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남 고성 상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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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공룡의 꿈

“지식의 늪에 빠져서 느낌 없는 기행만을 꿈꾸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극히 제한적인 것뿐이다. 상상력은 두었다가 무엇에 쓰려는가.”

공룡박물관

공룡박물관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풀어낸 비밀 속의 우리문화>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어디를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천편일률적 답사가 아니라 ‘느낌’이 있는 기행을 원한다. 이 책의 빌미가 된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는 건 상상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의 답사는 ‘인문기행’이 된다. 잃어버린 원형을 찾아가는. 그 여정은 ‘순환의 철학’을 깨닫는 길이기도 하다. 하나의 원형이 순환을 거듭하면서 남긴 궤적을 살펴가는. 그 여로는 때로 멀고먼 떠남을 부추기기도 한다. 저자는 때로 서해바다의 당숲을 헤매기도 하고, 늪과 연못을 건너 오랜 무덤이나 절터를 서성이기도 하고, 때로 머나먼 시베리아 벌판을 떠돌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히 거리의 문제는 아니다.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어쩜 멀리 갈 필요도 없다. 1억 4000만 년이나 지구를 지배한 공룡 발자국을 따라가면 된다. 공룡시대가 지구의 전성기인 여름이라면 우리 인간의 역사는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6억 7000만 년 만의 미륵 하생이 결코 무모한 시간이 아님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삼천포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고성 땅이다. 거기 공룡의 세상과 미륵의 세계가 펼쳐진다. 도대체 1억 4000만 년의 세월은 무엇이고 56억 7000만 년의 세월은 또 무엇이며, 공룡은 무엇이고 미륵은 또 무엇인가. 상상으로도 버거운 그 억겁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 헤매는가. 고작해야 일주일, 한 달, 몇 년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으로서는 1억 40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 앞에서 심한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그 숫자를 제대로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56억 7000만 년의 기다림을 약속한 미륵에게나 의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 그 너럭바위에서 공룡의 발자국은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아니 바다에서 걸어 나온다. 그는 1억 4000만 년의 세월을 건너온 발자국이다. 1982년 1월, 겨울방학을 이용해 학생들과 남해안 일대 지질조사에 나섰던 경북대 양승영 교수의 눈에 그 거대한 발자국이 들어온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그저 파인 자국 정도로 여겨졌던 그 흔적들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공룡의 집단 서식을 증명하는 족흔화석지임이 밝혀졌다. 그것은 한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쥬라기공원’과는 비견할 수 없는 생생한 ‘백악기공원’의 개장이었다.

상족암의 공룡 발자국

상족암의 공룡 발자국

태고 때 이 일대는 일본 열도와 연결되는 거대한 호숫가였다. 그 호숫가를 따라 한 무리의 공룡들이 거닌다. 호수는 어찌나 잔잔한지 물가 진흙에 찍힌 공룡의 발자국은 씻겨나가지 않은 채 그 위로 세월이 쌓이면서 바위를 이룬다.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공룡은 멸절하고 호수는 바다가 되었지만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저자는 공룡 발자국을 따라가며 ‘호모 사피엔스’는 누구인가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지구를 온통 늪으로 몰아넣은 5대 멸종, 그 뒤로 숱한 생물체가 사라지고 무수한 생물군이 새로 생겨났다. 그런 가운데 살아남은 인간은 억세게 운 좋은 생물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학자들은 지금 인간의 탐욕스러운 행동들이 다시 한번 대멸절, 즉 ‘제6의 멸종’을 부르고 있다고 거듭 경고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창조 과정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멸종 사이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 즉 지극히 많은 종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상족암은 공룡의 존재로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준다. 변산의 채석강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층층단애의 절경은 그 나래에 얹혀진 덤이다. 해안 언저리에 공룡박물관이 들어서고 해마다 여름이면 공룡축제가 벌어진다지만 그는 그저 ‘공룡 발자국에 고인 물에 노는 수준’일 뿐이다. <산해경(山海經)>을 주석한 중국 동진의 문인 곽박의 말마따나 ‘소 발자국에 괸 물에 노는 수준으로는 붉은 용이 하늘까지 치솟는 경지를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차라리 상족암에 밀물이 들어오면 새삼 눈앞에 떠오르는 사량도의 잔영이 가깝고도 아득하다. 그 빛과 그늘에서 한여름 밤 공룡의 꿈은 익어간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생명은 그 여러 가지 능력과 함께 처음에는 소수의 형태, 도는 단 하나의 형태로 불어넣어졌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행성이 불변의 중력법칙에 따라 회전하는 동안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아름답고 경탄스러운 무한한 형태로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은 장엄 그 자체다.

상족암에서 바라보이는 섬 사량도

상족암에서 바라보이는 섬 사량도

‘공룡과의 대화’에서 빠져나온 발걸음은 그 아득함을 보상받으려고나 하듯 ‘미륵에의 서원’을 찾아든다. 사천군 곤양면 흥사리. 옛날에 파도가 들이쳤음직한 곳에 미륵을 서원하던 매향비가 서 있다. 이 매향비는 고려 우왕 13년, 홍무 20년(1387) 8월 한여름에 세워졌다. 검은빛 도는 장방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으로 204자의 비문을 새겼는데, 비제(碑題)는 ‘천인결계매향원왕문(千人結契埋香願王文)이다. 무려 4100명이 결계하여 서원하고 있으니 또 다른 장엄을 이룬다.

행(行)과 원(願)이 반드시 서로 도와야 비로소 무상묘과(无上妙果)를 구하게 되니, 행이 있으되 원이 없으면 그 행은 필시 외롭게 된다. 원이 있으되 행이 없으면 그 원은 반드시 허망한 것이라. (…) 그리하여 소승이 향도 천인과 더불어 대원을 발하여 침향(沈香)을 땅에 묻어 미륵보살이 하생하여 용화삼회(龍華三會)하기를 기다려서 그 증명을 보러 향을 봉헌 공양하고 미륵여래가 오실 것을 염원한다.

사천 매향비

사천 매향비

흥사리 지척에는 다솔사가 있다. 신라 지증왕 4년(503) 연기 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지만 지금은 퇴락한 기미가 역력하다. 대양루와 보안암 석굴, 응진전의 미려한 와불 정도가 그나마 참배객들의 눈길을 끈다. 외려 다솔사가 널리 알려진 것은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과 <황토기> 때문이다. 두 작품이 모두 작가가 다솔사에 체류하는 동안 쓰여졌다. <등신불>은 비록 중국이 무대지만 창작 현장에서 읽는 맛은 그만큼 각별하며, <황토기>는 작가가 다솔사의 한 스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 한다.

내가 다솔사에서 묵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만허선사는 문득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옛날 어느 산골짜기에 늙은 두 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둘 다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는 일 없이 서로 싸우기를 잘했다. 왜 싸우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까닭모를 싸움질을 하다가 그대로 늙어 죽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두 장사의 억울한 인생, 불운한 운명, 절망적인 고독 때문이었다.

글·사진 | 유성문<여행작가> meonb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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