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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지사 ‘강정 공약’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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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강제철거로 진상규명 논의 중단되고 양자간 불신 깊어져

지난해 6월 당선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취임 전부터 강정마을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할 의지를 피력했다. 도지사 취임사에서 원 지사는 “강정의 아픔을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합니다”라며 “진상조사 등 강정마을 문제는 강정마을회가 중심이 되어 해결해야 합니다. 강정의 아픔을 가장 많이 알고 느끼는 분들이 바로 강정 주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원 지사가 제주도지사에 출마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원 지사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원 지사가 제주도지사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 강정마을회는 원 지사의 ‘갈등 해결’ 의지에 대해 성명을 통해 “선거철이 돌아오면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미사여구 이상으로 들리지 않는다”, “원희룡 후보의 답변은 강정마을회의 기대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저급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원 지사의 취임사에 대해서는 “원희룡 도지사의 의중(원점 재검토)이 그렇다면 크게 환영하는 바이며, 진상조사를 위한 대화를 즉각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제주도지사 후보 시절인 2014년 5월 22일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한 원희룡 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주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제주도지사 후보 시절인 2014년 5월 22일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한 원희룡 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주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도지사 출마 당시 ‘제주공동체 복원’ 약속
지난 1월 31일 제주해군기지 군관사 앞 농성장이 강제철거됐을 당시 원 지사는 해외 순방을 이유로 개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집행위원장은 “강정마을이 이 지경이 되고 있는데 (원 지사는) 제주에 없었다. ‘더 큰 제주’를 꿈꾼다는 원희룡 도정이 결국 국가권력 앞에서는 납작 엎드린 형국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 강정마을 문제가 3000일을 끌어온 데 대한 생각을 직접 물었다. 서면 인터뷰에서 원 지사는 강정마을 갈등 문제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데 대해 “신뢰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정 문제는 유치 당시부터 민주적·절차적 문제, 일방적 행정 통행 등 충분한 신뢰와 소통 없이 진행된 것이 원인”이라며 “3000일이나 갈등이 지속됐다는 것에 가슴이 아프다”고 답했다. 또한 원 지사는 “강정 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대두된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문제로 수년째 고통과 아픔을 겪어 왔다”며 “강정마을 문제를 풀지 않고는 제주도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원 지사는 지난해 지방선거 출마 당시 공약으로 ‘제주공동체 복원’을 내걸고 제주해군기지 갈등 해결을 위해 임기가 끝난 뒤에도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강정마을 문제와 관련한 원 지사의 공약은 세 가지다. 첫째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한 진상규명과 후속조치다. 지난해 10월 15일 원 지사는 강정마을을 찾아 4시간가량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원 지사는 강정마을회가 중심이 돼 진상규명을 지원하고 제주도는 행정적으로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공약을 보면 원 지사는 진상규명에 대한 후속조치로 제주도가 책임질 부분에 대해선 도지사가 직접 공개사과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사법처리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부에 특별사면을 건의할 것이라고 했다.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 및 환경생태 관리와 강정마을 발전사업이 두 번째 및 세 번째 공약사안이다. 원 지사는 공약을 통해 강정마을 주민들의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해군기지 공사과정에서 발생하는 탈법과 환경오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에 따르면 세 가지 공약 중 내년부터 추진될 지역 발전사업을 제외한 두 가지(진상규명, 공동체 회복)는 올해부터 시작됐어야 한다. 그러나 강정마을의 현안인 군관사 문제 때문에 제주도와 강정마을회의 논의는 사실상 중단돼 있다.

해군은 제주해군기지에 들어올 군인들을 위한 384세대 규모의 관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중 312세대는 제주 서귀포시 인근의 민간 아파트를 매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72세대가 살 건물은 강정마을 내부에 신축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방부는 군관사 건설계획을 고시했고, 10월에 착공했다. 올해 11월 완공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원 지사는 지난해 11월 제주도청을 방문한 강정마을회 관계자들에게 “군관사 짓는 것을 해군이 포기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조경철 강정마을회장도 “군관사만 처리해주신다면 주민들이 신뢰를 갖고 진상조사를 하기로 (마을총회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언론들도 당시의 대화가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31일 강정마을 군관사 앞 농성장에서 벌어진 행정대집행 직전의 현장 모습. / 구럼비야 사랑해 이우기

지난 1월 31일 강정마을 군관사 앞 농성장에서 벌어진 행정대집행 직전의 현장 모습. / 구럼비야 사랑해 이우기

제주해군기지 필요성엔 답변 유보
그러나 군관사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올해 1월 농성장 강체절거가 이뤄지면서 진상규명 논의 등은 중단되고, 양자 간의 불신은 다시 깊어졌다.

본인의 강정마을 공약에 발목을 잡고 있는 군관사 공사 문제에 대해서 원 지사는 짧게 답변했다. 그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아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하지만 제주도는 강정마을 군관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서면 인터뷰에서 원 지사는 여러 차례 강정마을 주민들과의 소통과 신뢰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간 강정마을 관련 활동에 대해 원 지사는 “무엇보다 단절됐던 강정마을회와의 소통을 재개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며 “무리하게 주민들과 협의나 대화 없이 강정 관련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 일방적인 행정 통행도 갈등의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원 지사가 강정마을 주민이 원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원점 재검토’에 찬성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강정마을 주민들은 각 당 제주도지사 후보들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새누리당 후보였던 원 지사는 “김영삼 정부 이래 정치 성향과 이념이 다른 다섯 분의 대통령이 필요성을 공감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온 사업”이라며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답변을 유보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강정마을 측은 “지난 김태환, 우근민 도지사와 변별력이 없는 태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원 지사에게 근본적으로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저는 국가안보시설이 건설되는 것에 반대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원 지사는 “다만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이 건설되면서 불거졌던 갈등을 이제는 잘 해결해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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