시켜서 금전이나 권력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일부 무당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과 일부 종교의 폐악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영화 <만신>에서 17세 때 김금화(류현경 분)가 내림굿을 받는 장면.

영화 <만신>에서 17세 때 김금화(류현경 분)가 내림굿을 받는 장면.

한편 황대권 선생님은 비판받아 마땅한 그러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샤마니즘 그 자체가 도매금으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강조한다. “망가진 지구생태계를 다시 살려내는 데 샤머니즘의 치유 기능이 주효하다”고 여기는 서구사회의 인식을 거론하면서 예컨대 “새만금 갯벌 매립사업 때 해안가에서 해원 상생굿이 벌어졌는데, 갯벌에 사는 뭇 생명들의 영혼에 보내는 위로인 동시에 인간이 무수한 작은 생명들과 사이좋게 공존할 것을 권유하는 메시지”였다고 기억한다. 따라서 물신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더하여 사술에 빠진 자들의 국정농단에 화가 치밀어 분노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괴하게 일그러진 사술과 정신적 치유의 한 방식일 수 있는 샤머니즘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권한다. 귀담아 들을 만한 얘기다.

박찬경 감독 영화 <만신> 포스터

박찬경 감독 영화 <만신> 포스터

‘샤머니즘을 욕되게 하지 마라’는 칼럼

전북 김제시 금산면, 그러니까 모악산 일대를 잠시라도 돌아보다 보면 이러한 주장의 현실적인 느낌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민간 전승의 종교와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에서 소중히 여기는 영혼의 터전이 완주 일대에 펼쳐져 있어서 늦가을의 바람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 깊은 산중의 마음을 더듬어볼 수가 있다.

수류성당으로 시작해 보자. 오늘의 행정 지명은 화율리인데, 옛 마을 이름은 수류면이다. 그곳에 1895년에 축성된 수류성당이 있다. 1889년에 전주 전동성당과 완주 배재본당이 지어졌는데, 그 중 배재본당이 1895년에 수류면으로 이전하면서 수류본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랬는데, 현재의 건물은 옛 건물이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5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1950년 9월 24일 북한군에 의해 옛 성당이 전소되자 이 작은 마을의 신자들이 전란 이후에 그 지독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받은 구호물자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성당에 모아서 건축경비로 활용했다. 그런 마음을 생각하면 어느 성당에나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약간의 치장조차 없다는 점이 오히려 소박하고 또한 기품 있게 느껴진다.

수류성당에서 걸어서 30분이면 금산교회에 닿는데, 이곳 또한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깊어지는 곳이다. 100여년 역사의 ㄱ자 한옥 교회. 당시의 풍습으로 남녀 신자들이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와 나뉘어 앉도록 하기 위해 ㄱ자로 지었다. 서양의 종교가 오랜 전통 풍습을 가진 나라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구조로 지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녀유별이나 반상의 차별을 고집한 공간은 아니다. 대지주 조덕삼의 헌신으로 지어진 교회이지만 그는 교회 집사의 위치에서 자기 집의 머슴으로 일하던 경상도 출신의 이자익을 장로로 극진히 보필까지 했다. 이자익은 훗날 조덕삼의 후의로 신학교까지 다녀와서 목사가 되었고, 그 뜻이 금산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의 원평교회로 확대되었다.

여기서 금평저수지를 따라 얼마쯤 가면 동곡마을에 이른다. 옛말로 구릿골이라 부른다. 선천개벽(先天開闢) 이래 세상이 흉흉해져 작금의 세상 기운이 다하여 그 오랜 원한을 풀고(해원·解寃) 후천개벽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창했던 강증산의 개벽신앙이 바로 이곳에서 펼쳐진 곳이다.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뜻에서는 맥락이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정여립 사건이 시작된 곳도 바로 이 지역이며, 무엇보다 현실적인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헌신했던 동학군들이 조정과 일본군들의 무자비한 진압 때문에 전주를 버리고 급히 몸을 피해 모여들었던 곳도 모악산 기슭이다.

모악산 수류성당

모악산 수류성당

‘너도 먹고 물러나고 나도 잡숫고…’

다시, 원평마을로 가본다. 금평저수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조계종의 학교법인인 금산고교가 있고, 원불교의 원평교당이 있으며, 천주교의 원평성당과 개신교의 원평교회 등이 이웃처럼 모여 있다. 원평교당은 소태산 대종사가 1925년에 창건한 원불교 초기 교당이며, 원평성당은 1938년 축성된 이 일대 천주교의 거점이며, 원평교회는 앞서 말한 이자익 목사의 흔적이다. 여기에 보란 듯이 대범하고 호쾌한 기운으로 모악산의 중심을 잡고 있는 대가람 금산사까지 순례하고 나면, 극단적인 사술과 지극히 편협한 정치관이 뒤엉켜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무속이나 샤머니즘이라는 말로 일괄하여 비난할 수는 없다.

물론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해석이다. 이를테면 박찬경의 영화 <만신> 같은 작품 말이다. 2014년 토론토에서 열린 릴 아시안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만신 김금화를 다뤘다. 신기를 타고난 아이가 17살에 신내림을 받고 나서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을 치유하여 만신이 되기까지의 생애 말이다. 김금화 본인을 비롯하여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 등이 만신의 각 생애 주기를 열연한 작품으로 릴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전기적·역사적, 개인·집단, 지역적·세계적인 부분들을 각각의 소재적 한계를 초월하여 역사와 사회에 대한 더 큰 질문을 던지며 궁극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것과 불가한 것, 무형의 것에 대한 하나의 목소리를 부여했다”고 극찬했다.

영화는 보는 내내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따라서 그것이 기성 종교가 되었든 무속의 굿이 되었든, 실은 온정성을 다하여 불안과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이며, 행위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당장 영화를 찾아 보기 어렵다면 영화와 더불어 공개된 영화 주제곡 ‘파경’의 뮤직비디오를 인터넷을 통해 우선 볼 수 있다. 박찬욱·박찬경 두 형제와 함께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과 그로테스크한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방준석이 함께 실험적인 무가를 연주하고 부른다. 이 뮤직비디오 또한 박찬경 감독이 직접 연출한 작품이다.

‘파경’은 ‘경을 읽는 것을 끝내다’라는 뜻의 ‘파경(罷經)’으로, 무속인이 몇 시간에 걸친 굿을 끝내면서 진심으로 해원과 치유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르는 대목의 노래다. ‘너도 먹고 물러나고 나도 잡숫고 물러나신다’는 오랜 파경의 후렴구가 백현진·방준석에 의해 현대적인 옷을 입었다. 짧지만 강렬한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또 듣다 보면, 작금의 난세를 저지른 일부 속악한 무리들의 사술이야 응당 천벌을 받아야 할 짓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 전승의 무속 혹은 샤머니즘이 일거에 배척될 이유는 전혀 없음을 느끼게 된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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