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번 광수’ 지목된 5·18 유공자가 지만원씨 등을 고소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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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씨가 운영하는 시스템 클럽 자유게시판에 44광수를 찾았다며 올라온 사진. /시스템클럽

지만원씨가 운영하는 시스템 클럽 자유게시판에 44광수를 찾았다며 올라온 사진. /시스템클럽

“…참으로 예술입니다. 모두 다 파이팅. 광수 44는 분석이 필요 없이 100% 닮았습니다.”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가 지난해 6월 14일 남긴 댓글이다. 그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작업은 도대체 뭘까. 제목은 이렇다. “계엄군에게 체포압송당하는 평양시 위수사령관(제44광수)!”

사진 분석 작업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찍힌 보도사진이나 영상이 중심에 있다. 계엄군에 한 청년이 압송되는 사진이다. ‘광수’란 ‘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지칭하는 이들 만의 표현이다. 이 사진은 다시 북한 군 장성 사진과 화살표로 연결되어 있다. 두 사람의 얼굴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고 두 사람의 눈, 광대뼈, 입 주위, 미간 등에 표시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닮았다’는 것이다. 친인척이라던가, 우연히 닮은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다. 명시적으로 써놓지 않았지만 같은 사람으로 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44명 째 찾았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종종 그런 사진들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원로코미디언 송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통신사가 송출한 북한 수뇌부 사진 속에 그가 출연(?)한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 김정은 옆에서 북한 군복을 입고 박수치는 인사가 있는데 아닌게아니라 닮았다(이 사진 속 인사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송해 북한 간첩 루머설’ 등도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농담이다. 그런데 지만원씨와 시스템클럽의 생각은 남달랐다. 사진 속 인물들이 북한이 파견한 특수부대 멤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공헌’으로 1980년 이후 북한에서 승승장구를 해 주요인사로 올라섰다는 것이고.

처음으로 돌아가자. 지씨 등의 주장이 설사 다 맞다고 치더라도 남은 사진에 따르면 계엄군에 연행되어 조사까지 받은 사람인데 신원파악이 안되었을까. 앞의 ‘44번째 광수’의 댓글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있다. 그런데 이 댓글을 쓴 이의 결론부분도 희한하다.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게 저렇게 체포되었던 북괴군들이 어떻게 해서 다 풀려나고 북한으로 들어가 저런 지위까지 올랐느냐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 군부실세에 간첩이 박혀 있었다는 반증 아닙니까.”

“글쎄 말입니다. 저도 지난해 12월에 약속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사진전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제가 44광수라나….” 사진 속의 주인공 고광덕씨(56)의 말이다. 전진수 평양시 위수사령관? 당연 그날 처음 들은 이름과 직책이다. 그는 1980년 당시 사진이 찍힌 날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5월 27일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진압 직후라 공무원들만 밖에 나올 수 있었는데 거리에 나왔다가 연행되었습니다.” 항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도청 앞 분수대에서 시민들 자유발언대가 있을 때 연설도 했다. A4용지에 ‘전두환 이희성(편집자 주: 당시 계엄사령관) 당신들은 누구의 군인인가’라고 그가 사인펜으로 써놓은 것이 발견되면서 고초를 겪었다. 그냥 공무원 수험생이었지만 ‘시민군 홍보부장’이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상무대 영창에 갇혀 67일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그 후 지만원씨와도 통화를 했습니다. ‘내가 사진 당사자다. 전 언론사를 모아놓고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다면 화해와 용서차원에서 고소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아무 말 않고 듣고 있더군요.” 결국 고씨 등 8명은 5월 12일 지씨 등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실 이런 의문이 떠오를 수는 있다. 지씨 등의 주장은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이런 호기를 북측이 이용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씨 주장처럼 그 규모가 600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간첩 한 두명이 침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그런 점을 노린 겁니다. 왜 괴벨스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거짓말은 처음엔 부정되고 그 다음엔 의심을 받지만 반복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는 말 말입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의 말이다. 그가 소속된 5.18연구소(소장 박해광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5월 12일 ‘5.18과 역사를 둘러싼 정치’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김교수는 일부 탈북군인들로부터 나온 “80년 당시 북한 매체들이 광주상황을 생중계하듯 보도했다”는 증언을 ‘노동신문 사료연구’를 통해 검증했다.

검증결과는? 당연 사실이 아니었다. 김씨의 논문에 따르면 노동신문에 5.18관련 사진이나 자료가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사건이 마무리된 후 외지보도들이 나온 뒤였다. 이른바 ‘북한개입설’은 허구라는 것이다. “저는 이게 한국에서 ‘분단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그쪽에서 하는 주장은 사실 터무니없는데, 우리로서는 검증이 불가능한 탈북자나 북한의 자료로 이야기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공개적인 검증도 안 되고 접근도 안 되니 왜곡폄훼세력들의 주장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이런 담론이 확산된 데는 지난 8년간의 보수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주장했다. “자료를 검토해보면 80년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국정원은 참여정부 때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도 조사했고, 이미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그 조사결과는 공개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이미 헌재 판결 등을 통해서 민주화운동으로 역사적 결론이 났지만 보수정부는 그것이 내심 불편하기 때문이에요. 어찌됐던 왜곡펨훼세력들을 방치하면 5.18은 이념논쟁의 수렁에 빠지는 효과가 나타나니까요.”

어찌됐던 지씨 등의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제 한국에 들어와있는 탈북자들에게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는 뻗치고 있다. 기사를 쓰는 5월 13일에도 1980년 5월 22일에 찍힌 기록영상 속에서 인민군 총정치국 장교 출신인 한국정책금융공사 김영희 북한경제팀장,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등 탈북자들이 등장한다는 주장을 막 올린 참이다. 이 정도면 병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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