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 따라서’-모든 이를 안아주던 고향의 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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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들길 따라서’-모든 이를 안아주던 고향의 들길

언제나 들길이었다.

아마 인생의 첫 과제였을 새참 배달, 논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드릴 새참과 물을 들고 미끌미끌 넘어질까 달리듯이 걷던 곳, ‘국민’학교에 가고 오면서 집토끼가 먹을 풀을 캐 책보에 담던 곳, 벼 사이의 개구리를 유혹하기 위해 호박꽃을 막대기에 매달아 낚싯줄처럼 논을 향해 던지던 곳, 박완서 작가의 ‘싱아’처럼 지천으로 널린 ‘삐리’ 풀의 뿌리를 캐 먹으며 친구들을 밀어 떨어뜨리며 놀다가 연을 날리던 곳.

도시로 전학을 간 학생이 방학이면 시골 버스에 내려 그리운 고향 집으로 내 달리던 곳, 다시 도시로 가기 싫어 몰래 앉아 울던 곳, 윗마을 친구를 만나고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몇 번이나 같이 걷고 또 걷다가 겨우 작별인사를 하던 곳, 군인이 되기 위해 집을 나서 터벅터벅 걷던 곳, 데모하지 말라고, 만일 데모하면 농약을 마셔 버릴 거라고 신신당부하며 노심초사하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상경길에 오르던 곳, 농민운동가가 되어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그날 밤에 유달리 길어 보였던 곳.

고향의 들길은 흙과 돌과 이름 없는 풀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항상 넉넉했다. 조바심과 바쁨과 놀라움과 망설임과 설렘과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조차 몰랐던 분도, 그밖에 온갖 모양의 마음을 들길은 받아 주었다. 나는 그 위를 온갖 모습으로 걷다가 힘들면 앉아 쉬었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 들길은 그 위의 사람의 마음을 시나브로 다독이고 새롭게 하고 안아 주었다.

들길은 논과 밭에서 땀 흘리던 노동이 잠시 쉬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들길을 깔고 그대로 앉아 땀을 식히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고, 담배를 피우고 막걸리를 마셨다.
들길은 공유였다. 누군가의 소유였을 논과 밭 사이에 난 들길은 모두의 것이었다. 만일 들길과 맞닿은 땅의 소유자 누군가가 욕심을 내어 이 들길마저 없애 자기 땅을 넓히려 하는 순간, 그의 땅과 타인의 땅의 경계가 없어져 버리는 모순이 생긴다. 들길은 인간의 탐욕마저 다스렸다.

들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파

언제였을까? 갓 제대한 때였을까? 무심코 도시의 길을 걷다가 어느 레코드 가게 앞 스피커에서 나오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내 발걸음은 멈추었고 내 가슴은 뛰었다.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내 정서의 고갱이를 대면한 느낌이었다.

정태춘의 노래 ‘서울의 달’의 가사처럼 이 노래는 ‘고향 잃은 사람들의 어깨’에 내려와 다시 들길이 되어 주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리고 만일 그 순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인 그런 시공간이라면 난 혼자 무엇을 할까?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다 곧장 이 노래를 흥얼거릴 것 같다. 그러면 무척 행복할 것 같다. 이제 부모도 없고, 작별하기 싫어 윗마을과 고향 마을을 이어 주던 들길을 마냥 오르락내리락 걸었던 윗마을 친구도 없지만, 노래는 마음의 들길을 열어 준다.

들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송기호 민변 국제통상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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