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의 유행가 ‘내사랑 민주노조’-노조 있기에 “꿈속에도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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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비정규 노동의 유행가 ‘내사랑 민주노조’-노조 있기에 “꿈속에도 신이 난다”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를 듣는 일도, 따라 부르는 일도 좋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술에 취해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고복수의 ‘짝사랑’을 멋들어지게 뽑아내시던 아버지가 좋았다. ‘황성옛터’와 ‘목포의 눈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노래 메들리는 환상적이었다. 만취상태로 용산중앙시장 노래자랑에 나가 전기밥통을 타온 노래실력에 곁들어지는 하모니카 솜씨는 언제 들어도 일품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흥은 물려받았는데 음정은 물려받지 못한 불운한 아들. 윤도현의 ‘사랑Two’나 ‘너를 보내고’를 좋아하지만 남들 앞에선 부르지 못한다.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해 창피함을 잊고, 누군가 곁에서 음정을 잡아 같이 불러주면 목청껏 따라 노래하는 게 흥을 발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배운 노래도 비슷했다. 노래마을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같은 서정적인 노래를 좋아하지만 부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데 ‘노래하고 싶은 음치’의 눈에 띈 곡이 하나 있었다. 노동가요의 대부 김호철이 작곡하고, 꽃다지가 부른 ‘내사랑 민주노조’다. 노동운동가의 애국가라고 할까? 순박하기 그지없는 가사에 뽕짝풍의 흥겨운 멜로디로 한 번만 들어도 따라 부를 수 있고 어깨가 절로 덩실거린다. 음치를 감출 좋은 노래가 내 18번이 됐다. “…아~ 노동자 세상 동트는 통일조국 꿈속에도 신이 난다 내사랑 민주노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 내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다. 기업별노조를 넘어 같은 산업의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쳐 싸우자며 산업별노조 건설운동이 벌어졌다. 2001년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먼저 전국금속노동조합을 결성했다. 150여개 노조 4만여명이 뭉쳤다. 2003년 처음으로 산업별 중앙교섭이 열렸고, 대기업보다 먼저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근무제’를 도입했다. 다음해에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에게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비정규직 노조가 속속 만들어졌다. 금속노조에서 일하는 하루하루가 신명이 났다. 술기운이 오르면 ‘내사랑 민주노조’를 ‘내사랑 금속노조’로 바꿔 불렀다. “꿈속에도 신이 난다 내사랑 금속노조”를 몇 번이고 되돌려 부르곤 했다.

2006년 6월 현대차를 비롯해 대기업노조가 금속노조에 대거 가입해 조합원이 4만명에서 15만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산업별교섭에 대기업을 끌어내지 못했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현대차,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대법원에서 정규직으로 인정받았지만 정규직노조에 가입할 수가 없다. 현대차지부 판매위원회(직영점 노조)는 대리점 판매원들의 금속노조 가입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가 5만명 넘게 쫓겨나는데, 금속노조와 조선소 8개 노조가 모인 조선업종노조연대에는 하청노조가 없다. ‘내사랑 금속노조’를 언제 마지막으로 불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얼마 전 중앙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들을 만났다. 오전 청소를 마치고 쉬는 시간, 휴게실에 모인 어머니들의 노조 자랑이 끝이 없다. 말 한마디 못하고 뒷돈까지 갖다 바쳐야 했던 수모를 이제는 더 당하지 않는다. ‘내사랑 민주노조’ 서경지부가 있기 때문이다. 화물기사들이 모인 화물연대, 타워크레인과 포클레인 기사들이 모인 건설노조, 설치수리 기사들이 모인 희망연대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있기 때문에 “꿈속에도 신이 난다.” 내사랑 알바노조, 내사랑 청년노조, 내사랑 여성노조, 내사랑 조선하청노조…. 앞으로도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유행가가 됐으면 좋겠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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