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무총장 반기문… 능력 있고 품성 좋은 보수적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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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정치권을 배회하고 있다.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이라는 유령이다. 저 멀리 미국 뉴욕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차기 대권주자로 세우자는 것이다. 여당 실세 모임이 그를 ‘대권후보’로 거론하는 세미나를 열더니, 이에 질세라 야권에서도 영입 접촉설이 나왔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영입에 나서니 정가에서 ‘반기문 대망론’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례적으로 ‘유령’의 주인공은 자제를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실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향후 국내정치 관련 관심을 시사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는 데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앞으로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정치 관련 보도를 자제해주실 것을 거듭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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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언론에 정중하게 요청한 것이지만 성명 어디에도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성명의 뉘앙스로 보면 초연하게 2017년을 관망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정치판이 그렇지만, 정치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인재를 ‘소비’하는 블랙홀이다. 당장 상품성(표가 된다면)만 있다면 순수한 정치 초(初)자도 꼬드겨 이용하다 내팽개치는 곳이다.

유엔총장 임기와 대선과의 ‘타이밍’
반기문 대망론은 그만큼 반기문의 상품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것도 여·야당 모두에게 상품성이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반 총장은 ‘잠재적 대선주자’ 지지도가 10~20% 수준으로 다른 사람과 오차범위에 있었다. 그런데 10월 들어 39.7%(한길리서치)나 급증하면서 2위 박원순 서울시장에 비해 3배나 앞선 것으로 나왔다.(사실 이 결과는 조사방법이 기존과 달라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런 지지율 급증이 ‘반기문 현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반기문 대망론’으로 확산된 것이다.

반기문 현상을 넘어 대망론까지 이르게 된 반기문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그는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쭉 외교관을 지냈다. 외교부에서 미국대사관 참사관, 미국총영사, 미주국장 등 주로 미주통으로 근무했고, 차관보-차관-장관 등 매우 이상적인 외교관 코스를 밟았다.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에서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고, 5년 임기를 마친 2011년 연임에 성공했다. 그의 임기는 2016년 말까지다. 이어지는 2017년 대선을 준비할 시점과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다.

부인 유순택 여사에 대한 평도 호평
외교관 출신이 대권에 오른 사례는 1960년 4·19 학생혁명 이후 장면 총리, 1979년 10·26사태 이후 최규하 대통령이 있다. 모두 현직 대통령이 부재 중인 ‘난세’에 사실상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민심의 바닥에서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에 ‘반기문’을 검색해 보면 반 총장과 관련된 책이 30여권이나 된다. 그를 취재했던 기자들이 쓴 전기류에서부터 반 총장의 영어 연설문을 모아 만든 영어학습서, 아이들을 위한 위인전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반 총장의 성공비결을 활용한 육아지침서까지 있다.(상자기사 참조) 생존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많은 위인전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이들 책은 출판사의 상술이 작용한 것이지만, 그만큼 상품성이 있다는 방증이다.

이들 책을 보면 거의 반 총장에 대한 찬양 일색이고, 비판적 접근은 찾기 어렵다. 대표적 표현이 “그간 출간된 책이나 매체의 글들을 보면 대개 반 총장의 근면 성실함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옆에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를 지켜본 바, 단지 양적으로 투입하는 성실함만으로는 지금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정말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를 두고 박인국 전 유엔대사가 반 총장을 일러 한 말이 있다. ‘반 총장이 부지런하다고? 반 총장은 천재야!’”(<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19쪽)

외무부 장관 비서실장과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관을 거쳐 유엔 의전장을 역임한 윤여철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유엔에서 반 총장은 동양 선비와 같은 사심 없고 겸손한 자세로 솔선수범하며, 온화한 인품과 넘치는 에너지로 조직을 강력하게 이끌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의 표현이 필요 없을 정도의 극찬이다.

<반기문 대망론>은 보다 노골적이다. 필자(KBS 아나운서)는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쌓은 국제적 역량을 어떤 형태로 통일한국에 기여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다”라며 통일 대통령으로서 반기문 대망론을 설파했다. 언론사 특파원으로 유엔에서 그를 가까이 취재했던 기자나 외교부를 오래 출입한 기자들이 쓴 이들 책은 한결같이 그를 높이 평가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1월 12일(현지시간)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갈라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1월 12일(현지시간)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갈라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 총장뿐 아니라 부인 유순택 여사에 대한 평가도 좋다. 참여정부 시절 같이 장관직을 지낸 한 인사는 “국무위원 부인끼리 봉사모임을 가지면 반 총장 부인이 가장 성심을 다했다는 평가가 많았다”면서 “반 총장의 긍정적 이미지 절반 이상은 부인의 역할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자들도 비슷한 기억을 한다. 특파원 출신의 한 기자는 “외교관도 군기가 세 상사가 주최하는 파티 준비에 부하직원 부인들이 거의 하녀처럼 일해야 한다”면서 “파티가 많은 외교가에서 이는 매우 고통스런 일인데, 반 총장 부인은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별명은 ‘반반’(潘半)이다, ‘반 총장 반만 해도 성공한다’는 의미다. ‘반 총장 따라하면 단명하니 아예 따라할 생각을 마라’는 의미의 ‘반반’(反潘)이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유명한 별명은 ‘기름장어’이다.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다고 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 별명이 진화해 기름 유(油)자에 뱀장어 만(鰻)을 붙여 ‘유만’이 됐다. 반 총장은 이 별명을 움직일 유자에 일만 만자로 고쳐 ‘만 번을 움직여 세상 사람을 바꾼다’는 의미로 바꿨다. 부정적 뉘앙스의 별명을 긍정적인 뉘앙스의 별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머’와 ‘여유’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해외언론은 ‘존재감 없는 총장’으로 평가
별명처럼 정치권 러브콜도 반반이다. 새누리당은 성향상 ‘우리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새정치연합은 ‘우리가 키운 사람’임을 강조한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은 사석에서 “반 총장은 참여정부가 만들었다, 당시 이해찬 총리가 그를 사무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세계 20여개국을 돌아다녔다”면서 “내가 ‘음수사원’(飮水思原·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다)하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공교롭게 ‘음수사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이다) 그런데 반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나중에 따로 참배했다) 그래서 새정치연합 쪽에서는 ‘의리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반 총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외신들은 반 총장에 대해 혹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어디에도 없는 남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년 6개월 동안 기후변화, 글로벌 금융위기, 국제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에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명예학위를 받으러 분주했다”면서 “그는 너무 조용하다. 유엔을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혹평했다. 해외언론에 비친 그는 ‘유엔의 투명인간’ ‘조용한 총장’ ‘반기문,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등 존재감이 없는 총장으로 평가됐다. 유엔에서 여성이나 기후변화 문제 등 비교적 사소한 문제에 신경썼지, 러시아의 그루지아 침공 등 정작 민감하고 굵직한 현안에는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 총장은 한반도 문제에 매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 3월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기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이를 한국에 제안했다. 그런데 반 장관은 ‘평화협정은 북한의 기만전술’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 이 사실을 확인한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을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또 반 장관은 참여정부 때 베트남에 모여 있는 탈북자 486명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결정을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일거에 입국시켜 대북관계를 경색시켰다고 한다.

이에 당시 대권주자급 실세였던 정동영 장관은 반 장관을 불러 호통을 치며 “외교부 장관이 그런 냉전적 시각으로 외교를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있느냐”고 힐난했다. 이런 내용은 정 장관 회고록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에 자세히 언급돼 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도 “한반도 평화체계를 놓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갈등이 심했다”고 비화를 공개했다. 이런 보수적인 통일관은 <반기문 대망론>에서 얘기하는 통일시대 대통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찌됐든 그를 접해 본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기문 대망론’이라는 유령은 그래서 더욱 여의도를 배회할 것이다.

그와 같이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그는 뛰어난 능력과 많은 장점, 훌륭한 경험을 가졌지만 단 하나 걸림돌은 바로 나이”라며 “60대 중반을 넘으면 대통령 일정을 수행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44년생인 그는 대권에 도전하는 2017년 우리 나이로 74세가 된다.

반기문 책… 찬사로 일관, 객관적 평전이라기엔 미흡

최근 반기문 총장에 대한 책이 쏟아지지만, 본인이 직접 쓴 책은 없다. 최근에 나온 책이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이다.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이 반 총장을 옆에서 취재했던 기록을 담았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7년 재임 기간 동안의 치열한 고민과 카리스마, 인간적인 흡인력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너무 긍정적인 찬사로 일관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출판된 반기문 관련 도서.

최근 출판된 반기문 관련 도서.

KBS 아나운서가 쓴 <반기문 대망론>은 보다 정치적으로 적극적이다. 이 책은 반기문 대망론이 대세론으로 번져갈 수밖에 없는 이유,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왜 반기문이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통일시대 반기문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조선일보> 기자가 쓴 <조용한 열정 반기문>은 반 총장의 외교부 차관 및 장관 시절,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 과정을 내밀하게 묘사했다.

관심을 끄는 책은 반 총장의 총장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직접 반 총장을 모신 현직 외교관이 쓴 <반기문 리더십-유엔본부 38층>이다. 이 책은 그동안 보도되지 않은 반 총장의 리더십과 활약상, 그리고 유엔 사진전문기자가 찍은 사진까지 실었다. 반 총장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 보도에도 조목조목 반박하는 적극성도 보였다. 이 책은 반 총장의 핵심 측근으로 현직이 쓴 책이라는 점에서 반 총장 세력이 본격적으로 대권행보에 나섰다는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결국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다시 전량 회수됐다. 유엔 근무자가 유엔 관련 책을 낼 때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필자가 출판을 번복했다고 했지만, 정치적 오해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였다는 후문도 나왔다.

이 밖에 <워렌 버핏과 반기문의 성공 노트!> 역시 <한국경제> 뉴욕특파원으로 반 총장을 밀착 취재했던 필자가 반 총장의 인간관계, 자기계발, 성공습관을 워렌 버핏과 비교한 책이다. 또 <문화일보> 뉴욕특파원으로 반 총장을 취재했던 기자가 쓴 <반기문 영어연설문>은 반 총장의 유엔 연설문을 모아 영어 학습자료로 만든 것이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반 총장을 롤모델로 살아온 한 대학교수가 쓴 전기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위한 위인전 형태의 반기문 책도 많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위인전이 이렇게 다양하게 나온 경우도 드물 것이다.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시리즈로 나온 것은 대단한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키워라>라는 책은 반 총장을 비롯해 세계적 리더들에게 배울 수 있는 삶의 노하우를 정리하면서 아이들의 교육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출판된 대부분의 책은 반 총장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해 객관적 의미의 인물평전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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