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흔한 라면집, 그 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 집에 사세요?” 주차를 하니 동네 주민이 물었다. “아니 저 밑의 가게에 잠깐 들르려고….” “아 라면 먹으러 왔구먼.”

동네 주민도 이제는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파주의 흔한 라면집’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인터넷을 강타한 것은 지난 2월 중순이었다. 파주의 한 시골 가게. 간판도 없었다. 그런데 끓여 내놓는 라면의 비주얼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더 놀라운 것은 가격. 2800원이다. ‘가성비 끝판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뜻의 누리꾼 말이다. 한 번 방문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간간이 이런 소문이 들렸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주인 할머니가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였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7월 2일. 혼잡함을 피해 평일을 택했다. 그대로였다. 여전히 간판은 없었다. 사진과 차이라면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여름이라 대문 주변에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 있는 정도? 연인으로 보이는 한 팀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홀의 크기는 2평(6.6㎡)쯤 돼 보인다. 메뉴판은 따로 없지만 파는 라면은 두 종류다. 매운 맛과 안 매운 맛. 벽에 ‘라면 2800원, 잔돈으로 주세요’라는 손글씨 종이가 붙어 있다. 주문하려고 주방에 들어섰다. 도마에 칼질을 하고 있던 할머니가 답했다. “잠깐만요. 나 음식하는데, 귀에 안 들어와요.” 조리가 끝나면 주문하라는 말이다. 약 20분 후. 라면이 나왔다. 맛은 사진 이상으로 훌륭했다. 오징어, 팽이버섯, 표고버섯, 애호박, 당근…. 재료만 푸짐한 것이 아니다. 국물도 맛보지 못한 독특한 미감이다. 반찬으로 나온 알타리 무김치와도 환상의 궁합이다.

지난 2월 중순 ‘파주의 흔한 라면집’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퍼진 ‘파주시 황소바위길 129’의 간판 없는 라면집. | 정용인 기자

지난 2월 중순 ‘파주의 흔한 라면집’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퍼진 ‘파주시 황소바위길 129’의 간판 없는 라면집. | 정용인 기자

“뜨겁지? 땀구멍에서 땀이 나와야 피부가 좋아지는 거야. 예전에 우리 딸이 여드름이 나서 내가 미역국을 맥였어. 싫증날 정도로. 그랬더니 피부가 괜찮아지더라고.” 무뚝뚝할 줄 알았다. 그런데 기자 팀만 남으니 할머니의 이야기꽃이 피었다. 원래는 백반이나 닭도리탕, 보신탕 같은 걸 팔던 가게였다. 이곳에 산 지는 29년. 주손님은 인근 군부대와 공장 직원들이었다. 1990년도에 크라운베이커리 공장이 들어온 뒤에는 먹고 살 만했다. 그런데 2~3년 전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살기 팍팍해졌다고 한다. 인터넷에 뜬 후 너무 손님이 몰려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지금도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손님이 오는데 솔직히 그때는 힘들어.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9시30분부터 와서 줄을 서는 사람도 있어. 12시에는 그래도 남아 있는 인근 공장 사람들이 점심 먹으러 오는데 그때는 피해줬으면 좋겠어.” 궁금한 것은 그 가격에 저렇게 팔아서 남는 이문이 있냐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을 하셔. 그래도 여기서 애들 다 키워 시집 장가 보냈어. 아들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의 꾐에 넘어가 주식을 하다 빚을 졌는데, 할아버지가 50만원, 내가 50만원씩 매달 이자 보태고 있어.” 인터넷에 소문이 났다고 떼부자가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건강하게 해로하시길.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언더그라운드. 넷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