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공허한 소음에 질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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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관은 미술학도 출신답게 시적 이미지를 펼쳐보이는데, 궁극적으로는 기도의 노래가 된다. 그렇다고 그의 노래가 ‘복음성가’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앞뒤 다 제쳐두고 전도와 힐링을 추구하는 복음의 노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

오랜만에 홍순관의 노래를 들었다. ‘체육시민연대’ 송년의 밤 행사에 그가 노래를 부르러 왔다. 따스한 말과 따스한 노래였다. 오랫동안 노래를 불러온 사람답게 1시간 가까이 차분하게 자신의 시간을 이끌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공기도 흘렀다.

참석자 가운데 상당수가 홍순관이 누구인지 모르는 분위기였다. 당사자가 몇 번 그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름은 들어봤어도 노래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름도 노래도 잘 알지만 금세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그랬다. 미안했다. 책을 냈는데, 그래서 이 송년 모임에 새 책과 그동안 냈던 음반도 들고 왔는데, 내 스스로 구하여 읽거나 듣지 못했으므로 진심으로 미안했다. 책의 제목은 <나는 내 숨을 쉰다>이다.

여러 자리에서, 특히 집회에서, 또 그 밖의 자리에서 들은 느낌으로 홍순관의 노래는 시적이다. ‘시’라고 해도 되겠지만, 시보다 노래가 한 칸 아래에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 그가 시의 상태보다는 정녕 노래의 상태를 동경하기 때문에 다만 ‘시적’이라고 쓴다.

미술학도 출신답게 그는 시적 이미지를 펼쳐보이는데, 궁극적으로는 기도의 노래가 된다. 그렇다고 그의 노래가 ‘복음성가’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앞뒤 다 제쳐두고 전도와 힐링을 추구하는 복음의 노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결국 기도가 된다. 그는 노래를 하면서, 그 노랫말이 일러주는 대로 손짓과 눈짓을 더불어 하는데, 바로 그 순간에 본 사람은 그 모양만 보고 ‘찬양’하는 줄 알겠지만, 오랫동안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특정한 종교를 넘어서는 차원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다.

가수 안치환

가수 안치환

백창우·이지상과 함께 시 짓고 노래 불러
그의 기도, 아니 노래는 그러나 오늘의 상황에서 종종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는 스스로의 음악적 지향과 신학적 견해에 따라 주류 기독교의 기능주의적 음악문화와 발을 끊었다. 동시에 ‘기도’를 잃지는 않았기에 일반 대중음악에서도 쉽게 들을 수는 없다. 강력한 투쟁과 저항의 힘을 보여줘야 하는 대규모 민중집회에서도 그의 ‘찬송가스러운’ 음악이 설 자리는 드물었다.

그러나 바로 그랬기에 그는 계속 노래할 수 있었다. 시대의 상흔과 동떨어진 기능적 복음주의의 찬양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들었고, 주류 대중음악의 공허한 소음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더러 그의 음악을 찾았고, 서로의 강렬한 우애와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소박하고 진지한 모임에서 그를 초대했다. <체육시민연대>의 송년 모임도 그런 자리였기에 그를 초빙하게 되었고, 끝내 그 자리는 아름답게 어울리는 자리가 되었다. 대부분 40·50대 남성들인 ‘체육’ 전공자들은 팔짱을 끼고 그의 음악을 듣다가 끝내는 박수를 하면서 그의 음반도 사고 책도 샀다.

가수 이지상

가수 이지상

그런 얘기를 이지상과 나눴다. 공연장보다는 축구장에서 자주 만난다. 거의 매주 만난다. 매주 수요일 3시, 성공회대 운동장에서 ‘뽈’을 차는데, 지난주에도 만나서 전반전 뛰고, 하프 타임 때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가 홍순관 얘기가 나왔다.

백창우, 홍순관, 이지상 등은 서로 어깨동무해가며 오랫동안 시를 짓고 노래를 불러 왔다. 최근에도 함께 작업을 했다. 어린이 문학과 한글 교육을 바탕으로 이 나라 참된 교육의 밀알이 되셨던 고 이오덕 선생님을 기려 2013년부터 시작된 ‘이오덕 동요제’를 함께하고 있다. 지난 5월에 그동안 아이들의 시에 곡을 붙여 불렀던 작품들을 노래집과 CD, 그리고 시집으로까지 묶어냈다.

이지상은 노래를 아주 잘하지만 축구도 잘한다. 그가 이 문장을 읽는다면, 앞뒤를 고쳐써달라고 할지 모른다. 축구도 잘하는 게 아니라 청소년 시절에 축구선수를 지망했던 ‘준프로’다. 이 정도면 동네축구에서 그를 막을 자가 없다. 그 자신의 나이가 아마도 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집회에서, 카페에서, 술자리에서, 강의실에서 그는 노래를 해 왔다. 그 각각의 공간이 요구하는 바를 그는 절묘하게 드리블하듯이 자신의 노래를 변주하며 들려줬다. 그렇기는 해도, 어떻게 변주가 되고 미묘하게 흔들려도 결국 모든 공간의 모든 노래는 이지상의 노래였다. 시인의 노래요, 가객의 시요, 축구인의 질주요, 틈나면 신영복 선생님으로부터 서도를 사사한 자의 기풍이다. 내년 1월에 홍순관의 새 음반이 나오고 이지상은 연말에 새 음반을 위한 녹음을 한다.

그런 얘기를 하는 중에 안치환이 거들었다. 이미 우리들, 그러니까 매주 수요일마다 공을 차온 사람들의 화제는 광활한 대륙의 질주로 넘나들고 있었다. 어떤 분이 내년에 안식년으로 미국의 미주리주 쪽으로 가게 되는데, 그쪽에서 어떻게 운전할까,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안치환이 오래전 미국을 횡단하면서, 오래전 여행가 김찬삼씨가 출연했던 광고 문구대로 해를 따라 서쪽으로 무려 900㎞를 직진했던 지루하면서도 아득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안치환의 노래 중에 ‘늑대’를 좋아한다
독일에서 운전하는 얘기도 나왔다. 아우토반을 한없이 달렸던 얘기, 그건 내가 했다. 시속 220㎞로 달려가고 있는데, 점 하나가 달려와서 뒤에 바짝 붙길래 2차선으로 비켜줬더니 그대로 질주하여 눈앞에서 사라지더라는 얘기였다. 아마도 시속 250㎞는 훨씬 넘어 보였다. 그 얘기를 듣고는 안치환이 한 번 달려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개인의 신상이라 함부로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이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 밝혔으므로 조심스레 말하건대 안치환은 근래 몹쓸 병과 싸워 왔다. 그래서 한동안 축구장에 나오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안치환이 없는 운동장에서 쓸쓸하게 공을 찼다. 그렇게 몇 개월을 투병한 끝에 안치환은 공을 차러 나왔고, 곧 무대에서도 볼 수 있었으며, 얼마 전에는 주류 음악의 스타들이 출연하는 <불후의 명곡>에도 나왔다.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가 기력을 회복해서 예전처럼 다소 거친 플레이를 하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게 축복이 되었다.

나는 안치환의 노래 중에 ‘늑대’를 좋아한다. 도종환 시인의 견고한 시에 강렬한 선율을 얹은 곡이다. 후렴구의 황량한 도시에서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특히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다고 해서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치환의 목소리로 듣는 울음이어야 한다.

“오늘은 사람들 사이에서 늑대를 본다 / 그대의 빛나는 눈빛 속에 늑대를 본다 / 홀로 어슬렁거리는 외로운 정신을 / 그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바로 그런 사람들과 지난주에 스치듯 만났고, 만나서 공을 찼다. 이들의 노래와 이야기와 저항의 태도를 기억하는 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제발 이들에게 노래를 청할 때 정중히 요청하고 그에 합당한 사례를 하자는 것이다. 언필칭 재능기부라, 이들만큼 20여년 넘게 해온 가수들도 드물다. 이들은 뜻한 바가 준열하여 한 시대의 상흔과 저항의 자리에 서야 할 때 반드시 그 자리에 서서 노래를 했다. 사례비는커녕 오히려 이들이 그 무슨 재능기부 차원을 넘어 헌신과 희생으로 노래를 한 일도 많다.

그러니 기필코 싸워야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이들을 초대할 때 과도한 헌신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아야 하며, 그 노래를 들은 후에 마땅히 사례를 해야 한다. 그래야 또 시를 짓고 노래를 지을 수 있다. 그렇게 존중할 때 이들이 “홀로 어슬렁거리는 외로운 정신”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빚어진 아름답고 강건한 노래들에 의하여 우리 또한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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