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자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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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br>에릭 호퍼 지음·이민아 옮김<br>궁리·1만3000원

<맹신자들>
에릭 호퍼 지음·이민아 옮김
궁리·1만3000원

에릭 호퍼는 미국의 사회철학자다. 1902년 뉴욕에서 독일 이민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곱살에 어머니를 잃고 열여덟살에 아버지마저 잃은 그는 변두리 육체노동을 전전하며 독학으로 지적 자산을 축적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던 1951년 발표한 <맹신자들>은 그의 첫번째 저서다. 

책은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대중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적 사건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저자는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등 전체주의 체제의 독재자만이 아니라 링컨 같은 개혁성향 정치인, 처칠 같은 전시 지도자, 간디 같은 민족운동 지도자까지 대중운동의 지도자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종교운동·사회혁명·민족운동을 뭉뚱그려 대중운동의 유형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대중의 집합적 열정을 동원함으로써 기존 체제를 전복하려는 운동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저자의 관심사는 대중운동의 내적 속성을 체계적인 사회학 이론으로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운동에 열광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초기의 대중운동은 서로 간에 추구하는 교조와 포부가 아무리 다르다 해도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지지자로 끌어들인다”고 말한다. 그 지지자들은 대체로 맹신적 특성을 보이는데, 광신적 기독교도, 광신적 이슬람교도, 광신적 민족주의자, 광신적 공산주의자, 광신적 나치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광신자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무엇일까. 저자가 보기에 대중운동은 광신자들의 자기발전 욕구가 아니라 자기부정 열망을 충족시킨다. 저자는 빈곤층·사회적 부적응자·사회적 소수자·범죄자 등의 부류에서 나타나기 쉽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좌절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좌절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대중운동은 “어떤 숭고한 대의와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집단적 대의 속에서만 자신의 절망적 존재조건을 잊을 수 있는 광신자들은 자기희생과 단결이라는 지렛대를 밟고 기존 체제를 부수기 위해 돌진한다.

대중운동에서 광신자가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운동을 개척하는 것은 지식인,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굳건히 다지는 것은 행동가다.”

운동의 속성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그리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운동의 역학관계에 대한 예리한 논평이라기보다는 인간심리에 대한 촌철살인의 논평이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이다. “우리는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분투할 때보다 사치품을 구할 때 더 대담해진다.” “급진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무궁무진하게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수구주의는 인간에게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랑할 때는 보통 동맹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증오할 때는 예외 없이 동맹을 찾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쁘기만한 적보다는 장점이 많은 적을 증오하는 편이 쉽다. 경멸스러운 상대를 증오하기는 어렵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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