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으로 돈 벌려는 것은 구닥다리 사고”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서울에 온 ‘미스터 에너지 시프트’ 이이다 데츠나리 일본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장

지난 5월 10일 일본에서 온 두 유명인의 강연이 서울에서 있었다. 하나는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제행사에서 행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기조강연이다. 다른 하나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진행된 강연으로서, 연사는 이이다 데츠나리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장이다.

손 회장이 강연한 행사는 대한민국 정부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환경계획(UNEP), 세계은행(WB)이 협력하고 있다는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 2012’다.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이다 소장의 강연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원전 없는 미래로: 출구는 자연에너지다>(도요새·원제 에너지진화론)의 저자 특강이다. 여기에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참석했다.

일본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접점은 탈원전·자연에너지 전도사라는 점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사재 10억 엔을 출연해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했고, 이이다 소장은 이 재단의 업무 집행이사 겸 정책 이노베이션 사업부 이사를 맡고 있다.

[신동호가 만난사람]“원자력으로 돈 벌려는 것은 구닥다리 사고”

손 회장은 후쿠시마 사태 이전까지 원자력산업에 투자할 정도로 탈원전과 무관했다. 이이다 소장은 원자핵공학을 전공하고 원자력산업에 종사했던 이른바 ‘원자력마을’(우리나라의 ‘원자력 마피아’와 비슷한 개념)의 일원이었다.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탈원전·자연에너지주의자가 된 두 사람이 원전에 대해 가장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최열 대표의 초청으로 동시에 방한한 것이 우연치고는 기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 회장은 기조강연에 들어가기 전 트위터에다 탈원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 2011’ 때 “탈원전은 일본 얘기이며 한국은 다르다” “한국이 원자력을 안전하게 추진하는 것에 대해 존경한다”는 등 자신의 말이 와전된 것을 염두에 둔 듯 강연과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탈원전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이이다 소장의 교보 특강을 들은 뒤 그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후쿠시마 사태 전부터 탈원전·자연에너지 전문가로서 강연, 방송 출연, 정부·지자체·기업·단체의 자문 등으로 유명세를 탔다. ‘미스터 에너지 시프트’라는 별명으로 통할 정도다. 인터뷰는 서울 용산CGV 제9회 서울환경영화제 게스트룸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서울에 와서 어떤 분들을 만났습니까.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을 뵈었습니다. 첫날(5월 8일) 기후변화리더십 강의를 했는데, 거기서 학계와 재계 리더급 인사를 많이 만났고요.”

원자핵공학을 전공하고 고베제강에서 원자력산업의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통째로 경험하고 전력중앙연구소 파견근무를 통해 이른바 일본 ‘원자력마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서는 원자력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가장 회의를 느낀 점이 어떤 부분입니까.
“고베제강에서 일할 때 건축설계나 기계, 제도 등 (원자력산업의) 전 과정을 다 경험했는데, 제일 중요하게 본 게 안전평가였어요. 그 부분에서 믿을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던 게 첫 번째 이유고요. 전력중앙연구소에서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많이 했어요. 거기서 정책이나 정치의 뒷부분에 있는 걸 너무 많이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극한성이 있고 텅 빈 산업이라고 느낀 거죠.”

어제 환경영화제 개막식에서 ‘원자력은 전혀 쓸모없는 기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술·공학적 차원에서 원자력이 왜 안 되는지 핵심적인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절대적인 문제는 핵폐기물입니다. 핵발전을 하는 이상 폐기물이 나옵니다. 그 다음이 방사능입니다. 발전소가 많아지면 방사능에 점점 더 많이 노출되는 겁니다. 이런 절대적인 문제에 대한 현실감이 후쿠시마 사고 전에는 우리 사회 전체에 없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서 처음으로 정확한 현실을 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런 문제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어요. 원자력 비용이 비싸지고 (사고를 보상해주는) 보험회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 그걸 설명해줍니다.”

지난 5월 5일에 일본 원전 54기가 모두 멈췄습니다. 원전 제로 상황이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지금 핵발전소가 제로가 된 것은 일본의 정책 결과가 아니라 정부의 대응이 너무나 볼 모양이 없어서 국민이 심하게 반대한 결과로 이루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우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건 단기적인 현상이 될 것 같아요. 얼마 동안 가느냐를 딱히 물으신다면 조건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겠지만 이르면 올 여름, 길게는 1년 후면 재가동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습니다.”

이이다 소장은 지금의 원전 제로 상황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누구보다 강하게 탈원전 논리로 무장하고 실천에도 발 벗고 나서는 그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다.

“예기치 않게 모든 원전이 정지되었기 때문에 올 여름 전력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맞부딪치게 되었어요. 원래는 이와 상관없이 정면으로 대응해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문제였죠. 원자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갖고 정책으로 만들어서 하나하나 결정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중요한 게 폐연료인데 앞으로 5년이면 (자체 저장공간이) 꽉 차게 됩니다. 아오모리현(靑森縣) 롯카쇼무라(六ケ所村)에 재처리시설을 세우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가동을 못 하고 있잖습니까. 탈핵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도 많이 필요하죠. 사고 보상이라든가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 등 모든 비용의 부담을 전부 다 회사가 지는 것, 그런 전제를 포함해서 안전기준을 훨씬 더 높이는 것, 이런 여러 가지 기준을 달면서 천천히 탈핵을 해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얼마만치 하느냐에 따라서 일본의 탈핵 실현 속도를 결정해야 하는데, 저희 연구소에서 그런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신동호가 만난사람]“원자력으로 돈 벌려는 것은 구닥다리 사고”

올 여름 전력 수급상황을 어떻게 봅니까.
“한 가지 사례를 들면 원전이 다 멈췄기 때문에 올 여름 간사이 지방에 전기가 19% 모자랄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간사이는 전체가 배송선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조정을 하면 모자라는 게 3%밖에 안 된다는 게 정부와 전력회사가 내놓은 수치예요. 저희 분석은 수요관리 정책을 잘 펴고 독점구조를 조정하면 3%가 모자라는 일도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원전 제로 상황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공평한 시장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비용과 리스크를 생산자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민주적이고 열린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해서 좋은 정책을 만들어가면 탈핵이 실현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펴고 있는 원전 1기 줄이기 정책에 대해서 들었습니까.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난 1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원전세계대회에 보내주신 영상메시지를 보았고 이번에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아주 알기 쉽고 목표 자체로서도 좋다고 개인적으로 보고요. 지난해 도쿄가 절전을 해서 여름을 지낸 경험으로 보면 서울은 훨씬 더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걸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느냐, 또 그 정책을 펴기 위해 박 시장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예요. 구호를 만드는 데는 1초밖에 안 걸리겠지만 실현하는 데는 100만 배의 노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구호는 좋은데 혹여 아무 성과 없이 끝난다면 국민의 실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서울시가 좋은 정책과 리더십을 발휘해 꼭 실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야마가와 겐 감독의 <동경핵발전소>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도쿄에 원전을 유치하겠다”는 도지사의 폭탄발언으로 시작된 원전 논란을 코믹하게 그리면서도 촌철살인의 내용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만든 <동경핵발전소>라는 영화가 한국에서는 현실입니다. ‘부산핵발전소’,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말입니다.(고리원전과 부산역은 약 21㎞ 떨어져 있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부터 많은 걸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사고가 나서 그런 레벨의 방사능이 방출됐을 때 어디로 피난해야 하고 확산 지역이 어디까지 되는지 우선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피난이나 안전대책에 대해 논의해야 하죠. 현실적으로 400만 인구가 있잖아요. 현실적으로 피난을 할 수 없다는 점도 있죠.”

이이다 소장은 저서 <원전 없는 미래로>에서 일본이 원자력 패러다임에 갇혀 자연에너지 분야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 본보기로 고정가격매입제(Feed in Tariff·FIT)와 의무할당제(Renewable Portfolio Standard·RPS)를 들었다. 둘 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것이지만 FIT는 민간 지원책이고, RPS는 전력회사에 강제하는 정책이다. 일본은 10년 논란 끝에 올 7월 RPS에서 FIT로 정책 전환을 하게 됐고, 한국은 2001년부터 발전차액지원제도라는 이름으로 FIT를 시행하다가 올해부터 RPS로 제도를 바꾸었다.

이이다 소장의 지적대로라면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터널을 겨우 벗어났는데, 한국은 앞으로 ‘잃어버릴 10년’이 될 것 같습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한국이 FIT를 버리고 RPS로 돌아간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패할 것이 틀림없다고 보기 때문에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하군요. (에너지 시프트는) 정책을 얼마만치 빨리 개발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르면 2~3년 안에 바로 좋은 제도로 돌아올 수 있고, 아니면 10년이 걸릴지 또는 그 이상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왜 RPS로 가면 실패할 거라고 봅니까.
“세계에서 RPS가 다 실패로 끝났다는 게 제일 좋은 설명인 것 같고요. 제가 알기로는 미국 텍사스주의 풍력발전소 빼고는 성공한 사례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말씀드리면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기 때문입니다. 제일 싼 에너지를 치열한 경쟁으로 뺏으려고만 했지 기술 같은 걸 잘 알지 못하고 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겁니다. 제가 책에서 말한 대로 기술학습효과(설비가 보급됨에 따라 비용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를 얻을 수 없는 것이죠.”

에너지 시프트를 위해서는 FIT와 같은 제도도 중요하지만 분산형 자립형으로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좀 알기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지역의 자연에너지는 어떤 정책을 실시하지 않아도 보급될 수 있는 에너지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틀렸던 것은 중앙이 그것을 식민지처럼 개발한 점이죠. 지역이 주체적으로 소유권을 가지고 자연에너지를 확산하게 하는 게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산형 소규모 바텀업(상향식) 방식으로 많은 사람이 정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겁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함께 동아시아탈원전자연에너지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탈원전·자연에너지와 관련한 동아시아적 비전을 말씀해주십시오.
“원자력 정치나 사업을 일으킨 것이 인간의 실수라고 한다면 그것을 좋게 만드는 것도 인간의 힘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지금 자연에너지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 1960~70년대 발생한 모든 일(원자력의 발전과 반핵운동을 지칭)의 두 번째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은 그런 운동을 다음 단계로 무대를 바꾸는 시기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공평성의 시장체제, 정확한 정책, 열린 민주주의, 열린 정보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지혜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는 세계적으로 분쟁도 많고, 원자력도 제일 많고, 여러 가지 역사적 문제도 있고, 에너지도 부족한 지역입니다. 마침 이 시기에 제4혁명이 일고 있기 때문에 제가 제안했듯이 ‘동아시아 솔라 커뮤니티’ 같은 걸 만드는 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4의 혁명, 에너지 민주주의, 에너지 시프트, 자연에너지…. 그가 노래처럼 부르는 말들이다. ‘카본 플랫랜드(Carbon Flatland)의 종료’라고도 말했다. 기후변화협상의 거듭된 실패에서 보듯이 지구환경 문제도 탄소 기반의 해결방식에서 벗어나 에너지 시프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원자력은 윤리적으로도 나쁜 에너지이지만 경제적으로도 사멸해가는 에너지”라고 단언했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세계 원자력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일침을 놓았다.

“원자력을 수출해서 돈을 벌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20세기적 구닥다리 사고를 가진 것이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신동호가 만난사람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