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습기 살균제 참사, 국정조사 10가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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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제도가 없어서 일어났다고 보기보다 기업인과 공무원의 윤리의식과 사회책임의식,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역할 강화 등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국정조사하기로 합의했다. 현재까지 정부에 신고된 피해자만 2336명(사망 462명)이고, 앞으로 피해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모른다. 국정조사는 청문회, 현장조사, 보고서 채택과 검찰 고발 등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국정조사특위에 법률제정권과 예산권이 주어지지 않은 점과 문제를 확인하더라도 다시 검찰에 수사를 요구하는 고발과정을 거쳐야 하는 절차상 한계가 있다. 하지만 베일에 가려진 채 진행된 검찰 수사와 달리 모든 조사활동이 언론에 공개되고, 검찰이 수사하지 못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으며, 조사내용들이 이후 관련 상임위에서 입법과정을 거쳐 제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작지 않다. 국정조사로 해결해야 할 가습기 살균제 과제를 10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 없는 대책 나와야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이면 모두 노출자이고, 사용 후에 나타난 건강문제는 모두 관련 피해로 봐야 한다. 3~4단계 피해자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하고, 폐 이외의 건강피해를 밝혀야 한다. 첫 제품 출시 이후 22년이 지나 암과 같은 만성질환과 기저질환의 문제나 태아 피해도 밝혀야 한다. ‘내 손으로 내가 죽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자학에서 유족과 가족을 구해내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피해자를 괴롭히는 병원기록과 제품구입 영수증 5년 보관기한을 특별법으로 없애고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국가와 제조사가 지도록 해야 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의해 가습기살균제 정부주범 3인방으로 지목된 환경부의 윤성규 장관(가운데)이 1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한국환경기술원을 방문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접수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대 국회는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 연합뉴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의해 가습기살균제 정부주범 3인방으로 지목된 환경부의 윤성규 장관(가운데)이 1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한국환경기술원을 방문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접수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대 국회는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 연합뉴스

2. 모든 제조판매사 청문회 세워 책임 물어야
옥시레킷벤키저의 모든 외국인 대표들을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 5년간 옥시의 불법·탈법행위를 총지휘한 것으로 여겨지는 로펌 김앤장도 청문회 증인목록에서 못 빠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대학교수들이 살인기업의 하수인이자 방탄막이 되었는지 서울대와 호서대 등과 한국건설생활시험연구원의 역할과 문제점도 드러내야 한다. 1994년 ‘세계 최초’라며 이 땅에 가습기메이트라는 제품을 낸 SK케미칼은 사건의 출발점이다. 부산 쌍둥이 자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MIT/CMIT 살균성분을 사용한 가습기메이트의 판매원 애경은 왜 사과 한마디 없는지 따지고 피해대책을 내놓게 해야 한다. 이마트와 GS리테일도 마찬가지다. 홈플러스의 가습기살균제PB 판매 당시 주인인 삼성물산과 영국 최대의 슈퍼마켓 테스코, 세퓨 원료를 공급한 덴마크 케톡스 사장도 불러와야 한다.

3. 공범 정부의 책임 묻고 관련자도 처벌해야
가습기 살균제 정부 주범 3인방은 산업부와 복지부, 환경부다. 산하기관인 기술표준원, 질병관리본부와 식약처, 환경과학원은 행동대원 격이다. 19대 국회에서 피해대책 법안이 제출되고 예산안이 마련됐지만 무위로 돌린 것은 기재부였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심장 영향이 의심되는 동물실험을 한 대학의 연구를 지원해 놓고도 모른 체한 건 미래창조과학부였다. 소비자보호원은 22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 검찰은 사망피해자들의 고발장을 접수하고도 4년이 지나서야 수사팀을 꾸린 배경은 무엇인지, 2011년 국무총리실은 범부처 TF를 꾸리고 피해대책과 예방대책을 내겠다고 했는데 실제 일을 했는지, 2013년 초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전달된 피해대책 건의서는 당선자에게 전달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4. 진실규명은 피해 파악과 피해자 찾기부터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은 몇 명이 제품을 사용하고, 그 중 몇 명이 피해를 입었는지에 답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질병관리본부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 결과 2010년의 전체 인구(4941만명) 중 894만~1087만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사용자가 곧 피해자는 아니다. 옥시 측이 호서대에 의뢰한 노출실험과 서울대 여론조사를 보면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1087만명 중 29만명~227만명이 고농도 노출자 혹은 건강피해 경험자로 잠재적인 피해자로 추산된다. 지난 5월 말까지 정부에 접수된 피해자 2336명의 0.1~0.8%에 불과하다. 신고되지 않은 피해자를 찾기 위해서는 전국의 2~3차 병원 입원·사망 환자 대상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 조사와 인구센서스 조사 방식으로 전국민 대상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

5. 피해지원 ‘가습기 살균제 환경센터’ 설립
1956년 일본에서 발생한 미나마타병은 수십 년의 지난한 해결과정을 거쳤다.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있는 미나마타병 국립박물관은 세계적인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의 발생과 해결과정을 기록하고 전시하고 있다. ‘최악의 환경참사’, ‘한국판 탈리도마이드병’ 등으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모든 경과를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보관하는 기록관, 피해자를 돌보고 치료하며 새로운 피해자를 찾아내는 피해자센터, 사망자 추모관 등의 기능을 갖는 ‘가습기 살균제 환경센터’가 필요하다.

6. 생활용품의 안전점검 및 대책 수립
내용물을 대기 중으로 분무시켜 사용하는 스프레이 제품이 일차적인 점검대상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수천 가지의 스프레이 제품 중 호흡기에 노출되었을 때 안전한지 확인된 제품은 거의 없다. 신규 스프레이 제품은 판매 전에 반드시 호흡독성 안전시험을 의무화하고, 이미 판매되는 스프레이 제품은 일정 기간 내에 호흡독성 안전시험을 거치도록 하고, 안전하지 않은 제품들은 판매를 중단시켜야 한다.

7. 재발 방지 위한 법과 제도 정비
피해자를 찾아내는 일에 필요한 인력과 경비,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 등과 피해자를 구제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이 필요하다. 재발 방지를 위한 사전 예방조치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제조물책임법 등 관련 법률을 보완하고, 환경보건법의 관련 부분을 강화해 생활제품의 독성검사·역학조사 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사후 대책으로 어린이나 산모 등 생물학적·사회적 약자가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나 다수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의도적인 안전의무 불이행으로 발생한 생활안전사고 등에 적용하는 징벌적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8. 재발 방지 위한 사회·문화적 변화도 필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제도가 없어서 일어났다고 보기보다 기업인과 공무원의 윤리의식과 사회책임의식,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역할 강화 등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법과 제도적으로 촘촘한 안전그물을 짜고, 여기에 각 분야에서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안전의식과 사회책임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이미 경험한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배우도록 하는 사회적 학습과정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9. PHMG, PGH, MIT/CMIT 사용 금지
가장 많이 사용된 가습기 살균제의 살균물질인 PHMG는 미국에서는 농약으로 분류해 사용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2011년 사건이 알려진 후 가습기 살균제는 물론 가습기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는 덴마크는 농업용 PHMG와 PGH도 모두 회수해 사용 및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물질로 분류했을 뿐 지금도 판매·사용되고 있다. PHMG, PGH, MIT/CMIT를 판매 및 사용금지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10. 참사 발생의 사회·문화적 배경 곱씹어야
습도 관리를 위해 가습기 사용을 권고해 참사의 한 원인을 제공한 의학계는 습도신화를 짚어봐야 한다. 아파트와 온돌이 결합한 주거조건이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부른 측면이 크다. 구조적으로 환기가 잘 되게 하는 기술적 개선과 더불어 주거문화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평소 입으로 사회적 책임을 말하다가 책임질 일이 생기면 나몰라라 하는 기업의 고질적인 사회책임 문제도 뜯어고쳐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한국에서 주로 발생했지만 실은 영국, 미국, 덴마크, 아일랜드,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 다국적기업의 책임이 막중하다. 사회에 만연한 전문가의 부도덕과 천박한 윤리의식을 높이는 제도적·문화적 변화를 가져올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국정조사 결과의 후속조치는 여야 합의로 보고서를 만들어 채택하면서 검찰 고발로 사법적 조치를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더 이상의 수사의지가 없는 검찰에 기대하기 어렵다. 특별검사제도로 이 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환경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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