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굴뚝농성, 마침내 ‘대화의 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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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m 하늘에 오른 지 한 달, 굴뚝의 힘은 놀랍다. 굴뚝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보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편지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위로를 건네고 있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굴뚝을 지켜보는 이에게 치유를 주고 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공장이 여느 때와 달리 분주하다. 회사 고위 관리자들이 떼를 지어 정문 앞을 서성인다. 한 무리의 경찰이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쌍용자동차 대주주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공장을 방문하는 날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해고자들도 긴급 연락을 받고 모였다. 새로 만든 피켓과 현수막을 나눠들고 공장 앞에 선다. 아난드 회장의 얼굴과 70m 굴뚝에 오른 해고자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아난드 회장에게 대화에 나서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는 글귀가 영어로 쓰여 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지만 해고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전날 티볼리 신차발표회장에서 아난드 회장이 해고자 문제에 대해 실망스런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1월 14일 아침 해고자들이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박점규

1월 14일 아침 해고자들이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박점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과 해고자들은 전날 4년 만에 출시된 신차발표회장에 다녀왔다. 지난해 12월 13일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기획실장이 공장 안에 있는 70m 굴뚝에 오른 후 한 달 사이에 쌍용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해고되었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이효리씨의 트위터를 시작으로 세계적 석학인 노엄 촘스키까지 굴뚝을 응원했다. 배우 김의성씨가 제안해 ‘굴뚝데이’라는 이름으로 1월 11일 전국과 해외에서 “이창근 김정욱이 만드는 티볼리 타고 싶어요”라는 1인 시위가 벌어졌다.

티볼리 신차 발표회장 앞에 26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공장을 활보하던 낡은 작업화와 동료들과 즐겁게 뛰놀던 운동화, 욕실에서 사라진 동료의 슬리퍼와 신발장에 남겨진 아내의 구두….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숨진 동료와 가족이 남긴 신발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인도 속담처럼 아난드 회장이 낭떠러지에 매달린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심정을 헤아려달라는 호소였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회사는 김득중 지부장이 신차발표회장에 조건없이 참석하겠다는 것을 거부했다.

신차발표회장을 찾은 26켤레의 신발
“저는 마힌드라가 쌍용자동차에 투자하기 전에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들과 그 가족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난드 회장의 발언이 전해졌다. 굴뚝 위에서 고생하는 농성자들에 대한 걱정도 담겼다. 대립하는 문화는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소통의 가치를 믿는다는 발언도 나왔다. 하지만 결론은 ‘선 티볼리 성공, 후 해고자 복직’이었다. 기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심리치유센터 ‘와락’ 권지영 대표는 “물건이 많이 팔리면 사람을 채용하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고자의 신발이 나뒹굴었다. 쌍용자동차지부는 “소통의 가치를 믿는다는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의 얘기가 진심이라면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장 앞에 해고자와 가족들 80여명이 모였다. 노란 현수막을 들고 아침밥도 거른 채 아난드 회장을 기다린다. 8시55분, “보안”이라는 경비의 구호 소리와 함께 4대의 차량이 공장으로 들어간다. 기자들이 공장 담벼락으로 몰려가 셔터를 누른다.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김득중 지부장이 아난드 회장에게 만날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채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공장에 들어간 지 5분 만에 아난드 회장이 전격적인 만남을 제안한 것이었다. 김정운 수석부지부장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해고자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수원에서 일명 ‘까대기’라 불리는 물류회사 상하차 일을 하고 있는 이정훤씨가 마이크를 잡는다. 58년 개띠인 그는 지금 복직해도 정년까지 2년밖에 일하지 못한다. “평생을 바쳐 일한 내가 왜 해고됐는지, 너무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한다. 7년이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분노한다. 정리해고의 생채기는 이토록 깊게 파였다.

아난드 회장은 김득중 지부장을 만나자 굴뚝농성을 하고 있는 이창근 기획실장과 나눈 트위터 내용을 보여줬다. 이창근 실장이 “Let’s talk(대화해요)”라고 보낸 트위터를 리트윗하며 “I am in the plant. I am happy to meet you”(나는 지금 공장 안에 있다. 당신을 기꺼이 만나겠다)라고 멘션을 보낸 내용이었다.

그는 김득중 지부장에게 굴뚝과 해고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굴뚝 상황을 정말 슬픈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2009년 당시 쌍용차 상황도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해고자와 굴뚝을 걱정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해고자들도 신차 티볼리 출시와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해고자가 복직이 되어야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아난드 회장은 노사간에 논의해서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자며 김 지부장에게 명함을 건넸다. 7년을 기다린 시간, 대립의 문화를 해소하기 위해 소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난드 회장, 이유일 사장,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 박점규

아난드 회장, 이유일 사장,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 박점규

마힌드라 회장과 노조와의 극적 만남
본관 건물에 걸린 현수막에 ‘가장 혁신적이고 존경받는 자동차회사’라고 적혀 있다. 중동의 왕자들이 애용했다는 코란도와 렉스턴, 대한민국 1호 자동차회사를 상하이자동차에 팔아먹고, 기술을 빼돌린 자들은 지금 중국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 2008년 쌍용차는 비정규직 350명을 우선 해고하고, 2009년 2646명의 정규직을 자르겠다고 했다. 1666명이 싸움을 포기하고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쌍용차 경영진들은 동료들의 손에 쇠파이프를 쥐어줬고, 이명박 정권은 특공대를 투입했다. 77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과 86일간의 굴뚝농성이 끝나고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자의 복직을 약속한 8·6 합의가 이루어졌다.

1월 13일 티볼리 가솔린이 생산되고, 올해 하반기에는 티볼리 디젤이 출시된다. 회사는 하반기에 500~60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리해고자와 징계해고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한 비정규직 해고자는 187명, 희망퇴직자는 353명이다. 전부를 올해 안에 복직시킬 수 있다. 그런데 회사는 ‘2009년에 떠난 생산직 인원’이라고 표현하며,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두 복직시킬 수는 없다는 식으로 둘러친다. 진실을 영원히 가둘 수는 없다.

아난드 회장을 만나고 나온 노조 간부들과 해고자들이 굴뚝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남문으로 향한다. 김득중 지부장이 굴뚝으로 전화를 걸어 면담 내용을 알려준다. 생계활동에 나가 있다가 3개월 만에 모인 해고자들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굴뚝을 올려다본다. 굴뚝 위에서 해고자들이 손을 흔든다.

70m 하늘에 오른 지 한 달, 굴뚝의 힘은 놀랍다. 굴뚝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보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편지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위로를 건네고 있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굴뚝을 지켜보는 이에게 치유를 주고 있다.

특히 이창근 실장은 아난드 회장 입국을 앞두고 영어와 힌두어로 편지를 보냈다. 이 실장은 “법적 공방도, 한국인들의 많은 응원과 바람도 문제 해결을 근본적으로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며 “마주앉아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1월 13일 티볼리 신차발표회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 박점규

1월 13일 티볼리 신차발표회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 박점규

물꼬 튼 대화, 하루빨리 다시 열려야
아난드 회장이 경영진들의 장막을 걷고 쌍용차의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쌍용차 관련 언론의 영문기사를 트위터로 보냈고, 아난드 회장이 팔로하고 있는 <뉴욕타임스>에 요청해 기사를 리트윗해 아난드 회장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굴뚝의 호소는 수많은 누리꾼들의 호응을 끌어냈고, 마침내 대화의 문이 열렸다.

굴뚝으로 올라가던 밥이 멈춰서 있다. 무슨 일일까? “아침밥을 밧줄에 매달아 놨고, 깔고 잤던 은박지 위에 청태이프를 뜯어 글자를 적었다. 기다릴 것이다. 혹여 오늘 대화가 더 나가지 못하고 짧은 만남으로 끝나고 비행기가 뜨더라도 다시 그 비행기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이창근 기획실장이 페이스북에 썼다. 대화의 물꼬가 열렸다면 오래 걸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단식은 아니지만 굴뚝 안에 남아 있는 비상식량이 많지는 않다. 하루빨리 대화의 자리가 열려야 한다.

날이 저문다. 아난드 회장은 인도로 떠났다. 북적거리던 공장 앞은 다시 고요해졌다. 허공에 매달린 밥은 그대로다. 해고의 밧줄에 매달린 노동자의 처지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경영상 이유로 퇴직하는 사람이 90만명, 계약 만료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90만명, 폐업·도산·공사중단으로 일을 못하게 되는 사람이 20만명이다. 한 해에 회사에서 잘리는 사람이 정규직 100만명, 비정규직 100만명, 합쳐서 200만명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KT는 8300여명을 내보냈고, CJ제일제당은 1200여명을 한꺼번에 줄였다. LG디스플레이 1051명, 삼성생명 996명, LG전자 823명 등 재벌들이 앞장서서 대규모 해고를 했다.

대법원은 정리해고의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장래에 다가올 위기로, 정리해고 인원은 회사 맘대로 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온몸을 바쳐 일했는데 실적이 낮다고 사표를 강요당하는 현실에서도 정부는 해고 요건을 더 완화하겠다고 한다.

회사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10대 재벌, 81개 회사가 금고에 쌓아놓은 돈만 250조원이 넘었다. 10대 재벌이 사놓은 땅도 60조원을 돌파했고, 내부거래 규모도 154조원으로 역대 최대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가계소득 증가율은 26.5%에 그친 반면, 기업소득은 무려 80.4%나 급증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빚잔치를, 기업과 재벌들은 돈잔치를 벌였다.

날이 저물었다. 굴뚝이 붉은 빛으로 변했다. 굴뚝에서 이창근 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바람소리에 섞인 목소리에 노곤함이 묻어 있다. 앞으로 또 몇백, 몇천 시간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 갈라진 목청에서 씩씩함이 배어나온다. 트위터 답글이 비타민이고, 페이스북 좋아요가 박카스다. 반환점을 돈 마라톤 선수에게 시민들이 건네는 물병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가 복직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기업들이 함부로 해고를 해서는 안 된다. 함부로 해고한 회사는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해고가 돼도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세계적 석학 슬라보예 지젝은 “그대들이 올라간 굴뚝은 세계를 비추는 등대”라고 말했다.

쌍용차 마라톤, 결승선을 향해 뛰는 선수들을 위한 응원가가 울려 퍼진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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