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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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전략대학원 김진향 연구교수는 보수의 본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구 출신이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군이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공부도 쭉 대구에서 했다. 뼛속부터 ‘영남 혹은 대구 사람’인 셈이다. 그는 요즘 ‘종북으로 몰리는 것을 각오하고’ 북한 바로 알기 강연을 다닌다. 강연 중에는 현 정부의 대북 및 통일정책을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그런 점에서 보수적 영남, 그것도 대구 정서에서 보면 그는 약간 ‘삐딱한’ 인물이다. 물론 출신지역이 인간의 의식을 전부 지배하지는 않지만 혈연·지연·학연으로 엮여 있는 우리 현실에서 주변과 초연하게 살기도 어렵다. 게다가 권력자의 의지와 다른 주장을, 그것도 보복이 뒤따를 위험이 큰 주장을 당당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치인은 물론 학자마저도 처벌되는 경우가 흔했고, 최근에는 다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기류다. 그런 면에서 만 47살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나이에 그것은 대단한 ‘용기’일 수도, 섣부른 ‘만용’일 수도 있다.

그는 “혹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솔직히 다들 그렇게 말한다”면서 “결론적으로 늘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종북 프레임은 북한은 ‘나쁘다’, ‘악이다’에 동의하지 않으면 누구나 종북이 될 수 있다”면서 “북한을 공부하는 학자 입장에서 제대로 알아보고, 말하는 것도 종북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김진향 교수는 ‘학자적 양심’과 ‘민족적 재앙’을 막기 위해 북한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김진향 교수는 ‘학자적 양심’과 ‘민족적 재앙’을 막기 위해 북한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대단한 ‘용기’인가, 섣부른 ‘만용’인가
그가 ‘종북을 각오하고’ 말하는 개성공단과 북한, 그리고 통일문제는 과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사실’이었다. ‘개성공단은 북측에 단순한 남북경협 장소가 아니라 남북평화 시대를 열어가는 역사적 상징이다’, ‘북측은 장기적으로 개성을 통일한반도 연방국가의 수도로 잠정 지목하고 있다’, ‘천안함사건 등으로 시끄러웠을 때도 북측 사람들은 오히려 주재원들을 더 따뜻하게 대해줬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달러 박스가 아닌 한국 측에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는 곳’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진실에 대한 학자적 양심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학자의 입장에서 진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의외다.

먼저 진실 대목에 대해 따져보자. 그가 북한에 대해 나름 사실과 진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론은 물론 체험적으로 북한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의 주된 연구분야는 북한 체제와 남북관계, 그리고 평화통일이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갔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만난 사람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다.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여성근로자. 김진향 교수는 개성공단으로 경제적 이득을 보는 측은 북한보다 남한이라고 주장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여성근로자. 김진향 교수는 개성공단으로 경제적 이득을 보는 측은 북한보다 남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2년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다. 인수위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설계작업에 참여한 그는 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지금까지 이론적으로 북한을 공부했다면 이후부터 북한에 대해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공부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때 놀란 것이 국가정보원이나 통일부 대북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북한을 잘 모르더라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NSC 회의를 하면 장·차관도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정원, 통일부, 국방부에서 30년간 대북문제를 다뤘다는 사람도 북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다가 ‘북한은 불가예측성’이라는 말로 회피한다. 그것은 대학원생이나 북한에 대한 초보자들의 얘기다. 북한을 30년간 담당했으면서 불가예측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니 답답하더라.”

그는 청와대에서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 넓은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숱한 교섭과 협상을 해봤다.

오랜 남북관계 경험과 개성공단 체험을 엮어 낸 책 <개성공단 사람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랜 남북관계 경험과 개성공단 체험을 엮어 낸 책 <개성공단 사람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MB정부 인수위부터 개성공단 철수 준비
그리고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단 근무를 자원했다. 그는 “남북관계를 연구한 학자의 입장에서 북한사람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 개성공단이었다”면서 “박사후 과정을 하는 셈치고, 3년만 개성공단에서 근무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1월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으로 발령을 받고 2월에 개성공단에 들어가 만 4년간 근무했다.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해 봤다.

그가 2011년 만 4년 만에 개성공단에서 나온 것은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개성공단에서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체험했다. 그는 당시 “천안함 침몰사건이 터졌을 때 처음에는 우리 쪽에서 좌초 얘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북측 소행으로 선회했다”면서 “연평도 포격사태를 보며 상황관리가 잘못되면 실제 전쟁이 날 수도 있겠다, 무지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북한에 대해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천안함에 이은 연평도 포격사태를 경험하며 남북이 서로를 잘 모르고,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재앙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그 민족적 재앙을 막기 위해서 개성공단은 물론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북한에 대한 진실은커녕 기본적인 사실, 팩트(사실)조차 알려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사실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작가들과 함께 자신의 체험담을 담은 <개성공단 사람들>이라는 책을 2015년에 썼다. 이 책의 내용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발표는 물론 보수언론, 특히 종편에 나와 거침없이 말하는 ‘북한전문가’들의 주장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특히 그는 북한 체제가 우리 종편에서 말하는 그런 즉흥적이 아닌, 나름 정교한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은 말도 안 된다고 느낄 줄 모르지만 북한은 초지일관 평화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자신이 직접 보고, 접촉하고, 토론했던 북한의 진실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평화통일은 헌법적 가치를 넘어서는 민족적 가치, 근본가치라고 표현했다. 이 근본가치가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물론이지만 정당도 북한에 대한 정확한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줄 의무가 있다”면서 “그런데 전문가들은 매너리즘과 적당한 타협으로 입을 닫고 있는데, 이것은 거짓에 대한 방조자, 나아가 동조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래 개성공단은 2011년까지 지금보다 10배나 큰 규모로 계획됐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로 확장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인수위 시절 개성공단 중단에 대한 용역을 주는 등 이미 철수를 준비했다고 증언했다.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 개성공단 철수를 검토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은 일관되게 개성공단에 대해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북한 체제의 ‘달러 박스’라는 말은 2003년에 미국에서 나왔다. 내가 청와대 담당관 시절이다. 미사일·핵의 돈줄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와 경제를 위해 미국의 반대를 극복하고 개성공단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 개성공단 철수를 검토한 것은 외교적 메커니즘은 모르겠지만 미국의 요청 혹은 강요가 어떤 형태로든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도 김대중 대통령과 합의한 6·15 선언,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한 10·4 선언을 지킬 것인가.
“물론 당연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이 우리에게 한 첫 번째 제안이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7·4 남북공동성명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가 했던 제안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이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 등 나름 통일정책을 표방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북측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론의 연장으로 본다. 상호존중, 평화정착 과정을 거친 통일이 아닌 ‘잡아먹겠다’는 것이라고 북한은 의심한다. 우리 국정원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의도를 표시하기도 했고.”

전국 다니며 ‘사실과 진실’ 강연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은 경제적으로 맞는 말이지 않은가.
“맞다. 그러나 잡아먹는 통일은 재앙이다.”

우리 헌법은 평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또 절차적 연합을 거쳐 점진적인 통일이 공식적인 통일방안이다. 일방적 흡수통일이 아니다.
“통일에 대한 무지가 널려 있다. 지금 우리의 공식 통일방안은 1989년 전국의 관계 전문가가 모여 선포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이것은 1단계 화해협력-2단계 남북연합-3단계 완전통일 등 단계별로 이뤄지도록 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 3단계 통일만 생각한다. 앞의 단계를 건너뛰는 것은 재앙이다. 정부는 물론 최소한 통일부라도 이런 통일교육을 해야 하는데 안 한다. 오히려 통일부가 안보교육, 분단교육을 하고 있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가 핵심이다. 북한이 추진한 많은 합의들의 핵심은 ‘북한 체제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다. 북한의 입장에서 그것은 생존의 기본적 문제이고, 북한은 핵이 이 기본적 생존을 위한 마지막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라? 당연히 안 한다. 먼저 자신들의 체제 보장을 약속해야 그 후 점차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거듭 “나는 학자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학자는 ‘1 더하기 1은 2’라는 수학·과학적인 말을 해야 한다”면서 “북한에 대해 직접 체험하고,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없이 많이 분석해 봤다. 북한에 대한 무지와 함께 이를 정치적으로 보는 순간, 그것은 재앙이다”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야당에도 화살을 돌렸다. “이석기 사건을 빌미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간첩단 사건이 조작으로 밝혀지는데도 야당은 자신도 종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외면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거짓과 허구, 왜곡이 켭켭이 쌓여 있는 한 분단체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대한민국의 30년 후를 그려내는 국가미래전략을 기획하고, 강의하고 있다. 정치·외교·통일전략은 물론 과학기술, 경제·인구·자원·기후 등 관련 전문가들이 미래의 도전과 대응책을 모색하는 자리다. 팩트(사실)와 진실에 근거해 미래에 닥칠 재앙을 극복해야 한다는 그의 남북관계 지론과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동성동본이라는 ‘진리 아닌 굴레’와 싸워 결국 결혼을 이뤄냈다. 아마 이러한 그의 도전, 반항의 기질이 지금 ‘북한 바로알기’ 강연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결혼한 그는 <아내에게>라는 시집을 낸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하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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