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지천 드링크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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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기원한 신조어들의 생명력은 얼마나 갈까. 멘붕, 그러니까 멘탈 붕괴란 말은 이제는 대중어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당 경선 예비후보들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되었다. ‘멘붕’이라는 말은 올해 총선에 이르러서야 전국적인 영향력을 획득했지만, 실은 꽤 오랜 쓰임새를 가진 말이다. 근 10년 가까이 됐다. 오늘 다루는 신조어는 또 다른 거다. 운지. 이전에도 이 코너를 통해 설명한 적이 있다. 기원은 짧다. 2009년 이후다. 정확히 말하면 2009년 5월 23일 이후의 어느 시점, 디시인사이드 합성필수요소 갤러리에서 기원했다.

운지천(雲芝泉)이라는 드링크제가 있었다. 박카스처럼 약국에서 팔렸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가격은 100㎖ 한 병에 600원. 나이가 좀 있는 분이라면 TV에서 방영되던 이 드링크의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점퍼 차림의 배우 최민식이 숲속을 뛰어다니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소리친다.

배우 최민식씨가 등장했던 운지천 드링크의 CF.

배우 최민식씨가 등장했던 운지천 드링크의 CF.

“운지, 운지하다”라는 말은 이 광고에서 바위 위를 뛰어다니는 최민식씨의 연기에서 그 ‘사건’이 오버랩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이다. 사실 고인의 안타까운 일을 두고 그런 식의 패러디를 하는 일은 짓궂은 일이다. 그런데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말리면 말릴수록 더 튀어나오는 게 이쪽 세계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다. ‘운지’라는 말은 이미 누리꾼의 인터넷 용어로 굳어졌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이제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낙하하다’, ‘떨어졌다’, ‘망했다’ 등의 뜻으로 ‘운지’를 쓰고 있다.

그나저나 궁금하다. 언제부터인가 ‘운지 패러디’의 ‘소스’가 된 운지천 드링크는 더 이상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왜일까. 운지천 드링크를 만든 회사는 광동제약이다. 광동제약의 인터넷 회사 연혁을 보면 1991년에 2000만병을 돌파했고, 제2회 국제 운지버섯 심포지엄을 열었다는 이야기는 나온다. 하지만 왜 생산을 중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1994년 소비자보호원이 드링크류에 대한 일제 점검을 하는데, 운지천 드링크가 식품인데도 의약품처럼 과장광고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이 회사 홍보실에 물어봤다. “글쎄요. 저희도….” 홍보팀도 난감해 하는 눈치다. “당시 계셨던 분들에게 물어보고 답변드리겠습니다.”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회사 관계자는 “회장님 자서전까지 뒤져봤는데, 왜 생산이 중단되었는지 이야기는 없었다”며 “대략 유추를 해보면 갑자기 판매가 중단된 것은 아니고 IMF 시점과 연관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된 아이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소비자가 운지버섯을 재료로 한 드링크를 다시 찾는다면 다시 붐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자연 속에 내가 있다-운지!’ 패러디에 대한 생각은? 이 관계자는 “그 패러디에 대해 알고 있다”며 “배우 최민식씨가 회사로서는 운지천 드링크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데, 잊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패러디 문화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관심에 대해서는 감사하지만, 또 한편 그에 대한 가치적 판단은 우리가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패러디 문화를 만들어낸 누리꾼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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