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복지를 위한 30년 역정 고철환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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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갯벌은 국립공원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지속가능 문제보다 더 강한 성장 욕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복지국가 정도를 많이 얘기하는데, 생태복지국가… 이론적으로는 그런 것도 얘기할 수 있죠.”

모든 논란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전문성이다. 반대 진영은 늘 이 문제로 공격받는 걸 본다. 그것이 자연과학이나 공학의 영역이면 더욱 그렇다. 최근 뜨거워진 탈원전(또는 탈핵) 이슈를 보면 이 문제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탈원전 진영이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 그들 편에서 전문성을 부여해줄 원자핵공학자의 부재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의 사회활동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연구 대상이 인간이나 사회가 아닌 자연이라는 영역이고, 그러다 보니 사회 현장보다는 자연 현장이나 실험실, 연구실에서 씨름해야 할 때가 더 많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신동호가 만난사람]생태복지를 위한 30년 역정 고철환 서울대 명예교수

얼마 전 정년퇴임한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고철환 명예교수를 어느 행사장에서 만났다. 김종성 고려대 환경생태학공학부 교수의 말처럼 학자의 삶, 저항의 삶, 참여의 삶이라는 3박자 요소를 조화시킨,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교수는 국내 갯벌 연구의 선구자로서 새만금사업 반대운동에 전문성을 제공해주었다.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생태지평연구소 이사장 등의 이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민사회운동 전반의 전문성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다. 민교협 상임의장을 지내는 등 사회 민주화 과정에도 적극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렇다고 학자로서 본업을 소홀히 한 게 아니다. 49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SCI)에 게재했고, 지난 3월 현재 1261회 인용됐다. 세계 유명 대학 교수의 피인용 횟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6월 6일 경향신문사에서 고 교수를 따로 만났다.

얼마 전 보수단체에서 ‘국책사업 반대행위 인명사전’을 발표한 걸 보니까 거기에 이름이 들어가 있던데요.
“아, 그렇습니까. 처음 듣습니다.”

‘국책사업반대행위조사위원회’가 밝힌 대형 국책사업에 상습적으로 반대한 학계의 주요 인사는 7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은 인문사회과학 부문의 학자이고, 자연과학 및 공학자는 그와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환경공학) 둘이다.

학자는 몇 분 안 되고, 더욱이 과학자는 혼자더군요.
“과학 하는 사람의 사회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앞으로 원자력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돼요. 그건 전문가가 대부분 갖고 있잖아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이나 공학이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많다고 봅니다.”

반대했던 국책사업이 어떤 겁니까.
“새만금 간척사업, 영산강 4단계 사업(함평만 간척사업), 4대강 사업… 이런 것들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새만금이겠죠.
“문제도 심각하고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새만금 반대운동의 특징은 전문가의 조언이 없이는 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니까요. 갯벌 하면 잘 모르는 땅, 지저분한 곳, 개발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했잖아요. 동강하고도 달라요. 동강 하면 아름다운 산과 강의 경관이 떠오르잖습니까. 새만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전문적으로 생태적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되는 것이었죠.”

인천만 조력발전 반대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더군요.
“인천만 조력발전 건설 대응을 위한 민관공동대책위원회라는 게 있어요. 거기에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그러니까 맞네요. 사사건건 반대하는 게….
“허허허.(함께 웃음) 주로 그런 바다 쪽에….”

탈핵 선언, 이런 데도 참여하잖습니까.
“예. 그건 뭐 상식적인 거니까요.(웃음)”
고 교수는 지난 5월 30일 발족한 ‘담쟁이포럼’에도 참여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외곽조직이다. 현역의원,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인사 300명이 1차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이사장을 맡았다. 모임 이름은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의 시 ‘담쟁이’에서 따온 것으로, 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담쟁이처럼 올라서 넘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담쟁이포럼에 어떻게 해서 참여하게 됐습니까.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고 해서 어떻게든 대선까지 같이 돕자고 해서…. 사실 개인 지지모임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인연으로 하게 된 거죠.”

고 교수는 인터뷰 다음날 문 고문의 일본 방문길에 동행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함께 만났다. 손 회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만남에서 중장기적으로 탈원전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두 사람이 인식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시절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을 지낸 분으로서 현 정부의 녹색성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아주 분명하고 핵심적인 것은 녹색성장의 개념을 너무 좁게 설정한 점이에요. 녹색보다 성장에 초점을 두면서 주로 산업 부문의 환경적 효율 개선 내지는 이산화탄소 저감 쪽으로 간 거죠. 그러니까 그 외의 것들은 무시되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측면에서 보더라도 에너지를 어떻게 하자는 얘기와 더불어 열대림 같은 걸 잘 보호하자는 또 다른 중요한 축이 있어요. 에너지 효율과 자연보전이라는 두 축을 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예요. 지속가능발전처럼 개념을 넓히면 4대강 사업이라든가 인천만 조력발전과 같은 자연 파괴적인 정책을 펴기 어렵죠.”

환경단체에서는 참여정부에 대한 섭섭함이 큰 것 같습니다. 새만금 강행하고, 골프장 두 배로 늘리고, 죽은 한탄강댐 되살리고, 돈으로 방폐장 유치 경쟁을 시키고….
“맞습니다. 새만금은 제가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 있을 때 1심 판사가 추진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토론하고 대화를 해서 좋은 안을 만들라고 판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진행하면 좋았을 텐데 파워게임이 돼버렸어요. 재고하자는 세력이 거기서 패한 것이죠.”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까.
“(새만금 사업이) 왜 적절치 않은지 보고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죠. 그러나 많은 위원회 중에 하나일 뿐이고 건설교통부, 농림수산부, 기획재정부 등 여러 부처와 협상을 해야 되니까 역부족이었던 거죠. 심지어 청와대 안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환경비서관을 두게 됐잖아요. 지금도 취약하죠. 사람들이 주로 경제를 많이 얘기하니까….”

[신동호가 만난사람]생태복지를 위한 30년 역정 고철환 서울대 명예교수

그래서 말인데요. 환경을 중시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문 고문과 주변 인사들이 별로 미덥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역할을 했던 분들이니까 문 고문이 집권하면 ‘도로 참여정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거죠.
“제가 볼 때 그건 다른 어느 정당의 대선후보로 거명되는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우리나라에는 지속가능 문제보다 더 강한 성장 욕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복지국가 정도를 많이 얘기하는데, 생태복지국가…(크게 기침) 이론적으로는 그런 것도 얘기할 수 있죠. 생태복지국가를 말이나 구호나 비전으로는 제시할 수 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거예요. 어느 후보든 (생태복지국가를 실현하기에) 적당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탈원전 정책입니다. 원전 비중을 MB(이명박) 정부에서 급작스럽게 40%에서 60%가량으로 올렸거든요. 정권이 바뀌면 장기적 안목에서 탈원전 계획은 분명히 수립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게 아주 핵심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죠.”

다음 정부는 정책기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성장을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물이니 원자력이니 전기니 에너지니 하는 것들이 다 공급 위주 정책이거든요. 이걸 수요관리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성장을 조절하는 겁니다. 최대치 같은 걸 설정하고 그 안에서 성장을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수요를 조절해서 충당하는 형식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느냐는 것인데,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그렇게 하려면 건설·교통·해양과 같은 개발부처, 산업·자원·에너지 관련 부처, 그리고 환경부처까지 관할하는 부총리를 두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문 고문이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미래 지향적, 생태 지향적, 지속가능발전 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아까 말했듯이 참여정부가 그런 부분을 후퇴시킨 점에 대해서는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지적을 듣지 않습니까.
“실제로 여러 단체에서 반대가 심했던 골프장, 새만금, 방폐장 같은 문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균형발전 정책으로 지방의 땅값을 올리는 선택을 한 것이죠. 그렇다면 지방화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이냐인데, 거기에 토지·환경문제가 연결돼서 복합돼 진행될 수밖에 없어요. 어쨌건 지난 시절의 부족했던 부분은 충분히 숙고·반성하고, 그 토대 위에서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뜻하지 않게 자꾸 추궁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예전에 고 교수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성심껏 자세히 설명해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자의 질문에 제자에게 이해시키듯 자상하게, 그리고 학술적으로 논증하듯 오류 없이 답변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갯벌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키고 우리나라 갯벌을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습니까. 세계 5대 갯벌은 세계 학계가 사용하는 걸 국내에 가져온 겁니까.
“제가 연구조사를 해서 만든 거예요. 우리나라 갯벌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기 위해서 한 것이죠. 제가 5대 갯벌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아프리카 지역에도 굉장히 중요하고 큰 갯벌이 있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과학적 정밀성보다 그런 상징어가 갯벌보전운동에서 호응을 많이 얻은 점에서 의미가 컸던 거죠.”

고 교수 이전의 갯벌 연구는 간척을 위한 공학적 접근이 거의 전부였다. 생태적 연구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의 연구와 노력으로 간석지라는 용어가 갯벌로 바뀌었고, 간척 대상에서 보전해야 할 자산으로 갯벌의 가치가 재발견됐다. 비록 실패했지만 새만금사업 반대운동 등을 통해 많은 갯벌이 습지보호지역 또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살아남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인천·강화·아산·가로림 등 여러 갯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른바 ‘녹색성장’을 위한 조력발전소 건설 때문이다.

인천, 강화, 가로림 등이 왜 문제가 됩니까.
“다 조력발전이지만 사실상 간척입니다. 방조제를 쌓기 때문이죠. 바깥으로 이렇게 디귿자로 쌓는, 그러니까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식하게 뻘에다가 둑을 만드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느냐고 할 정도로 파괴적이죠.”

독일은 모든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 우리는 일부라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중요한 갯벌을 국립공원화하는 걸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1990년대부터 주장해온 바죠. 새만금 이후 갯벌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면서 그런 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인천만 조력발전만 하더라도 인천 말고는 전국적 호응이 적은 상황이죠. 갯벌을 보전하려면 뻘이 드러나는 곳뿐 아니라 생태계 단위의 넓은 구역을 포함해야 해요. 그런 넓은 지역은 느슨한 형태의 관리구역으로 묶고 중요한 부분은 핵심지역이라고 해서 보호 강도를 높이는 해양 공간 계획을 잘 세워야 하는 거죠. 제가 바덴해 3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과 우리 국토해양부가 MOU 맺는 걸 도왔는데, 그런 이론과 기법을 잘 받아들여 정책을 발전시켰으면 합니다.”

고 교수는 갯벌 연구 외에도 암반 생태라든가 퇴적물 오염 연구 분야의 국내 개척자다. 이런 연구는 수중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잠수과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기구인 동아시아해양환경관리협력기구(PEMSEA) 집행위원회 부의장도 맡고 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크게는 어떻게든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어떤 형태가 될는지는 모르겠는데,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책을 써서 많은 사람이 함께 호흡하면서 의식을 높여가는 것이죠. 사회운동을 열심히 해서, 운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바꿀 수도 있고요. 특히 제가 공부한 것이 자연과 생태인데 사회적으로 잘 먹혀들지 않아 어떤 때는 절망하기도 하죠. 그걸 어떻게든 극복해서 생태지향적 사회로 가까이 가도록 하는 데 공헌하고 싶습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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