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의 실체를 알려주마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책은 세 종류의 인간을 다룬다. 위대한 유명인과 위대하지 않은 유명인, 그리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인물이 그들이다.”

<만들어진 승리자들><br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br />을유문화사·2만3000원

<만들어진 승리자들>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
을유문화사·2만3000원

일간지 <디 벨트> 편집국장을 지낸 독일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유난히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그의 <만들어진 승리자들>은 서양 문화권에서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은 사람들을 600여쪽이 넘는 분량으로 집요하게 파헤치는 책이다.

슈나이더가 혐오하는 것은 천재 숭배와 지도자 숭배다. “한 번 인정된 위인에 대한 절대적 숭배만큼 위험한 것은 없고, 공적으로 신성시되는 권력에 대한 굴종만큼 큰 재앙이 없다”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은 곧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는 위대하지 않은데도 유명해진 이들의 실체를 해부하고, 유명하진 않지만 실제로는 위대했던 인물들의 명성을 복원하려 한다. 그의 무기는 박식함과 신랄함과 통찰력이다.

첫 번째 해부 대상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콜럼버스의 명성은 전적으로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라는 통념에서 나온다. 그러나 통념과 사실은 다를 수 있다. 통념과 사실이 일치하는 경우라도 더 넓은 맥락에서 살피면 의미의 결이 확 달라진다. 저자는 “그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기껏해야 세 번째였고, 어쩌면 열 번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3만년 전 시베리아의 몽골인들은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로 갔다. 바이킹족들은 986~991년 사이에 캐나다의 래브라도 반도에 상륙했다. 그들에게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콜럼버스 또한 발견자가 아니다. 그가 수백㎞의 항해를 통해 가닿으려고 했던 땅은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라 인도였기 때문이다.

세계사의 웬만한 유명인들의 명성은 저자의 의문 앞에 여지없이 난도질당한다. 레닌, 넬슨, 나폴레옹, 처칠, 괴테, 니체, 아인슈타인, 루소, 바그너, 랭보…. 

목록은 줄기차게 이어진다. 유명인들의 생애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자랑하는 저자가 풀어놓은 이 책의 풍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영웅과 천재를 객관적으로 보는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말할 수 있다.

“일단 입을 헤 하고 벌린 채 경탄만 하는 단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자격 있는 사람이 명성을 얻은 경우도 많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데도 명성을 얻은 경우는 훨씬 더 많으며, 또 재능은 있지만 나머지 요소들이 없어서 역사에 묻힌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예술가들 중에도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인들이다.” “천재는 불명확한 의미에다 화려하고 야단스럽게 포장한 말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영웅이나 천재를 만들어내고 미화하는 일을 즐긴다. 그러니 진실을 통해 허상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저자가 인용하는 말처럼 “나는 누군가 내게 괴테는 지루하고 셰익스피어는 조야하다고 말하면 기쁘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신간 탐색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