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야생동물 공존하는 세상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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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아시아코끼리 구한 투이 세레이바타나 FFI 캄보디아 대표

올해는 ‘환경적으로’ 매우 특별한 해다. 세계 각 나라가 스웨덴 스톡홀름에 모여 환경 문제를 처음 논의한 지 40년을 맞는다. ‘세계 환경의 날’은 이 회의가 열린 6월 5일을 기념해 제정된 것이다.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등을 탄생시킨 1992년 리우회의도 스톡홀름회의 20주년을 기념해서 개최됐다. 20년마다 환경 문제에 대한 대전환점이 마련된 셈이다. 올 6월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다시 열리는 리우+20 회의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더 특별한 게 또 있다. 민간 영역에서 환경 문제에 눈뜬 계기와 관련한 것, 즉 환경운동이다. 현대적 환경운동이 시작된 지 50년, 국내 환경운동이 본격화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세계 환경운동 진영은 1962년 미국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출간을 현대적 환경운동의 효시로 본다. 국내 환경운동은 19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삼는다.

지난 5월 30~3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환경재단과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한국 환경운동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러 논의 가운데 앞으로 30년을 향해 환경운동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눈길을 끌었다. 말하자면 환경운동이 자연의 파괴와 오염을 막는 운동, 뭔가 반대하는 운동이라는 협소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고민이었다. ‘환경주의의 부활을 위해 환경이라는 말부터 버려야 한다’ ‘환경 대신 생태·생명·평화 등이 새로운 운동의 키워드가 돼야 한다’ 등의 주장이 그런 것이다.

[신동호가 만난사람]인간과 야생동물 공존하는 세상 만들어야

환경운동은 반공해운동에서 환경, 생태(생명)운동으로 변화·발전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반공해는 피해자, 환경은 인간을 중심에 놓은 개념이다. 이제 국내 환경 인식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 전반을 생각하는 쪽으로 확장됐다. 최근 서울대공원 돌고래 ‘제돌이’의 자연 복귀라든가 동물권에 대한 관심 등이 그런 상황을 반영한다.

이 심포지엄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 환경운동가가 참여했다. 환경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상 수상자들이다. 국내에서 이 상은 1995년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받은 게 지금까지는 유일하다. 방한한 아시아 환경운동가 가운데 코끼리 보호활동으로 2010년 골드만상을 수상한 투이 세레이바타나 FFI 캄보디아 대표를 지난 5월 31일 서울 서소문 환경재단에서 만났다. FFI는 Fauna(동물군) & Flora(식물군) International의 약자로서,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부를 둔 국제 동식물보호단체다. 세계 40여개국에 지부가 있다.

한국에는 처음입니까.
“두 번째예요. 2004년에 서울대에서 10일 정도 연수한 적 있어요.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네요. 주민들이 코끼리 두 마리를 죽이려 해서 저희가 보호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 정부에서 코끼리가 있으면 좀 달라고 캄보디아 정부에 요청했어요. 그래서 그 코끼리를 한국에 있는 동물원에 보냈거든요. 보고 싶네요. 시간이 되면 가서 보고 싶습니다.”

먼저 어떻게 불러야 될지 이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투이(Tuy)가 성이고 세레이바타나(Sereivathana)가 이름이다. 그는 캄보디아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크메르족이고 크메르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다. 인터뷰할 때는 영어를 사용했다.

“크메르어로 세레이는 자유, 바타나는 진보를 뜻하죠. 처음에는 어머니가 바타나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크메르루주 정권이 물러난 뒤에 세레이라는 말을 앞에 더 붙였어요. 보통은 ‘바타나’라고 짧게 불러요.”

뜻밖에도 이름 속에 그의 가족력과 정치적 상처가 배어 있었다. 그는 1970년 캄보디아 동부 콘달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곳은 수도 프놈펜이다. 뒷날 ‘코끼리 아저씨’로 불리는 세계적 운동가로서의 소양은 ‘킬링필드’로 상징되는 나라의 극심한 정치적 폭압구조 속에서 길러졌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어요. 크메르루주 정권이 들어서자 먼 시골로 탈출했죠. 아버지 고향의 아주 깊숙한 마을인 시추어라는 곳인데, 거기서 학교를 세워 오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부모님을 도와 버팔로를 돌보고 키웠어요. 자연을 많이 접한 성장 배경이 있었던 거죠.”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장학금을 받아 옛 소련의 벨라루스로 유학을 떠났다. 벨라루스대학에서 6년 동안 산림학을 공부하고 귀국해서는 곧바로 정부 기관인 산림청 산림자원국에 근무했다.

지금 캄보디아 코끼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야생에는 500마리 정도가 있습니다. 농지 확장이나 댐 건설 등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는 와중이기 때문에 서식지 파괴가 심각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1995년 캄보디아 야생 코끼리 숫자는 2000마리에 이르렀다. 개체수가 급감한 것은 서식지와 먹이가 부족해진 야생 코끼리가 농지를 침범, 주민과 충돌하면서다. 교육받지 못하고 극심한 가난을 겪는 주민은 생계를 지키기 위해 코끼리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2003년 공직을 그만두고 FFI의 야생 코끼리 보존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는 생존을 놓고 벌어지는 인간과 동물의 절박한 갈등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다.

코끼리 보호를 위해 주민 설득 방식을 먼저 썼는데, 그게 통할 수 있었던 게 놀랍습니다.
“농작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화를 냈어요. 야생 코끼리가 저희한테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코끼리가 이렇게 했으니까 책임져라, 너희 담당 아니냐고요.(웃음)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저 자신이 가난한 시골에서 성장했고 성격상 화를 잘 안 내요. 아주 못 사는 시골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잘 알고 그들을 설득하는 재능이랄까, 그런 게 있거든요. 주민들이 화를 내면 진정시키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을 잘 알기 때문이죠. 프로젝트 팀과 주민 사이에 상호 신뢰를 쌓아서 함께 대응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부터 시작한 겁니다.”

그의 방식은 감시나 규제보다 대화와 협력의 공존 모델이라고 할 만하다. 주민에게 고추, 토착 식물, 울타리, 폭죽, 경적 등을 이용해 코끼리를 비폭력적으로 물리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한편, 협업을 통해 농작물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2005년 이후 야생 코끼리 살해 사례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고, 개체수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코끼리 보호 운동으로 골드만상을 받았는데, 코끼리 보호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골드만상은 코끼리 보호가 아니라 지역의 인간 공동체와 코끼리의 공존을 성취한 부분에 대해서 받은 거죠.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게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세상이죠. 코끼리를 좋아한 건 어릴 때 시골에서 버팔로를 지키면서 부모님을 도울 때부터였어요. 그 전에는 코끼리를 책이나 사원에 그려진 종교적인 그림 등을 통해서만 봤지 실제로 보지 못했죠. 그런데 시골 마을에 코끼리가 온 적 있어요. 12살 때였는데 ‘마후’(코끼리를 끌고다니며 전통약을 파는 상인)가 왔어요. 너무 마음이 끌려서 코끼리가 어떤 동물인지, 어떻게 사는지 마후에게 계속 물었죠. 그 이후 코끼리에 계속 관심을 가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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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보호를 위해 공무원 생활을 그만둘 때 갈등은 없었습니까.
“2003년 산림자원국에 있을 때 FFI가 캄보디아에 들어오면서 코끼리 보호 프로젝트라는 걸 시작했어요. 국에 찾아와 그런 쪽에 관심을 갖고 헌신할 사람을 물색하는 거예요. 그때 자원했습니다. 그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갈등은 없었죠.”

코끼리가 주민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서식지 확보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 않습니까.
“코끼리는 한 지역에서 사는 게 아니라 계절에 따라서 이동합니다. 개발 때문에 중간에 이동경로가 차단되죠. 정부와 논의해서 그런 데를 코끼리 보호구역이라고 표시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쓰지만 현재로서는 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코끼리뿐 아니라 야생동물 전체의 보호를 위해서도 중요하고 큰 문제예요.”

캄보디아에서 코끼리가 전통적으로는 어떤 존재이며, 지금은 국민 인식 속에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코끼리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앙코르와트 건설도 코끼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코끼리를 신성시하는 역사도 있고요. 앙코르와트에 그려진 그림도 코끼리와 연관성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 코끼리는 행운의 상징이기도 해요. 아기가 아프면 코끼리 배 밑을 세 번 지나가게 하는 전통이 있어요.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서 코끼리가 경작지 주위를 세 번 돌게 하는 전통도 있고요. 이런 전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근래 들어서 개발이나 경작지 확장으로 충돌이 생기면서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코끼리가 캄보디아 국민정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합니다.”

사육 코끼리의 실태는 어떻습니까.
“2년 전 조사했을 때 120마리 정도였는데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감소하고 있다니 뜻밖이군요. 그 까닭이 뭡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인간에게 활용되거나 이용되는 코끼리가 자연스럽게 노화해서 죽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 공동체가 키우는 코끼리가 공동체 내에서 임신해서 새끼를 낳는 일이 없어요. 굉장히 터부시됩니다. 키우던 코끼리가 죽으면 야생에서 잡아와서 채웠던 거죠. 지금은 야생 코끼리 포획이 금지돼 있습니다. 사육 코끼리가 죽으면 더 이상 추가가 안 되니까 전반적으로 그 숫자가 감소하게 된 거예요. 두 번째는 나라가 발전하면서 코끼리를 이용한 교통수단이 자동차 등 다른 수단으로 대체되면서 굳이 코끼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거죠.”

태국 같은 경우는 사육 코끼리 학대 문제가 표면화돼 있는데, 캄보디아도 버려진 코끼리를 보호하는 ‘코끼리 고아원’ 같은 게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그런 게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돌고래의 야생 복귀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들었습니까.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 문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육되고 있던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면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캄보디아에 코끼리 야생 복귀 프로그램이 있나요.
“얼마 전 곰을 야생으로 보내려 한 적은 있어요. 현재로서는 그런 프로그램은 없고, 그게 좋은지 나쁜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한국에는 멧돼지와 주민의 충돌이 있습니다. 멧돼지 개체수 증가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부와 국민 사이에 공감이 필요합니다. 캄보디아도 야생 멧돼지 개체수 증가가 큰 문제예요. 예를 들어 코끼리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요. 어느 정도의 수가 우리에게 적당할 것인가 하는 건데, 1000마리 정도라고 합의를 보면 어느 정도의 영역이 확보돼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이 생기는 거죠. 그런 것처럼 멧돼지 개체수를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 숫자를 설정하고 그 정도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에 주력할 겁니까.
“최근 FFI의 캄보디아 대표가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코끼리와 지역사회의 충돌뿐 아니라 다른 문제도 많습니다. 바다거북, 악어 등 동물 보호뿐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까지 활동을 확장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에도 코끼리 보호 프로젝트의 ‘투이 모델’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일 때문에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보았습니다. 항상 개발론자와 환경보호론자 어떤 쪽도 만족시키는 결론은 없고, 서로 대립하고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말이나 정치로 풀 게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환경론자와 개발론자 사이에 서로 대화가 될 수 있도록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비롯해서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한 8명의 골드만상 수상자는 6월 1일 모임을 갖고 ‘그린아시아포럼’을 만들기로 했다. 이들은 탈핵사회 실현을 위한 자연에너지 지원, 기후변화 공동 대응, 해양·하천의 생태 보전, 여러 나라를 흐르는 강의 공정한 수자원 이용, 숲과 생물다양성 보존, 환경교육 지원, 식량안보를 위한 지역사회 활동 지원 등에 공감했다. 사무총장에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추대됐으며, 본부도 서울에 두기로 했다.

시간을 내줘서 고맙습니다. 특별히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한국 국민과 정부에 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한국에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가 많이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골 지역의 캄보디아인이 한국에 와서 돈을 벌게 되면 캄보디아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 부양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경작지를 늘리지 않아도 되니까 코끼리와 지역민 사이의 충돌을 감소시키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도 더더욱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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