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이벤트로 전락한 베토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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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히로시는 연말마다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현상은 지극히 일본적인 문화이고, 한마디로 경박스런 태도이며 ‘거의 이벤트 색채’를 띠고 ‘과열 기미를 보이며 변질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바야흐로 ‘합창’의 시즌이 왔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바로 그 곡이다. 경향 각지에서 이 장대한 교향곡이 울려퍼진다. 요엘 레비의 지휘로 KBS교향악단이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경천동지의 소리를 펼쳤고,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예술단(제주교향악단·제주합창단)과 부산시립교향악단은 17일, 충북도립교향악단과 인천시립교향악단이 18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도쿄 필하모닉이 연합하여 22일에, 다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7일과 30일에 대미를 장식한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도 29일에 ‘합창’을 노래한다. 어지간한 능력이 되는 교향악단은 이렇게 연말이면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한다.

오 아름다워라, 장관이로구나. 우선 이렇게 찬미하지만, 글쎄, 이렇게 한순간에 연말의 의식 치르듯이 베토벤의 ‘합창’을 곳곳에서 연주하는 것은 조금은 기이한 노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장대한 곡을 묵혀 두는 것보다는 자주 연주함으로써 교향악단이나 관객이나 좀 더 신성한 세계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아름답지만, 그러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합창’이나 한 번 들어봅시다” 하며 모여드는 진부한 관습, 아니면 교양과 의전의 결합이라면, 무덤 속의 베토벤이 탄식할 일 아닐까?

왜?

이 글을 위하여 위에 언급한 여러 연주회의 홍보자료와 소식 안내를 일별해 보니, 과연 베토벤의 ‘합창’이 지닌 뜨거운 힘과 강렬한 메시지가 그저 ‘한 해를 보내며….’ 정도의 행사용 수사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고매한 인류애’니 ‘숭고한 정신’이니 하는 단어들도 고명처럼 들어가 있는데, 우선 베토벤이 마지막 악장에 인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생 그 정신을 숭모했던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부터 살펴보자.

베를린 장벽 철거 이후 가진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베토벤 9번 음반. 여느 음반의 ‘coral’, 즉 ‘합창’이라는 표기와 달리 실러의 원제대로 ‘자유 찬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베를린 장벽 철거 이후 가진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베토벤 9번 음반. 여느 음반의 ‘coral’, 즉 ‘합창’이라는 표기와 달리 실러의 원제대로 ‘자유 찬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합창’이 지닌 뜨거운 힘과 강렬한 메시지
흔히 ‘합창’의 마지막 악장에 인용된 실러의 시를 ‘환희의 송가’라고 하는데,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착실하게 더듬어봐야 한다. 실러의 원작시, 1785년에 쓴 시의 제목은 ‘자유 찬가’(Ode an die Freiheit)다. 여기서 ‘자유’는? 바로 그 ‘자유’다!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감각적인 자유가 아니라 모든 억압과 족쇄와 차별을 뿌리치고 저마다 개인들이 견고한 차벽, 아니 장벽을 분노와 저항의 힘으로 뛰어넘어 환희의 세계로 달려나가는 바로 그 유럽의 근대 시민혁명 시대의 ‘자유정신’, 바로 그 ‘자유’다. 막연한 자유가 아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의 충격에 영향을 받은 독일 청년들이 프랑스의 자유 노래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에 실러의 이 시를 얹어 노래하기도 했다. 이를 고쳐 쓴 것이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이고, 이를 베토벤이 1822년에서 1824년 시기에 교향곡 9번을 작곡하면서 대담하게 그 마지막 악장에 단단히 결착시켰던 것이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교향곡의 작곡 시기, 즉 위에 적은 대로 1820년 초반이라는 시기다. 이른바 앙시엥 레짐의 시기다.

구체제의 복귀, 즉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전격적인 등장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잠시) 물러갔던 유럽 각국의 왕정이 1815년에 수립된 ‘빈 체제’를 기반으로 다시 전면에 등장하여 유럽, 특히 혁명사상의 산실인 프랑스 파리와 시민 문화의 용광로였던 오스트리아 빈을 강압하면서 형성된 ‘구체제’가 이른바 메테르니히의 ‘경찰국가론’에 따라 완력과 검열의 통치를 완강하게 벌이던 때다. 모두들 움츠러들었다. 슈베르트 같은 젊은 시인 묵객들은 이른바 ‘비더마이어’라고 해서, 거실이나 카페에 모여 앉아 위축된 시기의 내적 독백 같은 작품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때 베토벤은 구체제의 심장부, 즉 메테르니히가 통치하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에 ‘합창’을 던진 것이다. 한 해 또 가니 모여들 앉아서 ‘합창’ 한 번 들어보자고 할 정도로 한가로운 이벤트송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 가사의 일부를 보자. 베토벤과 실러와 괴테와 또 당대의 협객들, 당통이나 나폴레옹이나 또 당대의 철인들 칸트나 헤겔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무기로 외쳤던 그 ‘자유 찬가’ 말이다.

1983년 일본 오사카의 1만명 베토벤 ‘합창’모습

1983년 일본 오사카의 1만명 베토벤 ‘합창’모습

환희여, 수많은 태양들이 무한한 하늘의 궤도를 즐겁게 날듯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영웅이 승리의 길을 가듯,
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자, 잠시 숨을 고르고 찬찬히 살피건대, 물론 베토벤이 앙시엥 레짐의 한복판에 ‘합창’이라는, “영웅이 승리의 길을 가듯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는 폭탄을 던졌다고 해서 오늘에까지 이를 곧이곧대로 듣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고전은 당대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시간의 슬픔 다른 공간의 고통으로 번져나가는 법. 오늘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상에서 이 담대한 곡을 저마다의 감각으로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1985년 유럽연합이 일종의 유럽연합 국가로 이 곡을 선정한 바 있고,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인 1989년 12월 25일에 레너드 번스타인이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구소련 등의 음악가들과 함께 이 곡을 연주한 바 있으며, 역시 체코 혁명 직후인 1989년 12월에 바츨라프 노이만의 지휘로 프라하에서 이 합창이 울려퍼졌던 일, 또 한때는 짐바브웨의 국가이기도 했던 점 등이 이 고전의 다양성을 증명한다.

푸르트뱅글러 지휘로 베를린필이 1942년 히틀러 생일 축하로 베토벤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

푸르트뱅글러 지휘로 베를린필이 1942년 히틀러 생일 축하로 베토벤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

독일에선 전체주의자로 오해받기도
중요한 것은 이 교향곡이 그 저류에 위험한 전체주의의 기운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기이한 사상의 원천이 된 바그너의 악극을 절대적인 미의 경지로 추앙하였는데, 동시에 베토벤의 세계, 특히 교향곡 5번과 9번으로 집약되는 강렬한 ‘힘의 세계’를 동경했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1942년 그의 생일에 연주된 대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와 베를린필하모닉의 연주는 음 그 자체로는 최고의 명연으로 꼽히지만, 괴벨스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들이 맨 앞줄에 앉아서 “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려가는 곡을 경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하다. 독일군들은 동부전선 전투 야영지에서 줄곧 베토벤의 ‘합창’을 틀었다. 그들에게 “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는 가사는, 실러나 베토벤의 메시지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 교향곡은 매우 조심스럽게 들어야 한다. 베토벤의 저류에 흐르는 강한 힘에 대한 동경! 그것은 진정한 자유를 위한 합창일 때 가치 있는 것, 그 반대의 경우라면 위험하다. 혹시나 우리가 연말이면 어김없이 모여 앉아 ‘합창’을 들으면서 그 마지막 악장의 유명한 선율을 마음 속으로 따라 부를 때, 혹시나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위한 소망’인지 아니면 강한 힘의 기이한 응집을 원하는지 늘 염려해야 한다.

아니,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다행스런 일이고 대부분은 그저 연례 행사일 뿐이다. 와타나베 히로시의 <청중의 탄생>을 보면 연말에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현상은 서구에는 예가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독일에서 정기 연주회의 정밀한 연주가 아니라 어떤 행사나 이벤트나 연말의 송년을 위해 베토벤의 ‘합창’을 올린다는 것은 자칫 전체주의자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정도다. 와타나베 히로시는 연말마다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현상은 지극히 일본적인 문화이고, 한마디로 경박스런 태도이며 ‘거의 이벤트 색채’를 띠고 ‘과열 기미를 보이며 변질된’ 현상이다. 특히 주류회사 산토리가 후원하여 1983년 오사카에서 시작된 ‘1만명의 합창’, 즉 거대한 1만5000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오사카성 홀에서 무려 1만명이 모여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영웅이 승리의 길을 가듯”이라고 노래하는 것은 이벤트 차원을 넘어, 또 그 노래를 부르는 착한 일본인들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저 전체주의의 기이한 열병을 느끼게 한다.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연말 음악회, 그 대표적인 레퍼토리 ‘합창’ 연주가 꼭 그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말하기도 싫다. 그러나 평소에 집중하여 공연하고 찾아드는 곡이 아니라, 점점 더 연말의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들 염려해야 한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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