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억대 연봉 받는 직원 300명은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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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부자는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현지인이 삼성휴대폰을 쓰거나 현대자동차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자랑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그러다가도 돈의 힘으로 약자를 억누르고 착취하거나, 세금을 안 내는 부자들의 행태엔 울컥해진다. 최근 몇몇 재벌가 오너들이 비자금을 불법 조성해 쌈짓돈으로 쓰다 교도소에 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국내 최초의 부자학 연구학자인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는 “부자는 특정 액수의 돈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알고 즐기는 사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한 교수가 이런 기준에 따라 ‘진정한 부자’로 꼽은 사람이 의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도 아닌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였다.

강 대표를 직접 만나보면 부자 특유의 ‘부티’가 전혀 없다. 2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수장이면서도 신입사원과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에선 카리스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사무실엔 책들이 가득해 출판사 사무실을 연상시킨다. 미용실 본점에는 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로버트 카파 사진전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어 미용실인지 문화기획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전혀 부자답지 않은 그가 ‘진정한 부자’로 사는 법이 궁금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억대 연봉 받는 직원 300명은 돼야죠”

낮에는 사환으로 일하던 야간 여상 출신이 매장도 100여개를 거느리고 있다. 부자가 된 것을 실감하나.
“난 돈을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 부자가 된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하면 욕먹을지 모르지만…. 돈보다는 항상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도 많고 지인들도 많으니 진정한 의미의 부자 아니겠는가.”

교육기관에 거액을 투자한다고 들었다. 돈을 쓰는 궁리만 하는 것 같은데.
“준오아카데미가 9월에 기공식을 갖는다. 개관은 2014년 10월쯤이다. 청담동 준오 본사 옆에 본격적인 교육기관을 만들 예정이다. 땅값과 건축비, 인테리어 비용만 250억원 규모다. 남들은 강남 노른자위 땅에 오피스텔이나 고급 빌라를 지으면 평생 돈 걱정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은 나의 꿈이자 행복이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교육기관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소풍가는 전날 밤이나 멋진 애인과의 데이트를 앞둔 마음처럼 즐겁고 설렌다.”

미용인을 위한 교육기관인데 규모가 큰 것 같다.
“미용인 생활 35년인데 사람이 재산이고 사람에 대한 투자가 가장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은 예전에 남편 몰래 집을 판 돈 1억2000만원으로 직원 20명과 영국의 미용교육기관인 비달사순에 유학을 다녀온 것이다. 해외 연수는 그저 선진국의 미용기술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현지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트렌드를 파악하고, 각 나라의 건축물이나 미술품에서 영감을 얻는다. 당시로선 모험이었지만, 유학 다녀온 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절대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직원 교육이 그렇게 중요한가.
“모든 성장은 교육을 통해 이뤄진다. 교육 받으면 스스로 자극을 받아 개인이 성장한다. 직원들이 교육 후 훌쩍 커버리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장사의 개념, 개인의 욕심으로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의 직업이기도 한 미용인이란 직업 자체에 대해 생각한다면, 교육을 받아서 자신의 발전과 자긍심은 물론 사회적 가치도 올라간다고 믿는다. 나 역시 중학교 때부터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사환 생활을 할 만큼 가난한 환경이었고, 대학도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공부를 한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다. 지금도 매일 공부하는 중이다.”

미용업계는 유난히 이직률이 높은 곳이다. 그렇게 국내외 교육을 시켰는데 다른 곳으로 가는 이들은 없나.
“물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다른 미용실에 가서 실력을 발휘한다면 한국 미용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준오의 이직률은 10% 정도다. 어린 사원들이 힘들다거나 적성에 안 맞아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준오아카데미에서는 어떤 교육을 시키나.
“1992년부터 신촌에 직원교육을 위한 ‘헤어 아카데미’를 설립, 국내외 유명 미용사를 초빙해 실습과정을 가르쳤다. 준오헤어에 입사하면 모두 2년 6개월 동안 헤어 아카데미에서 미용기술은 물론, 대기업 연수원에서나 배울 법한 리더십과 소비자심리학 등의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대학에서 미용을 전공했어도 예외는 없다. 우선 6학점을 이수해야 고객의 커트를 할 수 있고, 20학점을 마쳐야 파마가 허용된다. 이렇게 총 30개월간 110학점을 이수해야 준오헤어의 정식 헤어디자이너가 된다.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을 돈으로 환산하면 1인당 3000만원 정도다. 매년 10여명의 직원을 선발해 보름에서 한 달간 런던 비달사순 등에 해외연수를 보낸다. 기술 교육은 필수이고 트렌드, 경영학, 서비스 교육, 리더십, 그리고 드로잉 등을 강의한다. 덕분에 세계적인 헤어그룹 웰라가 선정한 세계 10대 미용기업으로 성장했다.”

가장 차별화된 교육은 무엇인가.
“19년째 이어지는 독서교육이다. 전 직원이 의무적으로 매달 선정한 책 한 권을 읽어야 한다. 책 내용이나 저자도 각양각색이다. 자기계발부터 마케팅, 그리고 신부님부터 발레리나가 쓴 책까지 다채롭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직원들도 있지 않나.
“아직도 선정 도서가 얇고 재미있어야 좋아한다. 초창기엔 매일 조회 때 직원들에게 낭독을 시키기도 하고, 하루 10페이지씩만 읽으라고 했다. 10페이지라고 해도 삽화나 사진이 나오면 9페이지만 읽어도 되지 않나. 책 들고 다니기가 무겁다면 10페이지씩 찢어서 들고 다니라고 했다. 책 읽는 습관을 길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역사와 시공을 초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정말 몇 초, 혹은 몇 센티미터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선수가 더 이기는 습관을 갖고 있는가가 메달 색깔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억대 연봉 받는 직원 300명은 돼야죠”

그렇게 직원들이 책을 많이 읽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읽어 공통의 화제가 생기니 공감대가 형성되고 대화 시간이 늘어 결국 직원 사이에 소통이 이뤄진다. 나는 지식보다 소통을 위해 책을 읽으라고 한다. 독서교육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들은 직원 부모님들이다. 솔직히 영어, 수학 등 학교 공부 잘하는 아이가 미용사 자격증에 도전하겠나. 그런 자식이 뒤늦게 인문학이나 경영학 책을 들고 다니니 대견하고 고맙다고 한다. 18세에 보조 미용사로 들어왔다가 매달 책을 읽고 차근차근 공부해서 석사, 박사가 된 이들도 있다. 평소 공부하는 문화가 습관이 되고, 그것이 그들의 인생을 바꿔간다.”

고객들에게는 그런 인문학적 교육이 어떤 의미가 있나.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으면 고객의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지식과 상식이 풍부해지니 고객의 요구도 잘 수용한다. 그것 역시 매우 중요한 고객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대리점을 내는 것은 쉽지만 우리 경영철학이 그대로 전수되지 않아 직영점만 고집하고 있다. 8월까지 89호점이 문을 열었고 한 달에 한 개 매장씩 늘어나니 내년에 100호점이 생긴다. 사람들은 미장원 매장이 많으니 돈을 엄청 많이 번다고 생각한다. 진짜 돈을 벌 생각이면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매장을 열려면 매장을 구하고 시설비용이나 인건비 등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매달 문을 여나. 기네스북에 오르는게 목표인가.
“이미 기네스북에 올랐다. 100호점이 목표인 것도 아니다. 실력 있는 미용인에게 자립심을 키워주고 경영자로서의 능력도 키워주려는 것이다. 미용실을, 그것도 서울 주요 지점에 내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 미용사 혼자 힘으로 내는 것은 어렵다. 나 역시 스물한 살에 사채에 일수까지 얻어 겨우 4평짜리 미용실을 얻었는데 이자 갚기도 벅찼다. 그래서 우리가 매장을 새로 열어주거나 일정액을 도와주고 수익을 나눈다. 한 매장에서 성실히 일해 많은 단골을 확보한 헤어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매장의 대표를 맡기기 때문에 경기를 잘 타지 않는다. 마냥 어리게 보이던 직원이 기술력이 늘고, 인품이 성숙해져 한 매장을 책임지는 대표가 되어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 감동스럽다.”

나눔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뭔가.
“내가 영악하기 때문이다.(웃음) 직원들이건 주변이건 나눠야 내가 더 오래 같이 잘 살 수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는데 거위를 잡아 먹으면 되나. 계속 황금알을 낳게 해야 한다.”

억대 연봉 직원들도 많다고 들었다.
“한 번이라도 억대 연봉을 받은 사람들은 300여명이고, 해마다 꾸준히 억대 연봉을 받는 이들만 200명 정도다. 월급이 아니라 인센티브 시스템이어서 그렇다. 해마다 2억, 3억원을 버는 이들도 있다. 2500명 직원 가운데 해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이들을 300명 수준으로 만드는 게 내 꿈이다.”

억대 연봉 미용사들은 기술이 탁월한가, 아니면 서울 강남 같은 자리가 좋아서인가.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가 억대 연봉을 만든다. 경기도 일산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20대 청년 시절부터 억대 연봉을 벌어 집도 샀다. 고객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고, 머리를 다듬는 가위를 만질 때도 최선을 다하면 마치 가위가 붓처럼 부드럽고 가볍게 느껴진다고 하더라.”

국내외의 리더십 교육은 빼놓지 않고 받고 관련 책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고 들었다. 책을 통해, 또 직접 만난 리더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가장 훌륭한 리더는 우수한 인재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스스로 모범이 되어 감동을 줘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리더는 성품·의지·능력, 이 세 가지를 고루 갖춰야 한다. 리더라고 하면 흔히 카리스마나 조직 장악력을 강조하는데 그럼 존경받는 리더는 될 수 있어도 같이 있고 싶은 리더는 될 수 없다. 리더와 조직원 간의 소통을 강조하는데, 소통은 대화법이 아니라 정성이다.”

소통을 하려면 스킨십도 중요한데 2500여명의 직원과 자주 접할 기회가 있나.
“나도 직원 교육을 하기 때문에 자주는 아니어도 직접 볼 기회가 많다. 또 내 사무실이 미용실 안에 있다. 청담동 본사가 5층인데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각 층을 지그재그로 다니며 가능한 한 많은 직원들을 만난다. 원본은 아니지만 앤디 워홀, 피카소의 그림을 걸어놓은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떤다. 항상 보는 사이에 점점 성장하는 직원들을 보면 마치 매일 지나가는 동네에서 새로운 건물을 발견한듯 신기한 느낌이다.”

가장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나.
“글쎄 그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일이 있었는데 금방 잊는다.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더 어려운 일도 많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언젠가 방송사에서 성공시대 같은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왔는데 역경과 고비가 없었다니까 그냥 돌아가더라.”

이렇게 지치지 않고 일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우리 직원들이 내게는 보약이자 마약이다. 그들 덕분에 힘을 얻고 내 인생이 그들에게 중독된 것 같다. 미용사란 직업이 과거엔 별로 귀하거나 존중받지 못했지만 미용사 아줌마가 헤어디자이너, 헤어스타일리스트로 변하면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 거기에 경영적인 감각까지 갖춰서 모두 실력 있는 부자로 만들고 싶다.”

언제까지 현업에서 일할 것인가.
“정년은 없지만 75세까지 일할 생각이다. 장수집안이라 나도 오래 살 것 같다. 75세 이후엔 요리를 배워 찾아오는 제자나 직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다. 그래야 나를 보러 오지 않을까.”

지금 신나서 하는 일도, 미래의 희망도 온통 직원들과 함께 발전하는 것이라는 강윤선 대표. 생일이면 직원들로부터 ‘매일 한 방울씩 내리는 빗방울이 커다란 바위를 뚫을 때까지 대표님을 사랑합니다’란 카드를 받는 그는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일지도 모르겠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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