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이 아닌 선수가 되는 ‘스크린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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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간 스크린 골프가 비약적인 성장을 한 점에 비추어 스크린 야구의 시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구는 골프보다 대중적인 스포츠이며 개인보다 팀 중심의 게임이기에 저변이 더 크다는 점이 강점으로 부각된다.

경기도 일산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라페스타 인근, 열대야 탓에 평소와는 달리 거리는 한산했다. 스크린 야구장 안으로 들어서자 금속성 배트 음과 동시에 함성이 들린다. 5개의 경기장에는 야구경기를 즐기는 팀들이 가득했고, 여러 팀이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장은 메이저방 2개와 마이너방 3개. 메이저와 마이너방은 투수석에서 타자석까지의 거리 차이로 구분됐다. 메이저방은 실제 야구장과 같은 실 투수거리 18.44m 규모의 만만치 않은 크기이다. 타석에 배트를 들고 서면 스크린에 보이는 야구장 모습이 실감난다.

“오전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문을 열고 있습니다. 오후 3시 이후부터 손님들이 몰려서 새벽 2시까지는 계속 붐빕니다. 남녀가 짝을 이뤄 오는 경우도 자주 있고, 손님층은 어린이부터 노년까지 다양합니다.” 스크린 야구장의 아르바이트생 조은지씨의 설명이다.

국내 야구팬의 규모는 약 700만명 이상. 2015년도 직접 프로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즐긴 관중은 736만명이고, 올해는 그보다 더 많은 관중이 야구장을 찾을 전망이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에는 1만4000여개의 팀이 등록돼 있다. 비등록 팀을 포함하면 2만5000여개의 팀이 있다고 추정한다. 매 주말 약 30만명 이상이 야구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벌이는 셈이다. 야구는 축구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립니다. 그전에는 친구들끼리 당구나 농구 정도를 즐겼는데, 이제는 만나면 야구를 하고 있습니다.” 서정화씨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빼고 거의 매일 스크린 야구장을 찾는다고 했다. 함께 경기를 하던 동료들은 “진짜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남녀노소, 시간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곳인 스크린 야구장. / 김천

남녀노소, 시간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곳인 스크린 야구장. / 김천

관객의 함성과 해설자의 스윙 분석까지
과거에 있던 야구 게임장은 단순한 형태였다. 피칭머신이 던지는 공을 단순히 맞받아치는 타격게임이었지만, 스크린 야구는 훨씬 복잡하게 진행된다. 이용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실제 투구거리 건너편에 투수의 모습이 나타난다. 타격 준비를 하고 발판 스위치를 누르면 투수 와인드 업 후에 피칭머신으로부터 공이 날아온다. 구속은 일반인들이 받아칠 수 있을 정도지만 아주 쉽지만은 않다. 처음 스크린 야구장을 찾은 이들 중에는 공에 손도 못 댄 채 헛스윙만 하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한다. 어느 정도 숙달되고 감을 잡으면 대부분은 쳐낼 수 있을 정도의 공이 날아온다.

스크린 야구는 크게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앞서의 경우처럼 이용자는 스크린에서 피칭한 투수의 공을 타격만 하는 게임이다. 간단한 타격 형식의 스크린 야구 게임이다. 이 게임의 장점은 변화구를 포함해 다양한 구질의 공을 타격할 수 있어 타격감과 타격능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선수 또는 실제 경기에 나서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적합한 스크린 야구 게임이다. 오락의 요소는 최대한 배제한 채 경기력 향상을 위한 시설에 가깝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스크린 야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형태이다. 게임 형식이라고 지칭하는 요즘의 스크린 야구는 타격까지는 비슷하나 타자의 스윙 이후에도 게임이 진행된다. 피칭머신에서 날아오는 공은 거의 직구. 맞받아치면 이때부터 컴퓨터의 복잡한 계산이 시작된다. 타자석 앞에 설치된 각종 센서들이 맞은 공의 방향과 속도, 반발력 등을 셈하고 스크린에 공이 맞을 때쯤 수비수들의 움직임이 화면에 그려진다. 그에 따라 안타 또는 아웃 등의 판정이 나오고, 투수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이거나 관객의 함성과 함께 해설자의 스윙 분석 해설이 흘러나온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고스란히 방 안을 채우고 있다.

체력과 성별에 맞게 타구의 질 변화
가상현실의 장점은 경기 운영에서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타석에 들어선 선수가 어린이거나 여성인 경우 빗맞은 타구를 안타로 처리하거나 단타를 장타로 해석한다. 수비수의 실책으로 안타를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미리 조정된 가감점이 적용되는 소프트웨어의 힘이다. 체력과 성별에 따른 경기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게임의 재미를 더하는 소프트웨어 장치가 돼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남녀, 어린이와 어른도 경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여성 손님들끼리만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야구에 관심은 있는데 실제로 해볼 기회는 없었던 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NC 다이노스 투수인 모 선수도 친구들과 함께 와서 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습니다.” 스크린 야구장 관계자는 이용객 중에는 일반인이 대부분이지만, 사회인야구 선수나 프로야구 선수도 있다고 했다.

야구와 관련된 각종 상품이 전시되어 팬들의 흥미를 끈다. / 김천

야구와 관련된 각종 상품이 전시되어 팬들의 흥미를 끈다. / 김천

이용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거의 유일한 단점은 비교적 높은 이용료였다. 경기당 이용료는 5만원 이상의 수준으로 결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용료가 게임당 기준입니다. 한 게임은 대개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보통 4명에서 6명 정도가 이용하니까 1인당 이용료는 1만원 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크린 야구장 관계자는 1인당 2만원 선인 스크린 골프에 비해 결코 비싼 가격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친구들끼리 찾아온 경우는 대부분 내기를 한다. 결과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국내에서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그리고 실제 경기상황을 결합한 스크린 스포츠의 선두주자는 스크린 골프였다. 10년 이상 꾸준히 발전하고 있고 모 업체의 경우 전국 지점 수 1만3000여개를 넘었다. 그에 비하면 스크린 야구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이다.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스크린 야구 브랜드의 가맹점은 약 120개 점포, 여타 회사들은 10여개에서부터 수십 개까지 다양하고, 벌써 문을 닫은 곳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진입이 쉽지 않은 시장이다.

이용자가 얼마만큼 실감나게 몰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스크린 스포츠의 생명이다. 골프의 경우 오랫동안 운용돼 사용자 데이터가 쌓이고 소프트웨어의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실제 경기에 가까운 정도까지 접근하고 있다. 스크린 야구는 앞으로 넘어야 할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이다.

“저희 회사가 시장조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4년 정도 됐습니다. 현재 약 네다섯 개 회사가 영업하고 있고 스크린 골프로 성공한 모 업체도 야구에 눈을 돌려 자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야구는 실감나는 경기를 위해 골프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시장성은 무궁하지만 실제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그런 제약이 따릅니다.” 스크린 야구장 사업을 하는 모 업체 서동규 대표의 설명이다.

사업가치에 비해 초기 투자비용이 큰 것도 스크린 야구장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모 업체의 경우 방 하나의 설치비용이 대략 1억원 선이라고 귀띔했다. 수요가 많아 아직 적자는 보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과 더 다양한 게임규칙의 적용 등도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아직은 인지도가 낮습니다. 간판을 보고도 야구 게임을 실내에서 스크린으로 어떻게 하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호기심 때문에 문을 열었다가 매료되어 다시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재방문율이 절반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아무 준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프로야구 선수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산 라페스타 인근에서 스크린 야구장을 운영하는 조중표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수익률이 나쁘지 않다고 덧붙였다.

스크린 야구장 입구에 그려진 그림. / 김천

스크린 야구장 입구에 그려진 그림. / 김천

10여년간 스크린 골프가 비약적인 성장을 한 점에 비추어 스크린 야구의 시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스크린 골프는 홀로 약 2조원대의 시장을 개척했다. 가상현실과 결합한 스포츠 시장의 다음 세대는 누구일까. 야구는 골프보다 대중적인 스포츠이며 개인보다 팀 중심의 게임이기에 저변이 더 크다는 점이 강점으로 부각된다. 현재 스포츠 시장에서 야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강력하다. 국내 야구용품 시장은 연간 500억원대, 야구장 임대사업 등을 포함하면 1000억원 이상의 시장을 야구팬들이 만들고 있다. 골프 시장에 비하면 초라할 수 있지만 대중성은 더 크고 결코 작지 않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스크린 야구장의 가능성 또한 주목 받는 것이다.

양궁, 승마, 사격 등 스크린 스포츠 확대
스크린 야구장이 재정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업계의 목소리도 있다. 현재 스크린 야구장 대부분은 오락시설로 분류되어 있다. 때문에 술과 음식을 팔 수 있다. 경기를 하면서 맥주와 치킨 등을 함께 즐긴다. 올해부터 국내 프로야구 경기장에서는 맥주 판매가 허용됐다. 그런 점에 비추어 스크린 야구장의 술 판매는 훨씬 더 야구장의 분위기를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스크린 야구장도 체육시설로 정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스크린 골프장은 입지와 시설 규모에 따라 체육시설로 신고가 가능해서 세제혜택과 레슨 허용 등이 가능하지만 스크린 야구장은 불가하다는 주장이다. 한 게임이 대부분 한 시간 이내에 끝나고 가족·친지들이 즐겁게 야구를 즐기는 분위기라서 굳이 음주를 규제하거나 체육시설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간은 늘 자연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꿈꿔 왔다. 가깝게는 가옥과 냉·난방이 그 노력의 결실이고, 크게는 과학과 기술이 그 산물이다. 스포츠는 인간을 가장 자연과 가깝게 인도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흘린 땀방울이 근육을 만들고, 축적된 경험이 경기의 기술로 발휘된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의 과학기술이 스포츠와 결합되면서 다시 자연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비가 와도 그라운드를 달리고, 밤이 돼도 경기는 계속된다. 심지어 상대방이 없어도 경쟁은 치열하게 치러진다. 골프에서 시작된 스크린 스포츠가 야구에 뿌리를 내렸다. 양궁, 승마, 사격에도 스크린 스포츠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테니스 등도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알파고가 보여주었던 인공지능의 섬세함, 가상현실을 통해 경험했던 상상력의 확장은 스크린 스포츠에서 더 빛을 발휘한다. “야구는 진짜 재미있는 경기예요. 공 하나하나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실제로 해보면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심야에 친구와 함께 스크린 야구장을 찾은 50대 남성이 한 말이다. “어릴 적 꿈이 야구선수였습니다. 쳐다보지도 못할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안에서는 내가 꿈을 이룬 주인공입니다.” 그의 동료가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인볼 앞에서 해준 말이다.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인간은 그를 통해 꿈을 이룰 수도 있게 됐다. 우리 시대의 많은 이들이 배트를 휘두르고 환호하는 스크린 야구장은 그렇게 과학과 기술과 꿈을 보여주는 새로운 공간인 셈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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