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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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명곡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학생들과 함께 들었는데, 그 중 한 대목에서 마음이 울컥했고, 21세기 중엽을 살아가게 될 학생들도 한 세대 전에 만들어진 곡을 들으면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제인 오스틴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 언니 엘리너가 동생 매리앤에게 말한다. “그이가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는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다른 이들이 그리는 걸 보길 아주 좋아해. 그리고 키울 기회가 없었다 뿐이지 소질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그래도 매리앤이 걱정하자 덧붙인다. “그이와 나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된 적이 가끔 있었어. 그일 볼 만큼 보았고, 감정을 면밀히 살폈지.”

자, 감정을 살핀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의 솔직한 ‘감정’을 말한다.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내 감정이 더 강하다고 믿으렴. 요컨대, 내 감정이란 그이의 장점이라든가 그이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짐작, 아니 희망에 비추어 보아서 내가 그렇게 느껴도 괜찮겠다, 주제 넘지도 어리석지도 않겠다 할 그런 감정이야.”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어떤 일로 인해 서식스의 노어랜드 파크를 떠나게 된다. 근대가 막스 베버가 말한 ‘청교도 윤리’뿐만 아니라 ‘자기 환상적 쾌락주의’에 의하여 견인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를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를 통해 증명하는 콜린 캠밸은 노어랜드 파크를 떠나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아래 대목을 특정하여 “감상주의의 현저한 특징인 자의식적 반응 및 과도한 감정주의의 특성”이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자, 매리앤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한다.

정든 나무들아! 너희들은 늘 그대로일 거야. 우리가 가버린다고 잎이 시들지도 않을 거고, 우리가 너희들을 더 이상 안 본다고 해서 가지가 살랑대지 않을 리도 없겠지! 그래, 너희들은 꼭 같을 거야, 너희들로 인해 생긴 기쁨도 슬픔도 모른 채, 너희들의 그늘 아래 걷는 사람들에게 생긴 변화도 모른 채! 그러나 누가 남아 너희들을 즐길까?

감정! 제인 오스틴 이후 서구에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오늘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이 단어다. 감정! 그 자체로 상당한 무게가 있지만, 여기에 다른 음절이 덧붙여지면 금세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진다.

남 앞에 항상 웃어야 하는 감정노동자

이를테면 감정노동! 감정노동은 기본적으로 신체가 어떤 식으로든 전시된 채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적용된다. 이 대도시에 서서 일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편의점의 알바생, 카페의 바리스타, 대형마트의 계산원, 은행의 창구직원, 아파트단지의 경비원 등은 그들의 신체 전체를 도시의 흉포한 시선 앞에 내놓고 일을 한다. 항상 단정해야 하고 어떤 일에도 웃어야 한다. 표정은 고객을 향해 웃고 있지만 감정은 일그러져 있다.

한편, 이렇게 신체가 노출된 채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이란 일정하게 폐쇄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도시인에게도 드리워진 그림자라는 분석도 있다.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게, 때로는 직급이 아래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조직이 원하는 신체로 작동하기 위하여 감정을 억지로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감정노동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다. 세계적 경제위기, 그것의 한국적 치명상, 그에 따른 청년실업과 사회문제의 폭발은 우리 모두가 들어서 알고 겪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에 책임도 있고 권한도 있고 자원도 갖고 있는 국가와 기업과 기관들은 하나같이 ‘열정’을 노래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년들이 대기업만 바라봐서 그렇지 중소기업에도 좋은 일자리가 많다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2015년 3월에 중동으로 청년들이 진출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새누리당 정운천 의원이 코트라에 대한 국정감사 도중에 캄보디아 같은 몇몇 나라를 언급하면서 가난한 오지 나라를 과감하게 개척하는 ‘10만 청년일자리 오지개척단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실업 해결은 물론이고, 미래의 세계 시장을 선점한다는 것이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청년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북한은 ‘당이 결심하면 인민은 한다’고 했는데, 여기는 거꾸로다. ‘청년이 결심하면 국가는 여기저기 알아는 본다’고나 할까. 희망고문에 열정페이라는 말을 이들은 긍정적인 뜻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록밴드 '들국화'가 2012년 7월 지산밸리록 페스티벌이 열린 경기 이천시 마장면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록밴드 '들국화'가 2012년 7월 지산밸리록 페스티벌이 열린 경기 이천시 마장면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노정태, 박권일, 한윤형, 최태섭 등의 전황 보고서와 최규석, 김수박, 이말년, 마영신 등의 작업과 김홍중, 서동진, 심보선, 김수환 등의 분석과 박민규, 김애란, 편혜영 등의 글들은 오늘의 삶이 ‘쉼없는 수색정찰’(지그문트 바우만)의 상황이며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윤도현 ‘나비’) 날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건! 교보증권은 2011년 8월, 리테일 부문 영업 인턴사원을 공개모집했다. 60명이 2주간 기초교육을 받은 후 곧바로 영업점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곧바로 일반 직원과 같이 주식 영업업무를 수행했다. 그 성과가 정규직 전환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인턴들은 정규직이 되기 위하여 가족과 친척들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다. 인턴 사원들은 오직 정규직 진입이라는 비좁은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손해가 뻔히 보이는 과도한 실적 경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교보증권은 인턴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장’을 통해 수수료 이익을 챙겼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원은 겨우 16명. 40여명은 자기 돈과 시간과 열정을 들인 끝에 시장에서 패퇴하고 말았다.

프로메테우스처럼 타인을 위한 삶

이렇게 법률 속에서 조난당하는 노동자, 해고까지 당하는 비정규직, 자신의 땅에서 추방당하는 가난한 자들, 기성세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비좁은 경쟁의 문을 통과하였으나 사회로 나오는 순간 반지하나 고시원을 전전해야 하는 극빈의 청년들이 양산되는 곳, 바로 여기 ‘헬조선’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시시포스의 삶이 아닌 프로메테우스의 삶을 살자고 주장한다. “자기 자신의 그 비참한 고통에 압도”당해 날마다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가 아니라 “타인들을 위한 삶을, 곧 그 타인들의 비참한 고통에 맞서 반항하는 삶을 선택”하는 프로메테우스가 되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대답 없는 선언이다.

아무런 답도 없는 상황! 그나마 더 추락하기 전에, 그래도 한 줌 남아있는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 그래도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 있다면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 이상은 거친 세속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인이나 이제 막 대학을 벗어나 그들 곁으로 방출된 청년들에게 요구하기 어렵다. 한 사람 버티기도 어렵고, 그 한 사람이 식구들 건사하기는 더더욱이 어려운 ‘헬조선’이다. 그러니 감정이라도 보호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처 입은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 이로써 자신의 일그러진 감정 또한 위로하는 것, 우선 그것부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이런 생각을 지난주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문득 하게 되었다. 대중음악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집합적 내면 풍경을 분석하는 수업 과정에서 저 1980년대의 명곡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학생들과 함께 들었는데, 그 중 한 대목에서 마음이 울컥했고, 21세기 중엽을 살아가게 될 학생들도 한 세대 전에 만들어진 곡을 들으면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비단, 쌀쌀해진 가을 날씨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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