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러브스토리엔 시간의 장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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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러브스토리라 해서 죄다 시간여행담은 아니나 상당수가 시간여행 플롯을 취한다. 이는 사랑하는 남녀가 영영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는 애틋한 상황을 극화하는 데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설정이 없기 때문 아닐까.

흔히 SF라면 진기한 발견·발명에 넋이 나간 실험실의 과학자나 인간처럼 구는 로봇 혹은 퉁방울눈 외계인부터 떠올릴지 모르겠다. SF라는 어감에서 서정적인 슬픔이나 감동부터 떠올릴 이들은 아마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선입관이야말로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다. 추리소설 속 탐정이 죄다 셜록 홈즈의 따라쟁이가 아니듯, SF라 해서 두뇌회전이 기발한 발명가나 외계인들과 쌈질하느라 첨단무기로 온몸을 두른 미래 군인들만 나오지는 않는다. 과학소설 또한 인간과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이기에 희로애락이 있고, 풍자와 페이소스가 있다. 못 믿겠다고? 그럼 어떤 예를 들면 SF가 심금을 울리는 낭만적인 문학이 될 수 있음을 한눈에 보여줄까?

러브스토리는 어떨까? 단지 맛깔스런 양념이나 구색으로 곁들이는 서브플롯 말고, 말 그대로 작품 알맹이 자체가 러브 스토리인 경우 말이다. (<스타워즈>나 <터미네이터>에도 애절한 사랑이 나오지만 중심주제는 아니다.) 정말 그런 이야기들이 있냐고? 좋다. 아름다운 SF 러브스토리들을 몇 편 시식해보자.

<시간여행자의 아내>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포스터.

<시간여행자의 아내>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포스터.

200년 미래에서 온 처녀에 반한 중년
먼저 바람난 한 중년남자에게서 시작해보자.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인 상(像)은 대개 거기서 거기다. 로버트 프랭클린 영(Robert Franklin Young)의 단편 <민들레 소녀(The Dandelion Girl)>(1961년)의 주인공도 다르지 않다. 시골로 휴가 온 한 중년남자가 뒷동산에서 200년 뒤 미래에서 왔다는 스무 살 처녀와 만나 첫눈에 반한다. 처녀 역시 자기 나이 곱절의 아저씨와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그에게 엄연히 아내가 있다는 사실. 남자는 젊은 여인에 대한 열정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혼란스럽다. 몇 차례 밀회 끝에 처녀는 타임머신을 발명한 부친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은 시간여행 기회가 이제 단 한 번뿐이라며 아쉬워한다. 다시 만날 수 있냐는 남자의 물음에 처녀는 노력하겠지만 설사 실패해도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 당부한다.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상심한 남자는 백방으로 수소문하나 아는 이가 전혀 없다. 그제야 그는 농담으로 여긴 그녀의 정체가 정말 시간여행자인지 의아해진다. 집에 돌아온 남자는 아내에게 속내를 숨기느라 고심하고 아내 역시 달라진 남편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어느 날 남자는 무심코 아내의 비밀 가방을 열어보고 충격을 받는다. 안에는 옷 한 벌뿐이었다. 뒷동산에서 만난 처녀가 맨 처음 입은 바로 그 드레스! 처녀는 단 한 번 남은 시간여행 기회를 결코 헛되이 하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왜 뒷동산 처녀에게 선뜻 넋을 잃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바로 젊은 날의 아내와 똑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이십대 때 아내가 왜 그리 저돌적으로 접근해왔는지도 이제 알 것 같았다. 비로소 그는 현재에 감사하며 외출한 아내를 마중하러 서둘러 집을 나선다.

‘시공간의 왜곡’이란 물리현상이 뜻밖에 애절한 러브스토리의 알리바이가 되기도 한다. 제프리 A. 랜디스(Geoffrey A. Landis)의 <도라도에서(At Dorado)>(2002년)와 김보영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2015년>가 좋은 예다. <도라도에서>의 배경은 웜홀 앞에 떠 있는 우주정거장이다. 여주인공은 우주선 항해사인 남편이 정거장마다 현지처를 두자 대판 싸우고 헤어진다. 곧 이은 사고 소식. 남편의 우주선이 웜홀을 통해 돌아오다 파괴되었단다. 남편의 시신 앞에서 그녀는 울 기운도 없다. 다음날 멀쩡히 살아있는 남편이 평소처럼 넉살 좋게 그녀 앞에 나타난다. 분노보다 반가움이 앞선 그녀는 곡절을 깨닫는다. 웜홀을 드나드는 우주선은 상대론적 속도와 진입각도에 따라 종종 시간차를 일으킨다. 덕분에 아직 사고 우주선을 타지 않은 과거의 남편이 찾아온 것이다. 문제의 우주선으로는 내일 갈아탄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 사실을 귀띔해주고 남편을 붙잡으면 어찌 될까. 인과율이 무너지면 웜홀이 붕괴되며 코앞의 우주항 역시 가루가 될 것이다.

다린이 돌아누워 그녀를 바라봤다.
“다른 여자는 없어. 이번엔 정말이야.”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번이 마지막 키스라 여기며 입을 맞췄다.
“나도 알아요.”
--- <도라도에서>, 국내번역판 112쪽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4.3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 식민지를 떠나 지구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는 선남선녀의 이야기다. 그런데 각자 다른 우주선을 타고 오느라 문제가 생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선 안의 경과시간은 광속에 근접할수록 느려진다. 예컨대 광속의 99.9%까지 하루 만에 가속하면 목적지까지 선내 시계로 72일이 걸리며, 한술 더 떠 4.6시간 만에 광속의 99.99999%가 되거나 7분 만에 광속의 99.99998%가 되면 선내 경과시간은 딱 하루다. 사단이 일어난 것은 예비신랑이 예비신부로부터 두 달 늦게 도착한다는 전갈을 받고나서다. 지구에 먼저 와 그녀도 없이 빈둥대느니 도착시간을 맞출 심산에 그는 우주공간에서 다른 우주선으로 갈아탄다. 그러나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갈아탄 우주선이 궤도를 잘못 잡아 두 달 뒤가 아니라 3년 뒤에나 도착하게 된다. 예비 신부는 낭군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갈아탈 배편을 구하지만 쉽지 않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라도 우주선이 고속버스마냥 30분마다 어디로든 떠날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그녀가 간신히 구한 배편은 11년 걸려 지구에 도착하는 완행 화물선이다. 그녀가 냉동수면에 들어갔으니 공은 다시 예비신랑에게 넘어간다. 그는 남은 8년의 시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지구에서 늙다리가 되어 갓 깨어난 앳된 신부를 맞이해야 할까? 그럴 수 없다고 판단한 예비신랑은 지구에 머물지 않고 다시 다른 우주선에 오른다. 그러나 여전히 양쪽의 도착시간이 서로 잘 안 맞는다. 혹시 이러다 두 남녀는 우주선만 노상 갈아타며 상대론적으로 느려터진 시간 속에서 서로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견우직녀 꼴이 되지는 않을까?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왼쪽). 민들레 소녀(오른쪽).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왼쪽). 민들레 소녀(오른쪽).

애절한 스토리 만드는 시공간의 왜곡
SF에서 시간여행 수단은 타임머신이나 시공간의 상대론적 왜곡현상만이 아니다. 때로는 체질적으로 시간여행 능력을 타고난 인물이 등장한다. 팻 머피(Pat Murphy)의 단편 <오렌지 꽃필 무렵(Orange Blossom Time)>(1981년)(이 단편은 고려원미디어에서 1995년 펴낸 선집 <시간여행 SF걸작 선>에 실려 있다)과 오드리 니페네거(Audry Niffeneger)의 장편 <시간여행자의 아내(The Time Traveler’s Wife)>(2003년)를 보자. 둘 다 타임머신 같은 물리적 수단 없이 시간여행 능력자가 연인의 전 생애의 다양한 시점에 나타나 절절한 사랑을 나눈다는 점에서 포맷이 비슷하다. 다만 능력자가 <오렌지 꽃필 무렵>은 여성이고,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남성이다. <오렌지 꽃 필 무렵>의 엔딩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젊은 남자 곁에 여주인공이 반복해서 찾아온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눈에 띄게 늙어간다. 남자가 죽은 뒤에도 그녀가 남자가 살아있던 시절로 계속 시간도약을 해온 탓이다. 늙은 여인이 남자의 임종을 지키는 장면은 우리의 일상감각을 위배함에도 불구하고 무척 감동적이다.

그는 눈을 뜨고 사랑하는 이의 늙은 얼굴을 바라봤다. 주름진 얼굴과 지친 눈빛. 틀어 올린 머리는 하얗게 셌다.
“전 언제나 당신과 함께예요, 내 사랑.”
그녀가 속삭였다.
“여러 번 떠났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왔어요.”
--- <오렌지 꽃 필 무렵>, 국내번역판 120쪽

타임슬립(Time Slip)과 맞물린 러브스토리도 있다.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의 <시간여행자의 사랑(Bid Time Return)>(1975년)을 보자. 1971년의 한 남성이 한 호텔에 머무르다 1890년대의 인기 여배우 엘리스 매케나의 사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그녀와 관련된 온갖 정보를 숙지한 가운데 자기최면을 걸어 엘리스가 실재하던 시간대로 떠난다. (이렇게 과학적인 물리수단 없이 초자연현상을 통해 시간여행하는 방식을 SF에서는 타임슬립이라 한다.) 이런저런 장애가 있긴 하나 마침내 그는 그녀와 만나 열렬한 사랑을 불태운다. 그러나 수중에 지닌 원래 자기 시간대의 물건(1971년 주조된 동전)을 의식하느라 현재로 되돌아오고 만다. 동생이 시간여행자의 자필원고를 소개하는 형식의 이 소설은 시간여행을 했다는 남자가 악성뇌종양을 앓고 있어 환각을 봤을지 모른다는 단서를 조심스레 추가한다.

외계인 여성의 상상도.

외계인 여성의 상상도.

지구 남성과 외계인 여성의 결혼
이상의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시간여행담이다. SF 러브스토리라 해서 죄다 시간여행담은 아니나 상당수가 시간여행 플롯을 취한다. 이는 사랑하는 남녀가 영영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는 애틋한 상황을 극화하는 데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설정이 없기 때문 아닐까. 다시 말해 아예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살거나(<시간여행자의 사랑>, <민들레소녀>), 안타깝게도 이미 죽어버려 웜홀의 시공간 왜곡 덕분이 아니면 재회할 수 없거나(<도라도에서>) 혹은 시공을 건너뛰는 초능력 없이는 인연이 맺어질 수 없는 사이(<시간여행자의 아내>, <오렌지 꽃 필 무렵>)가 아니라면 연인들의 러브스토리가 그토록 시리고 가슴을 저미겠는가.

예서 그치지 않고 SF는 로버트 실버버그(Robert Silverberg)의 단편 <91번째 신부(Bride 91)>(1967년)에서 보듯 인간과 외계인의 진지한 연애와 결혼을 상상해본다.

6개월 계약결혼이었다.
“신부에게 키스해!”
랜디의 섭취구멍에 달린 꽃잎들이 내 입술에 눌리며 예쁘장하게 하늘거렸다. 30초쯤 그러고 있었다. 랜디의 세계에서는 서로 키스하지 않는다, 적어도 입으로는. 그러니 그녀가 키스를 얼마나 제대로 즐겼는지 모르겠다. 허나 우리의 결혼계약 조건대로 지구의 격식을 따랐다.
--- <91번째 신부>, 영문판에서 발췌

이미 90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듭한 인간 주인공은 ‘서본’ 별의 여성 외계인 랜디와 91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지구 식 결혼인 만큼 서본인 신부는 지구 여성에 최대한 가까워져 신랑을 기쁘게 해주려 한다. 그래서 키스하기 좋게 자기 입천장에 가득한 바늘 같은 침들을 다 빼내 인간의 치아를 해 넣는가 하면, 남편이 바람 펴도 아내는 참아야 하는 지구의 오랜 관행(?)을 어디선가 듣고 와서 그가 바람을 피우게 부추기는 통에 부부 간 냉전이 일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시험적인 단기결혼으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둘은 계약만료 후 재혼한다. 대신 이번에는 결혼계약 조건을 서본인 격식에 따른다. 진정한 사랑만 전제된다면 이종(異種) 간 장벽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메시지는 다인종사회에서 상호관용이 공동체의 평화로운 존립에 얼마나 중요한지 우회적으로 일깨운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SF 러브스토리는 순문학에서 꿈도 꿀 수 없는 까닭에 상상력이 풍부한 SF작가라면 독자의 눈길을 붙드는 데 훨씬 더 유리하리라. 한마디로 SF라서 서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작가의 부족한 실력을 감추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러브스토리는 아무리 과학적인 토대 위에 쓰여져도 얼마든지 독자의 폐부를 파고들며 절절해질 수 있다. 그 열쇠는 바로 인간에 대한 탐구다. 이를 과학기술적 아이디어와 잘 조화시킬 때 비로소 SF 텍스트는 빛을 발한다. 그러니 어떤 SF 러브스토리가 진부하거나 공감하기 어렵다면 장르 틀에 시비 걸지 말고 작가에게 따지라. 당신, 재미없다고!

<고장원 SF 평론가>

고장원의 미래의 속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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