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소유권은 민주적 절차보다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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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배관표 옮김·후마니타스·1만2000원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배관표 옮김·후마니타스·1만2000원

한국 사회가 김대중·노무현 두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통해 획득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만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이론의 석학인 로버트 달 예일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의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이론적인 기반과 실천적인 대안을 동시에 제시하는 책이다.

이론적 논의의 토대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평등과 자유의 관계를 따지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 이론의 고전인 알렉산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기하는 물음을 검토하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토크빌은 1830년대 미국 민주주의의 현장을 둘러보고 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평등이 자유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봤다. 평등과 자유의 대립은 정치학의 고전적인 주제인데, 저자는 이 문제에 매몰되는 대신 질문 자체를 바꾼다. 위태로운 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평등이 아닐까. “왜냐하면 미국의 기반이 되었던 농업사회, 농업경제는 상업적 산업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체계로 혁명적 전환을 겪게 된 결과, 부와 소득, 지위와 권력에 있어서 불평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법인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거의 무한대로 보장하는 탓에 시민들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경제적 불평등은 다시 정치적 불평등을 낳는다. 기업의 소유와 통제를 민주적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바꿔야만 할 필요성은 여기서 생긴다. 

문제는 사람들이 흔히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지만 기업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 같은 통념적 인식을 뒤집는다. 민주주의 체제가 일반적으로 법인 기업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기는 하지만, 사적 소유권이 민주적 절차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경제질서는 정의로워야 한다. 정치질서에는 공정성을 요구하면서 경제질서에서는 불공정성을 허락하는 것은 모순이다. “국가 통치에서 자치가 당연한 권리이듯 일터에서도 자치는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정당하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경제질서가 동시에 효율적일 수도 있을까. 저자는 민주적 경제질서가 노동자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경제질서보다 효율의 측면에서도 뛰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법인 자본주의를 대체할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기업에 고용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협동조합(자치 기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듣기에만 아름다운 말이 아니다. 협동조합 원칙을 따르는 유럽 은행들은 지난 금융위기에서 상업은행보다 훨씬 적은 손실을 기록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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