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같은 세상을 ‘송곳’처럼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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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삶이 <미생>의 삶이라면 <송곳>의 삶은 내가 일을 못하는 시스템을 사고하는 것이다.

출장을 가면서 페이스북을 휙휙 넘기다가, 누군가 단 댓글을 보았다.

“좀 그래요. 영원히 일을 못할 수는 없잖아요.”

그때 나는 고속버스에서 1980년대 펑크 밴드를 듣고 있었다. 노래는 ‘우리들을 옥죄어서 외톨이로 만들려고 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절규로 끝이 난다. 댓글을 읽고 나서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외톨이로 만들려고 했던.

이 지면에서도 몇 번 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혼자 살지 않는다. 어딜 가건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외톨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 회사 안에서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실수에 영향을 받고, 한 명이 일을 못하면 연쇄적으로 그 팀이 일을 못하게 되며, 그 영향 속에서 필연적으로 서로의 일 못함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일을 잘하는가, 아닌가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을 잘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어한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설령 내가 지금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영원히 일을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일을 잘하고 싶다. 그저 누군가에게 일을 잘하기를 요구받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일을 잘하고 싶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미움 받고 싶지 않다. 인정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의 서사는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드라마 속의 오 차장은 인간적이고 좋은 상사다. 이런 좋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어쨌든 그 드라마에 나왔다는 것은 그 오 차장 역시 ‘완생’은 아니라는 소리기도 했다. 때때로 우리는 운 좋게 정규직이 되거나 무언가 성과를 내서 승진을 하거나 어떻게든 회사 안에서 살아남으면서 제대로 살고 있다고 어렴풋이 자신에게 확인도장을 찍어주곤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다음 날이면 흔적도 없다.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모래 위에 지어 놓은 ‘안정된 삶’은 언제든 우리를 미끄러뜨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사실은 다 알고 있다.

나는 우리 삶에서 완생이란 어차피 무한의 수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원히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도달할 수 없는 것.

얼마 전 지인이 <미생>과 <송곳>을 비교하는 인터뷰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삶이 <미생>의 삶이라면 <송곳>의 삶은 내가 일을 못하는 시스템을 사고하는 것이라고. <송곳>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일 못함이 서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뒤집는 방식으로 ‘연대’를 한다. 그 순간에는 일을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함께 있기 때문에 함께 있다. 아픔을 공유하고 그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에 함께 분노한다.

하지만 그런 연대를 경험하는 중에도 세계는 저렇듯 견고하고 단단해 보인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지 우리를 옥죄어서 외톨이로 만들기 위해 날카로운 칼을 벼리고 기다리고 있다. 지금 당장 세상을 뒤집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일을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한에 도달하기 위해 숫자를 더하고 더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이 자리에서 <미생>의 서사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출장에서 돌아올 때쯤 다시 보자 내가 읽었던 그 댓글에 대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영원히 일을 못해도 되지 않을까요.”

영원히 일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미생>의 삶을 <송곳>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이 어떻건 간에 <송곳>의 마음을 놓지 않는 건, 진짜 인간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게 말이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일을 못할지도 모르겠다.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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