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은미 ‘딴따라’이길 거부하는 보통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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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급조된 무대, 조명도 작은 LED등 하나가 전부였다.(그것도 한쪽에만 세웠다가 뒤늦게 반대편에 하나 더 세웠다) 콘서트에서 중요한 음향장비인 마이크와 스피커는 형편 없었다. 게다가 바로 옆 도로의 자동차 소음이 그대로 들렸다. 광화문 광장 주변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 아닌 돌을 땅에 박아 차량 운행 시 소음이 매우 크다.

도저히 콘서트를 열 만한 환경이 아니지만 성남시향의 연주에 이어 유명 여가수가 무대에 올랐다. 가수 이은미였다. 그는 공연할 때 자신이 신은 신발에서 나는 소음이 거슬려 맨발로 공연해 ‘맨발의 디바’로 잘 알려진 가수다. 한 신문의 가요담당 기자는 “이은미는 프로페셔널리티(프로근성)와 아티스틱(예술적) 감성이 매우 강한 가수”라며 “돈이나 명예보다 음악, ‘음악을 위한 음악’을 생각하는 가수다”라고 평가했다.

그렇게 음악적으로 예민한 그가 덜컹거리는 차량 소음에다 잡음이 웅웅거리는 스피커 옆에서 거리 콘서트를 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것은 그의 음악성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수 이은미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이번 인물탐구의 과제다. 단상에 올라온 그는 “본의 아니게 광화문에 자주 나와 노래를 하는 이은미다”라며 “열흘째 이재명 시장님이 단식하고 있다. 잠깐 뵈었는데 너무 야위어서 여러분이 희망의 밥을 많이 먹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 이상훈 선임기자

성남 시장의 단식 위로 무대에 올라
‘희망이 밥이다-밥 굶는 이재명에게 희망을 먹입시다’라는 이름의 이 콘서트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 방침에 항의하며 단식하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은미는 이 단식을 격려차, 아니 단식 중단을 노래로 권유하기 위해 온 것이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은 “가수 이은미가 힘이 돼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해 왔다”면서 “마침 이날 성남시향 공연이 있어 그것 마치고 잠깐 출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잠깐의 거리 콘서트지만 정치성이 매우 강한 현장이었다. 단상 주변에는 ‘지방자치 역행하면 우리나라 희망없다’ ‘민주주의의 꽃 지방자치! 중앙정부는 꺾지 마라’ 등 정치적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난무했다.

이은미는 단상에 오르기 직전, 천막에서 단식 중인 이 시장을 찾아 손을 맞잡고 다정히 귀엣말을 나누는 등 친밀감을 과시했다. 게다가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같이 손을 치켜들고 흔들기도 했다. 나중에 이 시장을 단상으로 불러내면서 단식에 힘겨운 이재명 시장을 직접 부축하기도 했다. 이은미는 “과거 이 시장과 개인적으로 한 차례 소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참 좋았다”고 서로의 관계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공연을 강행할 정도라면 단순한 한 끼 저녁식사 이상의 공감대가 있음이 분명했다.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연예인을 ‘소셜테이너’라고 부른다.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연예인을 ‘폴리테이너’라고 부른다. 아예 사회성 강한 노래만 부르는 가수 안치환·정태춘·강산에가 있고, 사회성 있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가수 김장훈·윤도현은 그보다 강도가 약한 축에 든다.

이들 소셜·폴리테이너 중 힘 센 사람(여당) 편에 선 사람은 문제가 없다. 이들은 금배지도 달고, 장관도 하며, 프로그램도 많이 맡는다. 관심은 약자 편에 선 소셜·폴리테이너다. 이들은 소신 있는 발언 하나로 출연이 정지되고 노래가 방송에서 중단되는 경우가 숱하다. 사회자 김제동이나 개그맨 김미화, 배우 김부선도 같은 맥락의 연예인이다. 심지어 탤런트 김여진은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요즘 연예인이 두려워하는 것이 일베(일간베스트)다. 한 가요담당 기자는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발언을 했던 한 연예인을 일베들이 집요하게 털고 고발하기도 했다”면서 “일베들의 공격 한 번에 팬의 절반을 잃어버릴 정도여서 요즘 연예인이 적극적으로 소신을 밝히기를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가요계의 한 고참기자는 “요즘 활동하는 연예인을 통틀어 이은미가 가장 정치적 행사에 자주 출현하는 가수일 것”이라며 “그는 데뷔 때부터 한동안은 사회성 있는 노래나 행동을 하지 않는, 단지 ‘씩씩한 가수’라는 인상을 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은미는 왜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치현장에 자주 얼굴을 내밀까. 그는 “음악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에게 정치적 행사에 얼굴을 보이는 것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수 이은미가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 방침에 항의해 단식 농성하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격려하고 있다.

가수 이은미가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 방침에 항의해 단식 농성하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격려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정치와 너무 밀접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 있는 시간 외에 나도 국민의 생활과 똑같은 삶을 산다. 비록 아이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정치참여를)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밝고 건강해지길 바라기 위해 내 재능을 쓰고 싶다.”

이은미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일종의 재능기부라는 것이다. 사실 이은미는 자신이 직접 정치에 나서거나 사회성 강한 노래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소셜·폴리테이너는 아니다. 그는 안치환이나 정태춘 같은 사회성 강한 노래만 고집하는 가수도 아니고, 김민기나 양희은과 같이 학생운동으로 이어진 인연도 없다.

정치적 행사에 가장 많이 출연한 연예인
사실 이런 소셜·폴리테이너라는 말은 우리에게만 있는 조어다. 외국에서는 연예인이 사회·정치문제에 관여하든 안 하든 화제가 되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여배우 제인 폰다는 반전운동가이고, 프랑스 이브 몽탕 역시 인권·반핵운동가다. “이런 행동은 시민으로서 정치 참여·발언에 대한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일 뿐”이라는 배우 문성근의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 방송사나 권력자들은 이들을 ‘백안시’하고 심지어 보복한다. 이유는 연예인은 파급효과, 특히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MBC는 ‘연예인들이 사회적 쟁점에 대해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하면 고정출연을 제한하는 심의규정을 만들었다. 사실 이것은 연예인에 대한 중대한 기본권 침해다. 헌법재판소나 국가인권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사안이다. 또 이 규정은 지극히 기계적인 잣대다. 강자(여당)의 편을 드는 것과 약자(야당)의 편을 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더 다르다.

선거 때만 되면 ‘불려 나가’ 유세장 세몰이꾼이 되는 연예인이 적지 않았다. 그 중 힘이 센 사람의 편에서 얼굴이나 재능을 ‘파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흔히 ‘딴따라’라고 부른다.(딴따라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명시된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는 표준어다). 그것은 천박한 것이 아니다. 생활의 수단, 생존의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자(여당)의 선거를 도왔다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연예인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음악적 자신감에서 나오는 소신
이은미가 딴따라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는 강자의 편이 아닌 사회·정치적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다. 그것도 심각한 불이익을 각오하고 선다는 점이다. 심각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기부를 하는 것은 용기이고, 일종의 저항이다. 아마 그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반항’이라고 여길 것이다.

미디어에 의지해 사는 연예인 이은미도 왜 힘센 사람들이 두렵지 않겠는가. 그도 거리 콘서트에서 “이 자리를 색깔로 덮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분이 저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자신의 이런 행동에 심지어 종북이라는 ‘색깔론’까지 동원해 공격하는 사람이 있고, 이것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우회적 고백이다.

이은미는 1985년 서울 불광동에 있는 동명여고를 나와 1988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신촌 블루스의 객원 보컬로 활동하다가 1992년에 1집 앨범을 내고 정식 데뷔했다. 한 가요계의 고참기자는 “그의 ‘저항성’은 바로 이 로커의 바탕인 저항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며 “친하게 지내는 강산에나 안치환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은미의 사회·정치적 소신 행동은 저항성도 있겠지만 바탕은 음악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는 평가도 있다. 가요계의 한 인사는 이은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은미는 음악적으로 최고의 보컬리스트다. 보통 가수들은 과거 관록이나 미디어로 인기를 유지하는데, 그는 음악성으로 승부한다. ‘애인 있어요’라는 노래는 요즘 20대와 호흡하는 노래다. 이는 젊은층과 정서를 맞추고 공감하는 ‘ing형’(현재진행형) 가수라는 얘기다. 가수 주현미가 자신의 신곡으로 대중과 승부하지 않지 않느냐.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는데 이은미는 음악성으로 롱런한다.”

사실 본업(음악)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없으면 곁다리인 사회·정치적 소신발언은 나오기도 어렵고, 반향도 없다. 그는 앞서 설명한 대로 신발에서 스치는 잡음이 거슬려 신을 벗어버릴 정도의 완벽한 공연을 추구한다. 한 가요담당 기자는 “대부분 가수들은 컨디션이 안 좋아 목소리가 안 나와도 그냥 공연한다”면서 “그러나 이은미는 목소리가 안 나오면 계획된 공연을 취소한다. 그는 패스트푸드식으로 찍어내는 공연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공연을 취소하는 것은 상업적 요소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방송사와 특히 PD들은 컨트롤이 안 돼 힘들어 한다. 요즘 그가 방송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정치적 외압’인지는 확인이 안 된다. 그의 매니저도 “대답할 수 없다”고만 한다. 한 가요계 고참기자는 “요즘 이은미 같은 중견 이상 가수가 출연할 방송 프로그램이 없다”면서 “<복면가왕>이나 <불후의 명곡> 같이 음악을 쇼적으로 표현하는 프로그램에는 이은미 자신이 반감을 가져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음악적 자신감은 ‘원칙’과 ‘까칠함’으로 나타난다. 좀 된 얘기지만 2011년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심사위원이던 그는 음악과 무관한 것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과 짠 점수를 줬다. 게다가 그는 예스(Yes)나 노(No)가 분명하다. 그렇다고 건방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가요담당 기자는 “그는 인터뷰 할 때 예의는 물론, 사고나 취향도 바르다”고 전했다.

나름 가수 이은미에 대한 탐구의 결론은 지극히 간단했다. 그것은 ‘이은미는 대한민국 보통 국민이다’라는 것이다. 그것도 약자를 보듬을 줄 알고,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당당하게 의사를 표시하는 ‘성숙한 시민’이라는 것이다.

광화문 거리 콘서트가 끝나갈 때쯤 관객들이 “이은미, 아름답다”는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대한민국 보통 국민의 행위가 이런 환호성까지 받아야 하는 이 시대가 오히려 역설이다. 이은미는 “이재명 시장이 건강을 회복하면 소주 세 잔을 마실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쯤 가수 이은미는 어느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이 시장과 함께 소주를 홀짝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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