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훼밀리 <작별>-기다리는 즐거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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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딕훼밀리 <작별>-기다리는 즐거움 또 있을까

오늘 낮에 그녀를 만났다. 여전히 나는 그녀를 ‘기자님’이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다. 10여년 전에 신문사를 떠났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지금은 강단에 선다. 우리는 취재기자, 취재원으로 만났고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 앗, 여기서 영화 <아가씨>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아는 것이 많고 다정한 그녀의 기사를 흠모하듯 읽어온 독자였기에 취재를 돕는다는 이유로 세상사를 곧잘 나누곤 했다.

그녀가 미국 유학을 떠나기 며칠 전, 모임이 아닌 단 둘만의 환송식을 했다. 술을 늦게 배웠고, 게다가 쉽게 취하는 나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그녀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며 종일 헤맸고, 당연히 몽롱한 상태였다. 환송식 테이블에 스파클링 와인이 놓였다.

피아노와 노래가 뛰어나다는 그녀, 소문은 들었지만 노래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녀는 그날 뭔가 환송식다운 분위기에 취해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카페에서 비교적 구석진 자리에 앉았던 덕분에 주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분명 들어보았던 노래였으나 그녀의 음성이 실린 노래는 완전히 새롭게 들렸다. 게다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노래 제목은 ‘작별’이었다.

“그 언젠가/ 돌아올 그날까지/ 기다리는 즐거움 또 있을까/ 날 사랑하는 맘 변치 말고 잘가오/ 사랑하는 님이여.”

하악. 이런 가사였다. 떠나가는 이가 남겨진 이에게 부르는, 전도된 가사가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딕훼밀리라는 1970년대 남성 그룹의 노래를 이렇게 처량하게 듣게 될 줄이야. 눈물이 맺혔던가. 모르겠다, 그날 많이 취했고 슬펐다는 기억만은 선명하다.

대학 졸업하던 해 발 디딘 출판계에서 학창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모두 어려운 느낌이었다.

일이 매개로 되어 있고 인간관계를 망치지 않아야 한다는 소심증까지 더해졌기에 속내를 털어놓기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인간적 품이 너그러웠다.

이후에 나는 이 ‘작별’을 자주 불렀다. 홀로 조용히 읊조리듯. 한두 번 떼로 몰려간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행들 표정이 희한했다. 내가 이거 왜 이래, 나도 사연 있는 여자라구, 하는 몸짓으로 애절하게 부른 모양이었다.

이 노래는 부를수록 몸에 붙었다. 음의 높낮이 차이가 심하지 않았고(아닌가, 내가 그리 소화해서 밋밋하게 부르는 것인지도) 가사를 또렷이 음미할 수 있을 만큼 느렸다. 떠나려는 사람에게, 그것도 내 마음 남김없이 바친 사랑하는 이에게 다시 만날 때까지 마음 변하지 말라고 한다.

사랑이 식지 않은 작별은, 이렇게 식물성이다. 다시 꽃 피울 그날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는.

그녀가 학위를 마치고 돌아왔다. 떠날 때 슬펐던 마음은 희미해졌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다만 강단에 서서 청춘들에게 전해줄 그 지혜와 따뜻한 마음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두텁다.

오늘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더 이상 슬프지도 않고 애절하지도 않은 말간 얼굴로 일상을 이야기했다. 다시 만날 날까지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식물성의 우정을 생각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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