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옛길에서 듣는 김광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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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김광석의 기일이다. 그는 1996년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 후에 더욱더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른다. 그의 노래를 부르며 입영을 하고 서른을 넘기고 거리를 헤매고 60대의 삶이 된다.

이 나라의 어엿한 도시들 어디나 거대하게 운집한 백화점들의 화려한 성채를 돌아 조금만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세대 전의 시간으로 금세 이동한다. 서울의 명동 그 화려함 속에도 여전히 생기를 잃지 않은 골목이 살아 있고,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거리나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뒤편 충장로의 예술의 거리도 의연하다.

대구 또한 그러하다. ‘진골목’, ‘근대 골목’, ‘약전 골목’, ‘읍성 골목’ 등으로 불리는 ‘대구 옛길’로 들어가면 오래된 소리들이 들려온다. 이 골목에서 경상감영공원 부근까지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첫머리, 진골목 초입에 ‘정소아과의원’이 있다. 2층 ‘양옥’ 건물이다. 이 말, 곧 ‘양옥’이 가진 의미는 각별하다. 박완서나 오정희의 소설에서 엿보이는 풍경들, 그러니까 그 시절 서울이나 인천 혹은 춘천이나 대구 같은 도시의 유서 깊은 골목에 당당히 들어서 있는 양옥은 부와 문화의 랜드마크였다.

디자인 연구자로, 이 나라 현대사의 상흔과 욕망을 아파트라든가 피아노, 자동차 등으로 해부한 박해천의 책 중에 <아수라장의 모더니티>가 있다. 전작인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과 더불어 박해천 스스로 ‘콘유 3부작’이라고 부른다. 그만이 거의 독창적으로 발명한 듯한 내러티브 방식, 즉 사물이 주체가 되어 발화하는 ‘비평적 픽션’ 양식으로 그는 20세기 후반기 한국 사회의 욕망을 진단했는데, 근작인 <아수라장의 모더니티>에서도 역시 2층 양옥이 등장한다. 1960년대 서구식 2층 양옥과 인공 도시의 욕망들! 그 편린을 정소아과의원 건물에서 볼 수 있다.

청라언덕 옛 선교사 사택.

청라언덕 옛 선교사 사택.

가곡 ‘동무 생각’에 나오는 청라언덕
이 ‘양옥’을 시작으로 몇 걸음 걸으면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 집>의 실제 배경이 된 집이 있고, 새롭게 단장된 시인 이상화의 고택이 있으며, 일제시대 민족운동가 서상돈의 유택을 포함하여 여러 근대 건축물이 의연히 서 있다.

이 진골목은 곧 약전골목으로 이어진다. 조선 효종 때부터 봄가을로 약령시가 열렸던 곳이다. 아, 과연 그럴 만한 곳이구나, 하고 방문자는 특유의 냄새로 확인하게 된다. 약령시의 끄트머리에 제일교회 구당이 있고, 계산성당이 있으며, 그밖에도 옛 교남 YMCA 건물에, 90계단을 거쳐 청라 언덕으로 올라가게 된다.

청라언덕!

그렇다. 가곡 ‘동무 생각’에 나오는 바로 그 청라언덕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1922년의 노래로 처음 제목은 친구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우(思友)’였으나 나중에 ‘동무 생각’으로 바꿨다. 그러니까 적어도 한국전쟁 이전까지 ‘동무’는 아주 좋은 뜻이었다. 실은 사랑의 노래라고도 한다. 작곡가 박태준이 경북여고 학생을 짝사랑했는데, 그 학교의 교화가 백합이라고. 청라언덕의 ‘청라(靑蘿)’는 봄에 피어나는 푸릇푸릇한 담쟁이 넝쿨을 뜻한다. 이 동산에 서양 선교사 가옥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 가옥의 붉은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을 뜻한다.

99계단을 올라가 동산에 서서 대구의 중심가를 완상한 후 다시 옛길로 스며든다. 대구는 일찌감치 음악 문화가 발달한 도시다.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를 중심으로 관현악 문화가 자리를 잡았고, 1952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를 시작으로 종교음악의 산실인 계명대를 비롯하여 경북대, 영남대 등이 이 일대의 클래식 교육문화를 이끌었다.

그 한 증거가 클래식 감상실 ‘녹향’이다. 지금은 중구 향촌문화관으로 이전했다. 이 문화관도 옛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을 개·보수하여 2014년 10월 30일 개관한 것이다. 1950년대 피란 시절,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하는 향촌동, 그 옛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이 문화관 지하에 ‘녹향’이 들어왔다.

‘녹향’은 1946년에 문을 열었다. 나는 까까머리 고교 1학년 때, 종로 1가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를 가본 일이 있어 그 퀴퀴하면서도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잠깐이나마 흠향한 적이 있지만 그 후로 경향 각지의 유서 깊은 클래식 감상실이 대부분 멸종했다.

음악 감상실 녹향의 회원 이름이 새겨진 오래된 의자.

음악 감상실 녹향의 회원 이름이 새겨진 오래된 의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다만 ‘녹향’은 전쟁과 가난의 시절에도 10여 차례 이사를 하면서 70년 가까이 버텨 왔다. 터줏대감 이창수 선생은 2011년 10월 타계했고, 대를 이어 아들 이정춘씨가 명맥을 이어왔다. 몇 해 전, 낡고 후미진 거리의 ‘녹향’을 찾았을 때, 이정춘씨는 “‘가고파’를 작곡하신 김동진 선생, 시인 유치환, 신동집, 양명문 선생, 소설가 최정희 선생 등이 이곳을 안식처로 삼으셨다”고 했다. 대구의 여러 대학 음악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녹향’에서 연주와 감상과 격렬한 토론을 하였고, 아마도 모두들 사랑도 나눴을 것이다.

그리고 김광석!

어찌 빼놓을 수 있겠는가. 김광석은 현재 대구의 음악 문화뿐만 아니라 도시 관광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방천시장과 맞물려 있는 350여m 거리가 ‘김광석의 다시그리 길’로 단장되어 펼쳐져 있다. 몇 해 전에는 대구 옛길의 한 모퉁이에 조성되어 있었는데, 새로 말끔하게 조성된 곳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노랫말을 읽을 수 있고, 그의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볼 수 있으며, 기타를 메고 있는 김광석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대구 방천시장의 ‘김광석 다시그리 길’

대구 방천시장의 ‘김광석 다시그리 길’

자, 나의 ‘관광 가이드’는 여기까지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나는 일부러 지금까지 대구 옛길과 청라언덕과 김광석 거리를 평온하게 묘사하였다. 실제로 그 거리와 공원과 조형물들을 보면 일단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러나 뭔가 한 줌 정도 빠졌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

모든 기억은 망각을 전제로 한다. 어떤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망각해야 한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망각을 해야만 하는 모순이 있기에, 언제나 기억작업은 정밀해야 하고 진지해야 한다.

앞서 두루 살핀 길들의 기억들, 그 공간과 조형물과 상징들을 다시 살피건대, 과거에 대한 순수한 혹은 순진한 향수와 낭만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낭만화된 기억은 곧장 ‘관광 콘텐츠’로 직결된다. 거꾸로 말하여, 우선 관광 콘텐츠 개발 차원으로 접근하여 옛것의 어떤 요소를 핀셋으로 뽑아내서 그 기억의 단면을 과장하고 낭만화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물론 연인끼리 가족끼리 나들이를 와서 슬픈 감정에 젖어 울다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억을 ‘좋았던 옛 시절’로 치환하고, 그 감정선에 따라 과거의 흔적을 복원하거나 망실된 것을 재현하는 것은 그 ‘옛시절’이 치러야 했던 역사의 과중한 압력을 잊게 만들고 시간의 버거운 밀도를 말갛게 소거해 버린다. 그래서 기억이 곧 망각이 되는 것이다.

1월 6일, 김광석의 기일이다. 그는 1996년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 후에 더욱 더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른다. 그의 노래를 부르며 입영을 하고 서른을 넘기고 거리를 헤매고 60대의 삶이 된다. 나는 그의 노래 중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어느 하루 비라도 /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 쓸쓸한 사랑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노래를 나는 부르지는 않는다. 내가 불렀다가는 사랑하는 내 가족도 노래방의 ‘중지’ 버튼을 누른다. 그래서 듣기만 한다. 노래 잘하는 사람들에게 청하여 듣고, 어쩌다 시간의 압박에 못 이겨 마음이 심란할 때 그 노래를 듣는다. 그런 감정들까지 최대한 복원하고 재현하고 기억하는 것, 그래서 이 대도시의 수많은 흔적들이 ‘관광자원’이 아니라 ‘삶의 유산’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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