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투쟁의 선봉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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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회의가 대선 야권연대 감독역할”

문제가 있는 곳에 늘 그가 있다. 그가 있는 곳이면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 청계광장에, 덕수궁 대한문 앞에, 방송사 파업 현장에, 시위를 보도하는 TV 화면에, 심지어 야권후보 단일화 테이블에까지. 나이 57세. 직업은 사회운동가. 세상에 저렇게 오랫동안 똑같은 일을 저리 치열하게, 그리 쉬지 않고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보통 그렇게 부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광우병위험감시국민행동 공동대표, KTX민영화저지와철도공공성강화를위한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공정언론공동행동 공동대표, 고엽제대책회의 공동대표…. 그 자신도 열거하다가 막힐 지경이다. 가히 직업이 ‘공동대표’라고 해도 되겠다.

7년 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안티테제의 가장 뾰족한 지점에 서 있었다. 성이 ‘집’씨고 이름이 ‘행위원장’인 사람. “아마 100개가 넘을 걸”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제까지 집행위원장이나 운영위원장으로 이름을 건 단체나 기구가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도 여전하다. 다만 직함이 ‘공동대표’로 업그레이드되었을 뿐이다.

[신동호가 만난사람]‘거의 모든 투쟁의 선봉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그를 만난 것은 ‘문제’가 많아서일 것이다. 문제야 늘 있지만 그 성격이 그가 속한 진영의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고 매우 심각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예상대로 그는 무척 바쁜 듯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사정을 듣고 양해했다. 연중 가장 쾌적한 기후 조건임을 감안해 야외 인터뷰를 제안했다. 지난 5월 3일 오후 서울 경희궁 벤치는 봄기운이 넘칠 정도로 흥건했다.

직함이 이제는 공동대표로 다 바뀌었네요.
“2007년과 2008년에 연달아 두 번 감옥에 갔다 왔잖아요. 한·미 FTA하고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집행유예다 보석이다 해서 ‘외상값’이 달려 있으니까 후배들이 이제 집행위원장이나 운영위원장은 그만 졸업하고 대표 하시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웃음)”

요즘은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한미FTA범국본, 광우병위험감시국민행동, KTX대책위, 공정언론공동행동, 이런 데 집중하고 있죠. 야권연대와 관련해서는 희망2013승리2012원탁회의 멤버이고요.”

원탁회의가 최근 민주통합당 지도부 구성과 관련해서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역할 분담 담합’ 논란에 휘말려 구설수에 올랐잖습니까. 어찌 된 일입니까.
“구설에 올랐는데 실제 내용은 어떠냐 하면 원탁회의에서 그런 논의를 한 바 없고요. 그런데 자꾸 그런 보도가 나오길래 원탁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하고 ‘사실 확인을 하고 보도해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습니다. 언론사에 사실 확인을 하고 보도하라는 얘기는 굉장히 심한 욕이죠.(웃음)”

그는 ‘담합’ 논란이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경위를 길게 설명했다.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덕담 차원의 사담이 와전돼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받아들일 만했다. 원탁회의는 지난해 7월 발족했지만 그 뿌리부터 따지면 2010년 지방선거 국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지방선거, 이듬해 4·27재·보궐선거, 10·26서울시장보궐선거, 지난 4·11총선의 야권 후보 단일화와 민주통합당 등 야권통합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시민사회의 원로들이 정당 활동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정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시민사회가 정파성을 띠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을 텐데요.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요. 정치는 정당이 하는 것이죠. 다만 워낙 지난 4년 동안 국민이 고통을 많이 받았잖아요. 민주주의의 민생, 평화, 이런 부분에 대해 뭔가 숨 쉴 공간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가치와 비전을 만들고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될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지 정치의 직접적인 행위자로 뛰는 건 아닙니다. 실제적 힘은 없고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서 일종의 언덕 또는 병풍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원탁회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청화 스님 등 시민사회 원로와 한국진보연대(박석운)·희망과대안(백승헌)·시민주권(황인성) 등 정치운동체 대표급의 실행단 및 실무단으로 구성돼 있다. 21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22명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이해찬 고문과 문성근 전 대표권한대행 등 6명이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직을 맡으면서 빠지고 정연주 전 KBS 사장, 최영도 변호사, 양길승 녹색병원장 등 7명이 새로 들어온 결과다.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를 중재한 뒤 총선과 대선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워낙 중요한 선거니까 정치권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또 정권교체만 한다고 해서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정권교체를 해서 어떤 사회를 만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개혁을 하고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희망 2013’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이겨야 하니까 ‘승리 2012’라고 해서 ‘희망2013승리2012원탁회의’가 된 거예요.”

대선국면에서 원탁회의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까.
“지난 민주정부 10년이 국민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별로 성공하지 못한 점이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 아니겠어요. 선거에서 이기면 뭣 합니까. 어떤 내용의 민주진보개혁을 할 것인지, 즉 공통의 가치와 비전과 공동의 정책 과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걸 우선적으로 할 거고요. 그 다음 그걸 실현하는 방안으로서 야권연대를 매개하고 촉진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시·감독도 하는 역할을 자임하려고 하죠.”

[신동호가 만난사람]‘거의 모든 투쟁의 선봉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먼저 이기는 방안부터 살펴봅시다. 새누리당에는 지난 총선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 ‘선거의 여왕’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있고, 또 하나 강력한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장외에 있습니다. 선거는 물론 야권 후보 조정이 매우 어렵고 복잡하지 않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게요, 야당들의 쇄신입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게 있어야 합니다. 그게 핵심이에요. 제가 총선 개표 방송을 보면서 저녁에 굉장히 속이 상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서 기분이 좀 좋아졌어요. 왜냐하면 저렇게 (야당이) 엉망으로 하고도 선거에서 이겼으면 쇄신도 없을 거고 그건 대선 필패라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거꾸로 총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최소한 성찰과 쇄신의 가능성이 생겼고 그래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0%에서 50%로 높아졌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거죠.”

쇄신 얘기는 나중에 하고 민주진보진영 공통의 가치와 비전이라고 하니 좀 막연하군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습니까.
“이번에 굉장히 중요한 현상이 또 하나 있는데요. 서울지역 20대 투표율이 60%가 넘습니다.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때문이죠. 사실 그건 (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박영선 의원의 공약입니다. 그걸 야권연대 정책합의문 만들 때 제가 끼워 넣은 것이거든요. 투표를 해서 내 삶이 어떻게 바뀐다는 걸 유권자들이 느끼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데이터예요.”

원탁회의는 지난 총선 국면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서울 관악을 국회의원 후보직 사퇴를 이끌어내 야권연대 붕괴를 막는 데 기여한 바 있다.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총체적 부정선거 논란으로 파문이 일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민주통합당의 쇄신도 그렇지만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더 큰일입니다.
“굉장히 심각한 위기라고 저는 보고요. 말하자면 재창당 수준을 더 넘어서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참담한 가운데서도 한 줄기 희망을 가지는 것은 자정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에요. 치부이고 아픈 부분이고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이 날아가는 엄청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전면적으로 조사해서 축소·은폐를 하지 않고 진실을 다 공개하잖아요.”

당권파를 비롯한 내부의 저항이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봐야 되겠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일부에서 아직 미련이 남아 버티고 있지만 이른바 ‘진보민심’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진보민심의 흐름은 완전히 통째로 새로 짜자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비례대표 3번 또는 6번까지 사퇴하는 겁니까.
“그 정도가 아니고요. 싹 다 사퇴하고 개방형만 남기는 겁니다. 개인 책임이 아니라 경선 자체가 무효인 거죠. 개방형은 경선과 관계없이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고요. 그렇게 ‘쿨’하게 정리하자는 쪽으로 아마 잡힐 거예요.”

부정이 있었다면 부정을 행한 주체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은 이번 진상조사 결과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요.
“부정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투표 관리의 부실적인 측면이 더 많아요. 구체적인 개별 행위책임에 대해서는 당기위원회에서 2차 조사를 해서 그에 따른 징계를 하겠죠.”

과거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과정부터 이번 사태까지 이른바 당권파니 경기동부연합이니 하는 얘기가 자꾸 나오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어떻게 봅니까.
“일종의 패권적인 측면이 있는 거죠. 그건 사실이고 축소·은폐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해서 다 깐 거고… 딱 깐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죠.”

그의 투사적 삶은 대학 2학년 때인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과 1976년 12월 서울법대생 3인 시위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운동으로 두 차례 구속되면서 시작된 직업운동가의 길은 최근 두 차례 구속으로도 끝날 기미가 없다. 그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게 있다. 차마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최근 두 차례 구속된 건은 재판이 마무리된 겁니까.
“하나는 위헌제청이 돼 있어서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보석 상태로 재판이 중단돼 있는 상태죠. 그것 말고도 많아요. 희망버스로 벌금 300만원 받은 걸 정식 재판을 청구해놓은 게 있고, 언론법 날치기 때문에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과 항의 단식한 건, ‘장자연 리스트’를 제가 ‘방가방가 리스트’라고 해서 조선일보 앞에서 기자회견한 건 등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어요. 요즘 굉장히 근신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아무도 안 믿겠지만….(웃음)”

최근에 단식한 것은 언제입니까.
“지난 삼일절부터 3월 15일까지 청계광장에서, 지난해 10월 5일부터 10월 28일까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숙단식을 한 게 가장 최근의 일이죠. 다 한·미 FTA 때문이에요. 10월 투쟁은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어요. 단식 시작할 때 국민의 80%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단식을 시작했는데 끝날 무렵 70%가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여론이 역전된 겁니다. 기적이 일어난 거잖아요. 심지어 실정법을 다루는 판사들조차도 주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얘기할 정도가 됐으니까요. 비록 발효는 됐지만 정권만 교체되면 재협상해서 독소조항들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도 폐기를 주장하지는 않네요.
“저는 폐기를 주장하지만 그게 단숨에 되겠어요? 국민에게나 국제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폐기 수준의 재협상을 하는 수순이 더 설득력이 있는 거죠. 또 핵심 독소조항을 없애면 폐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환갑을 앞둔 나이에 거리에서 투쟁하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다기보다 과제가 날 놔주지 않네요. 일거리가 있다는 건 또 나름대로 작은 행복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가끔 정치 안 하냐고 하면 그래요. 바빠서 할 시간이 없네요.(웃음)”

사회운동가라는 직업은 정년이 없습니까.(웃음)
“민주화되면 제가 은퇴하는 거죠.(웃음) 민주화가 되고 노동자와 서민이 숨 쉬고 살 만하면 그게 은퇴죠.”

38년 거리 투쟁의 피로감 같은 건 없습니까.
“사실은 제가 워낙 낙천적이에요. 기분 나쁜 건 잘 잊어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철이 없다고 할까요.(웃음)”

가끔이라도 다른 삶을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까.
“제가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노동상담을 할 때 조영래 변호사가 고시 한번 보라고 권했어요. 내가 고시 보러 가면 후배들이 다 울지 않겠느냐고 농담 삼아 말했죠. ‘뻘쭘’하잖아요. 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면 모르지만 굳이….”

민주진보진영의 대선 승리를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정권교체 이후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개혁에 대한 가치와 비전,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보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들이 대대적인 혁신을 해야 하고요. 세 번째는 삼각동맹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주당 지지세력과 진보당 지지세력, 안철수 교수 지지세력의 삼각동맹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이죠. 이 세 가지가 야권의 대선 승리와 2013년의 희망을 만드는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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