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듣는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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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가 저 1960~70년대 영국 사회를 날카롭게 그린 ‘the wall’, 늦가을에 다시 들을 만한 음악이며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케스>, 초겨울에 다시 만날 만한 감독이다.

12월에 개봉 예정인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거장’이라는 흔하디흔한 표현이 어떤 예술가를 위하여 독점적으로 사용돼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켄 로치! 바로 그가 그 말에 합당한 자다. 이 영화로 그는 올봄에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올해 여든 살이다. 팔순이 된 감독이 ‘인생이란 말이야 살아볼 만해’라거나 ‘오래 살다보니 역시 사랑이 제일이야’ 같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견지해온 정치적 입장과 미학적 관점을 한 걸음 더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켄 로치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말년의 양식’에 부합하는 진정한 거장이다.

혹독한 가난과 허위로 가득찬 교육환경

실업보험금을 타야만 하는 늙은 목수 이야기, 얼핏 보면 평범하고 무난한 휴먼 드라마 같지만 역시 켄 로치 아닌가. 그는 실업보험금을 타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오늘날의 영국,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서 말한다. 그렇다고 웅변은 아니다. 목소리 크게 외치는 것은 켄 로치의 일이 아니고 거장의 일도 아니다. 차분하고 잔잔하게 전개되는데, 먹먹해지는 충격, 그것이 켄 로치다. 황금종려상 수상 때 그는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한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 같은 메시지가 묵직하게 들려오는 영화다.

영화 <케스>의 한 장면

영화 <케스>의 한 장면

나는 그의 많은 영화들을 보았다. 대표작이랄 수 있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시작으로 <레이닝 스톤>,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등 빼놓지 않고 보았는데, 그가 자신의 출생 배경이자 영원한 근거로 생각하는 노동계급을 다룰 때조차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늘 놀라곤 한다. 살인적인 경쟁과 피말리는 생존의 가난은 한 줌의 인간성을 더욱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백척간두의 사유를 그는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는 한 줄기 햇살, 그러니까 신영복 선생이 말한 ‘큰 고통이라고 해서 반드시 큰 위로가 필요하지는 않다. 비좁은 독방에 하루 겨우 2시간 정도 내려앉는 햇살도 삶의 큰 위안이 된다’는 위엄 있는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 그의 영화 중에 1969년 작 <케스>와 2009년 작 <에릭을 찾아서>를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다. 영국의 변두리 주택가,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거나 그마저도 끊긴 채 근근이 살아가는 중년 남자, 너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삶마저도 아버지처럼 될 것임을 상처투성이로 벌써 알아버린 소년, 선술집에 모여 쓰디쓴 농담을 주고 받는 동료들, 그리고 축구! 이 두 작품에서 켄 로치의 위엄 있는 유머를 볼 수 있다.

특히 <케스>! 만약 당신이 지독히도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성장했거나 중·고교 시절에 악독한 교실 환경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혹은 지금도 그와 같은 비참함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바 있어 그러한 혹독한 가난과 허위로 가득찬 교육환경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면 당장 봐야 할 영화가 <케스>다. 이 영화는, 이를테면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근사한 교육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환멸과 구원으로 가득차 있다.

한 소년이 있다.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결손가정의 아이, 부모는 일찌감치 이혼했거나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 학교에서는 늘 문제아로 지목당하고 동네에서도 힘깨나 쓰는 녀석들한테 당한다. 예민한 감수성이 없었더라면 그 아이는 소년과 어른 사이에 놓인 수많은 갈림길 중에서 틀림없이 고된 가시밭길을 배정받았을 것이다. 마침, 소년의 내밀한 세계를 알아보는 교사가 있다. 교사마저 없었다면 소년의 삶은 지독하게 황폐해졌을 것이다. 영화 속 1960년대 영국 탄광지대 소년이 겪는 일들은 이 지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모든 사람들의 경험과 겹쳐진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교실 장면. 젊은 교사가 등장한다. 문학 시간이다. 그는 ‘팩트와 픽션’을 가르친다. 교사가 묻는다. 무엇이 팩트인가. 어떤 학생이 대답한다. “진실처럼 어떤 증거가 증명된 것입니다.” 조금 앞서 나간 답이다. 교사가 정정한다.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 그것이 팩트다. 예를 들어보라.” 어떤 소년이 대답한다 “티버트는 담배를 펴요.” 그렇게 수업이 진행된다. 그러다가 우리의 주인공 소년이 지목된다. 딴 생각을 하다가 걸린 것이다. 다른 소년들이 놀리면서 말한다. “쟤는 매를 길러요, 완전히 빠졌어요.” 그리하여 영화 내내 그늘 속을 헤매던 소년이 천, 천, 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교실 장면은 10분 정도 진행되는데, 절반이 소년이 매를 기르는 독백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뮤지컬 영화 <the wall>의 한 장면

핑크 플로이드의 뮤지컬 영화 의 한 장면

숲속에서 야생의 매를 만난 이야기, 서로 친해진 상황들, 매에게 먹이를 구해준 이야기, 매와 함께 살다보니 ‘발목끈’(Jesses)이나 ‘회전고리’(Swivel) 같은 또래 아이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를 익히게 된 이야기, 수업시간마다 딴짓을 하던 녀석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한다. 교사는 이를 물끄러미 지켜본다. 카메라는 소년 가까이 다가간다. 소년은 허공을 보면서, 마치 창밖으로 매가 날아오기라도 한 듯 허공의 한 점을 보면서 매와 하나가 되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닌 일을 이야기한다. 그 매의 이름이 영화의 제목인 <케스>다.

“이제 매를 붙잡아 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데, 하지만 안 날아갔어요. 저는 겁이 났어요. 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나는 매를 불렀어요. 케스, 이리 와, 케스, 케스, 이리 와…. 그러자 케스가 날아오는 거예요. 마치 폭탄처럼, 번개처럼, 곧장! 날개 소리도 안 들리게 곧장 내 장갑 위로 내려 앉았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한순간에 침울해져

이 영화와 더불어 생각나는 음악이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이다. 고교 때 처음 음반으로 들었고, 이십대에 그 음반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음악 뮤지컬 영화를 보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자주 보고 들었다. 특히 수업 때,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이 영화를 보거나 이 음악을 들으면서 서구의 대중음악이나 영국의 하위계급 문화를 공부하곤 했는데, 그 어느 때라도 학생들이 이 영화나 음악을 들으면서 한순간에 침울해지는 것을 느낀다. 올해의 봄에도 그랬고 가을에도 그랬다. 그러니까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가 저 1960~70년대 영국 사회를 날카롭게 그린 영화와 음악이 오늘날 21세기 초엽의 한국 교육 현실에도 여전히 리얼리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슬픈 확인이 되는 것이다.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리에게 교육 따위 필요 없어, 생각을 조절할 필요도 없고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s leave them kids alone
교실에서 비꼬는 소리를 할 필요도 없지, 이봐 선생, 제발 아이들을 내버려둬

이 음반과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another brick in the wall’, 즉 모두가 거대한 벽의 작은 벽돌일 뿐이라는 노래가사다. 그밖에도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고 섬뜩한 감동을 주는 노래들이 가득하다.

‘The Thin Ice’라는 곡의 가사는 이렇다. “아가야. 네가 지금 세상이라는 살얼음판 위를 지쳐 나가야 한다면 네 발 아래에서 금이 가기 시작하더라도 놀라지 말거라. 네가 그 얇은 얼음조각들을 움켜쥐려 발버둥칠 때 네 등 뒤에서 밀어닥치는 공포와 함께 넌 그 속으로 빠져들어버릴 테고, 곧 미쳐버릴 게다.” 그런가 하면 ‘Hey you’의 가사는 시종 음울한 이 음반과 영화의 한 뼘 햇살 같다. “당신, 거기 홀로, 전화기 옆에 벌거벗고 앉아 있는 당신, 절 안아줄 수 있겠어요? 당신, 벽에다 귀를 바짝 붙이고, 불러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당신, 절 안아주세요.” 핑크 플로이드, 늦가을에 다시 들을 만한 음악이며 켄 로치, 초겨울에 다시 만날 만한 감독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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