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 효과적인 ‘독립’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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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도 간혹 가정에서 이해받지 못해서 오는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회원들이 있다. 나는 더 많은 청년들이 집에서 나와 살면 좋겠다.

“그대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김광석의 노래는 대체로 좋다. 특유의 떨리는 음색과 너무 강하지 않으면서도 호소력 있는 창법은 그만의 매력이다. 많은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불렀지만,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대체재가 되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짜장라면도 중국집 짜장면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무튼 그렇다.

나와 함께 사는 룸메이트도 김광석을 좋아한다. 대안학교 교사이며 기타를 잘 치는 이 사람은 술을 먹으면 종종 김광석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이 사람의 취향은 좀 특이해서 남들이 잘 안 부르는 노래를 자주 부른다. 그 중 하나가 김광석 1집에 있는 ‘기다려줘’이다. 동물원의 김창기가 작사·작곡한 이 노래의 후렴 가사는 이렇다.

“기다려 줘 기다려 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뭐?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고? 김광석의 목소리는 참 좋은데, 이 노래가 가진 감성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이해도 못하면서 기다려 달라니,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자기 울타리 속에 가둬 놓겠다는 이 선언은 스토커의 감성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이 노래의 가사는 처음 들었을 때 이상했고,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가정과의 불화를 경험하면서 이 가사의 상황이 부모와 자식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정과의 불화는 진로에 대한 생각 차이 때문이었다. 사실 나의 모친과 부친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나를 지원했다. 그러나 그 ‘투자’로 자라난 나는 기대에 영 못 미치는 물건이었다. 대학원 공부를 시켜놨더니 회사인지 아닌지도 모를 시민단체에 취업해 일하면서 여기저기 데모나 다니고, 어느 날 갑자기 그 일마저 때려치우고는 일 못하는 게 자랑이라고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는 아들이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가.

생각해 보면 그들이 내 나이일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20대 중반에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번듯한 직장을 갖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1990년대식의 ‘정상적’ 삶을 살아온 50대에게 나의 느린 성장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 불가해한 자식을 계속 가정의 그늘 아래 두려고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자립 능력이 없는 자식에 대한 연민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지휘감독하여 ‘정상적’ 개체로 만들어 보려는 홍익인간 정신의 발로였을까.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너는 이 울타리 안에 머물러라’라는 식의 말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뒤늦게 독립을 선언했다. 집에서 나와 산 지는 1년이 넘었지만 벌이가 변변찮아서 조금씩 가족에게 의존했던 부분에 대해 ‘필요 없다’고 말해버렸다. 더 이상 설득을 시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논쟁하는 데에 에너지를 쓸 바에야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을 더 보람차게 사는 것이 나아 보였다. 내가 무얼 하며 사는지 잘 몰라야 양친의 마음도 더 편할 것 같았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도 간혹 가정에서 이해받지 못해서 오는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회원들이 있다. 나는 더 많은 청년들이 집에서 나와 살면 좋겠다. 정부는 청년 빈곤에 대한 해결책으로 부모와의 공동거주를 제안하지만, 사실 내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한 집에 사는 것보다는 근처에 살면서 간혹 들여다보는 쪽을 택했다. 세대 간의 충돌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완충지대를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우리의 독립을 권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알아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힌트는 공동체 주거에 있다. 자세한 얘기를 하려면 글의 분량을 맞출 수 없으니 오늘은 여기서 줄이겠다.

<여정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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