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속 ‘염력’은 과학기술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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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문명의 이기로 쓸지 살인흉기로 쓸지는 운전자의 선택이듯, 여기서 소개한 신기술 역시 우리가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양날의 칼로 돌아올 것이다.

<스타워즈>의 제다이들과 슈퍼 악당들은 단지 정신의 힘만으로 사물을 들어 내던진다. 어디 그뿐이랴. 다스 베이더나 은하제국 황제는 손가락만 꼼지락해도 몇 발자국 앞 상대의 숨통을 조이고 심장이 멎게 한다. 이들에게 왜 광선검이 필요한지 의아할 지경이다. 정신감응으로 초능력을 발휘하는 돌연변이 이야기는 19세기 말 영미권 과학소설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이러한 존재가 대중문화에서 크게 부각된 계기는 뭐니 뭐니 해도 미국과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덕이다. 1963년 첫선을 보인 이래 수차례 영화화된 스탠 리(Stan Lee)의 <엑스맨>과 요코야마 미츠테루(橫山光輝)의 <바벨2세>(1971~1973)가 초기 히트 만화들이다. 여기에 나오는 다양한 초능력 가운데 단연 압권은 염력(念力·psychokinesis)이다. 눈빛이 달라지거나 볼 근육을 살짝 실룩거리기만 해도 바위와 자동차가 종잇장처럼 날리는 광경이라니!(1970년대 말 히지리 유키의 <초인 로크>와 1980년대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에서 보듯, 염력으로 사물은 물론이고 타인의 동작까지 제어할 수 있는 초능력자를 다룬 만화들은 이후에도 두고두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염력은 초능력자를 상징하는 기본 레퍼토리가 된 지 오래며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처럼 우리나라 안방 드라마까지 넘본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단지 작가들의 상상을 떠나 학계나 정부에서 초능력을 진지하게 연구한 적도 있다. 미국 듀크대학 이상심리연구소의 J. B. 라인(Rhine) 박사가 초창기 이 문제를 심도있게 탐구한 학자로 유명한데, 초능력을 지칭하는 ‘ESP’란 용어는 그의 저서 <여분의 감각을 통한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1934)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인만화·애니메이션이 붐을 이루던 냉전기에는 공교롭게도 미국과 소련이 첩보전의 우위를 점하고자 온갖 초능력의 실용화 가능성을 은밀히 타진했다. 허나 실험 참가자들의 자질이 들쑥날쑥한 데다 개중 가장 낫다는 이마저 사기꾼으로 밝혀지며 실험의 신뢰도가 곤두박질쳤다. 결국 1990년대 중반 폐기되었지만 초강대국 두 나라의 정부 관리와 과학자들이 20여년이나 이 황당한 연구에 매달려 예산을 축낸 사실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미국 피츠버그의대 연구소에서 얀 슈어만이라는 전신이 마비된 여성이 마인드컨트롤된 로봇 팔로 초콜릿 바를 먹고 있다. / www.upmc.com

미국 피츠버그의대 연구소에서 얀 슈어만이라는 전신이 마비된 여성이 마인드컨트롤된 로봇 팔로 초콜릿 바를 먹고 있다. / www.upmc.com

미·소 냉전시대 양국 정부 차원서 연구
최근의 SF에서는 염력을 포함해 초능력을 묘사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자칫 무리수를 남발했다간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니까. 앞서 라인 박사가 1930년대부터 초능력 연구를 ‘사이오닉스’(Psionics)라는 학문으로 정립하려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듯이, 작품 속에 초능력을 과도하게 도입하거나 섣불리 합리화했다가는 오히려 사건 전개의 신빙성이나 전체 내용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요즘에는 이런 능력을 내세우더라도 막상 활용할 때 최대한 절제하는 추세다. 그래서 예전처럼 밑도 끝도 없이 자연산 돌연변이를 앞세워 초자연적인 능력을 우기는 대신 다음 몇 가지 유형이 새로 추가되었다.

1. 인위적인 돌연변이
1-1. 의도적인 돌연변이: 유전자 조작 같은 첨단 생명공학을 동원하는 경우
1-2. 우발적인 돌연변이: 실험실 사고나 방사능 피폭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후손의 경우
2. 기계장치를 이용해 얻은 초능력

이 중 마지막 발상이 꽤 참신하다. 기계장치를 써서 초능력(이를테면 염력)을 발휘한다니 과학적으로 좀처럼 검증하기 어려운 다른 대안들에 비해 왠지 그럴 듯하지 않는가? 타치바나 나오키(橘尙毅)가 스토리를 쓰고 시오리(汐里)가 그린 일본만화 <4D>가 바로 그러한 예다. 이 만화는 염력의 근거를 초능력 대신 다차원 공간의 엉킴에서 찾는다. 천재 수학자가 여분의 공간 차원들을 마음먹은 대로 넘나드는 한 여학생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그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각성하지 못한 상태지만 위기 때마다 여러 초능력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내는데 염력도 예외가 아니다. 수학자는 이 소녀의 초능력을 우주의 다차원적 속성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이를테면 천리안은 두 지점 사이 공간을 왜곡해 아주 가까이 보이게 하는 것이고, 공간이동은 원래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을 마찬가지로 왜곡시켜 지름길을 내는 것이다. 염력의 경우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상위 차원에 숨겨 놓은 장치로, 사물을 원하는 방향으로 당기거나 밀어내는 효과다.

다차원 공간의 엉킴에서 염력의 ‘근거’를 찾는 일본만화 <4D>.(사진 위)  정신감응으로 초능력을 발휘하는 돌연변이 이야기의 초기작 <바벨2세>.(사진 아래)

다차원 공간의 엉킴에서 염력의 ‘근거’를 찾는 일본만화 <4D>.(사진 위) 정신감응으로 초능력을 발휘하는 돌연변이 이야기의 초기작 <바벨2세>.(사진 아래)

기계에 의지해 사물을 생각으로 움직여
흥미롭게도 현대물리학의 최신이론은 이러한 설정이 나름 그럴싸해 보이게 한다. ‘끈이론’(String Theory)에 따르면, 우주는 10~12개의 시공간 차원으로 되어 있다.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제외한 여분의 차원들은 빅뱅 이후 급속팽창 과정에서 플랑크 크기로 돌돌 말아져 기존의 4차원 시공간 속에 감춰져 있다. (플랑크 크기는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로, 1616=199×10-35m다. 다시 말해 공간은 무한정 쪼갤 수 없다.) 만일 이 여분의 차원들을 일종의 도구 보관함으로 쓸 수 있다고 해보자. 육안으로 보일 턱없는 이 감춰진 공간에 끈이나 지렛대 같은 것을 두고 움직여 4차원 시공간의 사물 위치를 바꿀 수 있다면,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물리적 이동을 알아챌 수 없는 일반인에게는 마치 염력을 쓴 듯 보이리라. <4D>에서는 현대에 들어 갑자기 우주를 지탱하는 조건이 일부 바뀌면서 상위 차원의 영향이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으로 이뤄진 우리 세계에 미치게 되고, 덕분에 일부 사람들이 상하위 차원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재주를 지니게 된다. 그 원인을 미야마는 상위 차원에서 뭔가 파란이 일어난 때문으로 추정하나 아직 연재 초반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물론 끈이론은 상대성이론이나 전자기파이론처럼 완전히 정립된 이론이 아니며 앞의 두 이론이 상충되는 부분을 상쇄시키려 도입된 측면이 있다. 더구나 끈은 크기가 양자나 쿼크보다 훨씬 작다. 최첨단 전자현미경으로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플랑크 길이의 끈에다 그보다 압도적으로 큰 전자를 부딪쳐봤자 전자의 모양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끈들이 저마다 다양한 진동수로 움직이며 각양각색의 소립자를 형성하며 이것들이 뭉쳐야 다시 전자나 양성자, 그리고 중성자가 된다. 다만 이 글의 초점은 과학자들 사이에도 이견이 분분한 끈이론의 실체를 논하기보다 염력을 과학으로 실용화할 수 있느냐에 있으니 <4D>의 가정은 일단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남겨두자.

SF의 역사를 돌아보면 초능력이라 해서 죄다 그 원천을 별난 유전형질에만 기대는 대신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앙드르 모르와(Andre Maurois)의 <생각을 읽는 기계(La Machine a lire les pensees)>(1937)와 마저리 올링햄(Margery Allingham)의 <마음 판독기(The Mind Readers)>(1965)가 그런 예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당시에는 끈이론처럼 뜬구름 같았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현대 IT과학이 실생활에서 염력이나 다름없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계에 의지해 생각대로 사물을 움직이는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두뇌에 전극을 달고 그 단자를 유무선으로 기계장치와 연결해 뇌파의 흐름대로 움직이게 하면 된다. 1990년대 말 미국 에모리대학과 독일 튀빙겐대학 연구팀은 전신마비 환자의 두뇌에 소형 유리전극을 삽입해서 반대쪽 끝을 컴퓨터와 연결해 환자가 생각만으로 커서를 움직이게 했다.

2006년 미국 브라운대학의 신경과학자 존 도너휴(John Donoghue)가 개발한 브레인게이트(Braingate)는 한 발 더 나아가 사지마비 환자들이 혼자 TV채널을 돌리고 이메일과 컴퓨터게임을 하며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다루게 해주었다(다루기도 쉬워 피실험자 중 한 사람은 불과 하루 만에 조작법을 습득했다고 한다). 듀크대학의 미구엘 니콜렐리스(Miguel A. L. Nicolelis)는 원숭이들로 비슷한 성과를 냈다.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어쩔 줄 모르다 몇 번 시행착오 후에 마음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바나나를 움켜쥐었다. 2012년 피츠버그의대는 앞의 원숭이 실험을 인간으로 확장했다. 온몸이 마비된 한 여성 환자가 96개의 전극이 달린 전자 칩을 뇌에 삽입해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손동작을 연습한 끝에 로봇 팔을 자기 뜻대로 움직여 초콜릿을 베어먹은 것이다. 뇌에서 기계에 의사를 전달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스탠퍼드대학에서 개발한 브레인게이트2의 경우 모니터의 커서를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데 걸린 시간은 100분의 2초로, 분당 6개의 단어를 쓸 수 있었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이런 장비들이 하루 빨리 대중화되어 스티브 호킹 같은 이 시대의 소중한 인재들에게 업그레이드 된 삶을 열어주길 소망한다.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네오를 집요하게 뒤쫓는 악당 스미스 요원.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네오를 집요하게 뒤쫓는 악당 스미스 요원.

남을 자기 수족처럼 부리는 <매트릭스>
직접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전극을 밀어넣기보다 뇌파측정계(EEG)를 피부에 부착하면 이용자의 부담이 훨씬 덜어진다. 피부에 밀착된 EEG는 뇌파 변화를 증폭·전송하는데, 단지 신체장애자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매우 유용하기에 향후 확장성이 주목된다. 2011년 독일 베를린 공대의 한 실험이 좋은 예다. EEG 센서를 머리에 단 실험 참가자들은 모의운전을 하며 수시로 급제동을 되풀이하는 앞차를 따라갔다. EEG는 운전자가 자기 발로 브레이크를 밟기 0.13초 전에 벌써 그 의도를 간파하고 조기 제동에 나서 3.66m나 차를 일찍 멈춰 세웠다. 이런 시스템은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순간 차의 내장센서가 즉각 운전자 마음을 읽어 발을 내밀기도 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므로 운전자 안전 확보에 유리하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메릴랜드대학 콘트레라스 비달 박사는 뇌파 측정 모자와 뇌파 해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는 이 장비로 뇌졸중이나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뇌파를 읽어 인공관절을 움직이는 실험을 한다. 앞으로 칩의 크기가 더욱 작아지고 뇌파 증폭·전송 성능이 향상되면 EEG를 키미테처럼 귀 뒤나 목덜미 뒤에 붙였다 뗐다 하며 그때그때 간편하게 쓰게 될 것이다. 한술 더 떠 뇌파를 통한 기계 제어를 타인의 신체제어로까지 확장시킨 연구도 있다. 워싱턴대학의 라제쉬 라오(Rajesh Rao)와 안드레아 스토코(Andrea Stocco)는 EEG 무선 네트워크로 남의 몸을 멋대로 움직이는 실험에 성공했다. A가 마음만 먹으면 B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팔을 들어 자기 얼굴을 때리게 하는 식이다. 물론 그러자면 둘 다 머리에 EEG를 부착해야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뇌파를 기계로 읽어내는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 반길 일일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를 집요하게 뒤쫓는 악당 미스터 스미스는 네오의 위치가 파악되기만 하면 바로 근처에 있는 인간에게 접속해 자기 몸처럼 부린다. 스미스와 그가 접속하는 인간은 피와 살로 된 인간이 아니라 사이버 매트릭스 속 디지털 존재들이라 이러한 전환이 전광석화처럼 가능하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제3자가 사적인 네트워크를 해킹해 EEG 이용자의 머리 속을 멋대로 헤집거나 그걸로도 모자라 자기 수족처럼 부리려 든다면 어찌 될까?

과학기술은 SF가 상상한 염력이 실생활에서 웬만큼 구현되게 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뇌파 증폭·전송 네트워크를 이용한 주위 사물의 제어는 단지 장애인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광범위한 혜택을 줄 것이다. 단, 그런 기술이 만일 악의적인 개인이나 빅 브라더를 꿈꾸는 정부 권력에 넘어간다면 사람들은 좀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자동차를 문명의 이기로 쓸지 살인흉기로 쓸지는 운전자의 선택이듯, 여기서 소개한 신기술 역시 우리가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양날의 칼로 돌아올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우리 머리 속까지 훤히 열어젖히는 세상, 당신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고장원 SF평론가>

고장원의 미래의 속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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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