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시대적 소명 이룰 새 리더인가 금수저 문 ‘에고이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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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최고 주목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안철수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말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신당 창당에 나서고 있다. 그의 정치적 ‘선택’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야권 전체, 나아가 정국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1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권주자로 꼽히는 그로서는 절체절명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기도 하다.

사실 안철수의 승부는 이전에도 몇 번 고비가 있었다. 명문대 의대를 나온 벤처사업가로, 자신이 만든 기술을 통 크게 사회에 제공하는 ‘기부’의 아이콘으로, TV 예능프로에 나와 ‘순수한’ 얼굴을 알리며 안철수는 지명도를 높였다. 전국을 도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형님’으로 등장했다. 이는 몇 푼 아끼기 위해 딸을 자신의 건물 용역업체 직원으로 올린 ‘얌체 같은’ 이명박 대통령의 CEO 리더십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안철수는 각종 정치 여론조사에서 상위에 올랐다. 2011년 8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는 유력한 야권 후보로 거론되면서 정치권에 ‘안철수 현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9월 6일 전격적으로 아무 조건 없이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다. 이것은 안철수의 정계입문 첫 번째 ‘철수’다. 서울시장 양보는 ‘안철수 현상’을 더욱 확대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안철수는 2012년 대선을 앞둔 9월 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신당 창당작업도 가속화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갑작스럽게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돕겠다며 후보를 사퇴했다. 안철수의 두 번째 ‘철수’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 13일 탈당 선언을 하기 위해 국회 정론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 13일 탈당 선언을 하기 위해 국회 정론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세 번의 ‘철수’ 이번이 네 번째 기회
안철수는 대선에서 ‘어정쩡하게’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다 선거 결과도 보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 있던 그는 3개월여 만에 전격 귀국,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4년 2월에는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3개월 안에 창당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민주당과 전격 합당해(정확히는 흡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에 올랐다. 이것이 세 번째 ‘철수’다.

번번이 신당 창당 문턱에서 ‘철수’한 안철수에게 이번은 네 번째 기회다. 삼세 번이나 중도에 포기해 안철수는 ‘철수정치’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사실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작업은 지명도, 인재풀, 자금력 등 웬만한 정치적 역량이 아니면 힘든 작업이다. 안철수가 몇 번의 창당작업을 그만두고, 기성 정당과 통합(흡수)할 수밖에 없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은 어떻게 될까. 아마 이번에는 ‘철수’하지 않고 창당할 것이다. ‘철수정치’라는 오명도 오명이지만 정치 신인이 대폭 늘어나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창당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여야 모두 개혁공천이라는 명분으로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면 기호 3번은 물론, 88억원의 국고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어 자금문제도 해결된다. 신당 창당의 필요조건이 거의 충족돼 있다.

관건은 안철수 신당이 명실상부한 ‘안철수 현상’으로 승화될 수 있느냐이다. 정치는 천운 혹은 시대가 맞아야 한다. 바로 그 천운은 시대적 소명, 요즘 말로 하면 ‘현상’이다. 자신이 그 시대적 소명을 창조할 수 있으면 큰 정치인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40대 기수론’이나 ‘군정종식’, 김대중 대통령의 ‘수평적 정권교체’ 등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를 인터넷 시대와 결부시켜 ‘노무현 현상’을 일으키며 대권을 잡았다.

최소한 시대적 소명을 간파하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 전략가들의 ‘어젠다를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이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모두 잘살게 해주겠다’는 어젠다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야당보다 훨씬 급진적인 ‘경제민주화·창조경제’라는 어젠다로 박근혜 대통령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 공약 실천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안철수도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을 만들어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안철수 현상이란 무엇인가. 안철수와 정치를 함께했던 김성식 전 의원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안철수 현상’과 ‘정치인 안철수’는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 정치와 공론장에서의 과도한 이념논쟁의 피로감, 그리고 새로운 리더의 등장에 대한 기대가 결합돼 나타난 것”이라고 규정했다.(<경향신문> 12월 22일자)

안철수 의원이 12월 21일 탈당의원과 함께 신당 창당 구상을 밝히고 있다./강윤중 기자

안철수 의원이 12월 21일 탈당의원과 함께 신당 창당 구상을 밝히고 있다./강윤중 기자

지금은 어떠한가. 여론조사 전문가인 정치컨설팅업체 윈즈코리아 박시영 부대표는 “안철수는 탈이념의 중도적 이미지로, 양당에 비판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다”면서 “15~20%에 이르는 지지층은 지역적으로 고르게 분포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안철수의 지지율은 정치입문 이후 10%대 미만으로 급락했다. 최근 3개월 안철수의 지지율은 7~8% 수준에 머물다 최근 신당 창당으로 주목을 받으며 13.5%로 늘었다.(12월 3째주) 하지만 이는 김무성(20.3%)과 문재인(19.1%)보다 낮다.

문제는 그가 직접 기성정치권에 들어간 이후 왜 지지율이 폭락했느냐다. 기성정치권에서 걸었던 그의 행보를 보면 ‘아니다’라는 평가가 많다. 그는 제1야당 공동대표를 했지만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거나,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등 지극히 ‘아마추어적’ 발언을 하다 거둬들였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국정원 댓글사건’ 대책을 총괄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한국사 국정교과서 문제, 노동법 개정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백남기씨 문제 등에 대해 그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안철수와 같이 보수적 개혁세력으로 분류되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조차 “정치에서 그동안 보여온 행보에 대해 결코 동의할 수 없고 지지할 수 없다”면서 “훌륭한 생각과 달리, 행동으로 보여준 부분이 너무 없다”고 혹평했다. (12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선 안 된다’는 중도 신념을 가진 그에게 세월호 단식이나 광화문 노동자 집회는 모두 ‘낯선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4·19 학생혁명이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도 ‘잊어야 할’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가벼운’ 역사·철학적 인식에서 역사교과서 논쟁은 지루할 수 있다. 특히 대북문제에 대해서 그는 ‘낡은 이념’이라고 생각할 만큼 보수적이다. 그의 아마추어적 정치행위와 가벼운 역사·철학(이념)의 중도노선이 야당과 자신의 지지율 하락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요인이 됐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 1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 1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때 50% 넘는 지지율, ‘안철수 현상’이란
무엇보다 안철수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의 문제다. 이것은 이번 신당 창당과정에서도 노정됐다. 정당은 사람이 9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다. 그게 주식회사와 다른 점이다.

그런데 의외로 안철수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과거 그와 같이했던 사람들마저 대부분 떠났다. 이번에도 그는 달랑 홑몸으로 탈당했다. 그가 ‘유일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한 송호창 의원마저 행동을 같이하지 못했다. 뒤늦게 호남의원 몇몇과 과거 그의 비서실장이 탈당했지만, 그들의 탈당 변에서 ‘안철수와 정치생명을 같이하기 위해’라는 의원은 한 사람도 없다. 단지 ‘문재인이 싫고’ ‘문재인당으로서는 당선되기 어렵다’는 개인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는 왜 자기 사람을 만들지 못할까. 송호창 의원이나 김성식 전 의원, 윤여준 전 장관이나 최장집·장하성 교수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측 가능하지 않고, 의외의 결정을 하고, 상대와 공감하지 않고, 자기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 스타일’을 지적한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안 의원의 정치는 초엘리트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 그에게는 정몽준 전 의원의 모습이 발견된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귀공자 스타일이다. 게다가 공부도 잘해 서울대(의대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유학 과정을 거친 점 등 유사한 점이 많다. 정 전 의원이 2002년 ‘월드컵 특수’를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변죽만 울리다 주저앉은 것도 비슷하다. 두루뭉술하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정몽준의 어법과 안철수의 어법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돈은 많은데 돈을 쓰지 않는 것도 두 사람이 비슷하다. 본인은 청렴을 이유로 대지만 상대는 ‘짠돌이’ ‘구두쇠’라는 평가를 내린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현실감각은 한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면서 “현실감각을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스타일 차원을 넘어 개인적 성향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정몽준 의원에 대해 ‘내 현실로만 소통하는 에고이스트’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정혜신의 심리평전 <사람 vs 사람>, 2005> 정 박사는 ‘네 현실’과도 소통하는 리얼리스트와 정반대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런 에고이스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별한 이유는
안철수 의원은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 출신이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대 의대 이진석 교수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교수는 ‘의사가 본 안철수의 선택’이라는 칼럼에서 “의사는 공부만 하면 어떤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특유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면서 “물론 이런 자신감이 도를 넘으면, 헛똑똑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또 “(안철수는) 성공신화의 자신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오히려 시스템을 초월한 메시아의 선언만이 횡행한다”고 지적했다.(<경향신문> 12월 20일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공부 잘하고, 명문대 의대를 나오는 엘리트 코스를 걷고,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삶 그 자체가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과도한 나머지 흙수저들이 노는 현실과 동떨어진 메시아적 선언만 나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그가 보인 국회의원 정수 축소나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 주장은 메시아적 공언으로 이진석 교수가 지적한 ‘헛똑똑이’의 대표적 사례다. 아르헨티나의 체 게바라 같이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지만 철저하게 혁명군과 밑바닥에서 싸우며 결국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인물도 있다. 체 게바라에겐 이상사회를 위해 바쳤던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는 서민대중에 대한 애정과 열정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멸시와 분노가 서려 있어 보인다.

결국 결론은 안철수 신당이 총선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하는 데 모아진다. 과거 사례를 보면 선명야당을 표방하고 뛰쳐나간 신당은 성공했지만,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뛰쳐나가 성공한 신당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윈즈코리아 박시영 부대표는 “그의 지지층인 탈이념·중도적 지지층은 표의 결집력이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라며 “더구나 대선보다 훨씬 투표 결집력이 약한 총선에서 안철수의 표가 얼마나 결집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ay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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