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라면 맛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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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심한 시간에 삼양라면 끓여먹다가 빡쳐서 왔다. 에라이.”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무엇 때문에? 1월 말 각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삼양라면 파괴자’ 등의 이름으로 화제를 모으는 게시판 캡처다. 그런데 사실 이건 지금으로부터 6년 전, DC인사이드의 면식 갤러리 게시판에 ‘생각’이라는 닉네임의 게시자가 글을 올리고 난 다음 벌어진 사건이다. 6년째 욕을 먹고 있는 셈인데, 그가 게시한 글의 내용은 이렇다.

1994년 이후 다시 발매된 삼양라면. 원조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우지파동 전의 삼양라면과 맛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 옥션

1994년 이후 다시 발매된 삼양라면. 원조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우지파동 전의 삼양라면과 맛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 옥션

라면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던 이 누리꾼이 오랜만에 삼양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맛이 별로 없었다. 그는 이유가 ‘건더기스프에 들어 있는 햄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삼양라면 홈페이지에 접속해 “햄을 빼달라”고 건의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그러다 다시 시간이 흘러 삼양라면을 먹었더니 햄이 빠져 있더라는 것이다. 누리꾼들이 욕하는 건, 햄맛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삼양라면에서 핵심이 햄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누리꾼이 글을 올린 게시판은 이제 ‘성지’다. 훑어보면, 2006년에 이어 2009년, 2010년에 비난 바람이 불었고, 올해 1월 들어 또 무더기로 욕을 먹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누리꾼의 비난에서 잘못된 것이 있다. ‘햄맛’ 삼양라면은 오리지널이 아니다. 1989년 11월, 이른바 우지파동 이후 삼양라면은 한동안 판매가 중단되었다. 1994년, 다시 ‘삼양라면’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라면은 확실히 ‘우지파동 이전’과 맛이 달랐다. 가장 큰 맛 차이의 이유는 역시 우지(牛脂)다. 면의 유탕 처리과정에서 사용하는 기름이 ‘쇠기름’에서 ‘팜유’로 바뀌면서 맛이 달라졌다. 1~2년 전부터 매장에서 보이는 닭고기스프 맛 ‘삼양라면 클래식’도 오리지널 맛은 아니다. 삼양식품 측에 물어봤다. 일단 햄 맛이 사라진 게 ‘생각’이라는 누리꾼의 홈페이지 글 게재 때문?

“논란이 된 지난주만 하더라도 ‘햄맛을 복원해달라’는 메일이 수십 통 들어왔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특정 개인의 입맛에 따라 특정 맛을 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최남석 홍보팀장의 말이다. 논란이 되었던 햄맛도 재발매 이후에 여러 차례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회사 부설 식품연구소에서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한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 미묘하지만 끊임없이 맛은 달라져왔다는 것이다. “그건 경쟁사도 마찬가지예요.”

그나저나 ‘우지파동’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았는데, 다시 쇠기름을 사용할 계획은 없을까. 값이 더 비싸지더라도 ‘그때 그 맛’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사람이 꽤 될텐데. “우지의 독특한 맛과 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사회적 인식이나 여건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감안해야 해요. 우지는 동물성 기름인데, 예를 들어 1980년대에는 동물성 단백질이 상당히 부족했던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당분간은 우지를 사용한 라면을 생산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아쉽다. 어쨌든 햄맛이 빠진 건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 그 누리꾼 때문이 아니라고 하니, 이제 그 누리꾼에게 화풀이하는 건 그만해도 될 듯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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