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광릉 숲과 가평 산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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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답사기로 떠나는 답사여행](2) 광릉 숲과 가평 산골마을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로 하는 여행이 아니다. 이미 사람의 몸에 체화되어버린 자전거가 쓰는 여행기다. 그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風輪)’이다. 아니 풍륜이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저자를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자전거는 그 해 여름을 끝으로 퇴역했다. 새로 장만한 자전거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여전히 풍륜일 것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으로 떠돌 것이므로. 사람은 밟고 자전거는 저어간다. 자전거가 달릴 때 바퀴는 굴러도 그 중심축은 오히려 고요하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은 관람(觀覽)이 아니라 관조(觀照)다. 세상을 들여다보고 드러낸다.

2000년 발간된 <자전거 여행> 첫 권은 여수 돌산도 향일암에서 시작하여 한강 하류인 조강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당연히 2004년에 발간된 둘째 권의 출발은 조강이 된다. 첫 권의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진도대교)’ 등이 소설 <칼의 노래>(2001)의 취재기를 갈음한다면, 둘째 권의 ‘살 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남한산성 기행)’ 등은 소설 <남한산성>(2007)의 전조를 내비친다. 첫 권이 보다 넓다면 둘째 권은 보다 깊다. 바퀴에 공기를 가득 넣고 다시 길로 나선 자전거는 조강과 김포평야, 중부전선, 남양만 갯벌과 광릉 숲, 남한산성과 고달사 옛터, 양수리, 수원 화성 등에서 길을 밀고 다닌다.

팽팽한 바퀴는 길을 깊이 밀어낸다. 바퀴가 길을 밀면 길이 바퀴를 밀고, 바퀴를 미는 길의 힘이 허벅지에 감긴다. 몸속의 길과 세상의 길이 이어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길은 멀거나 가깝지 않았고 다만 뻗어 있었는데, 기진한 몸속의 오지에서 새 힘은 돋았다.

저 푸르고 우뚝한 것들은

김훈 <자전거 여행·2>

김훈 <자전거 여행·2>

광릉 숲에서 자전거는 잠시 숨을 고른다. 숲은 숨이 되고 숨은 숲이 된다. 깊은 숲 속에서는 숨 또한 깊어져 들숨은 몸속의 먼 오지까지 스며들고 날숨은 숲으로 퍼져 나무의 숨과 겹쳐진다. 숲에서 사람과 자전거는 나무의 처지에 잠시 부러움이 인다. 숲 속의 모든 나무는 먹이 없이 스스로 살아가는 독립 기관이다. 나무는 물이거나 빛이거나 생명이 아닌 것을 생명으로 바꾸는 전환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완성한다. 나무는 몸을 움직이거나 힘을 쓰지 않고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나마 외부의 에너지로 움직이는 자전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순전히 제 몸을 움직여야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처지로선 나무야말로 경외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밥벌이에 지친 날에는 숲 속의 나무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먹이를 몸 밖에 구하지 않고, 몸 밖의 먹이를 입으로 씹어서 몸 안으로 밀어 넣지 않고, 제 몸속에서 햇빛과 물과 공기를 비벼서 스스로를 부양하는 저 푸르고 우뚝한 것들은 얼마나 복 받은 존재들인가.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광릉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와 왕비 윤씨의 능이다.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타고난 무골로 왕자 시절부터 사냥과 관병(觀兵)을 즐겼다. 지금의 광릉 숲을 이루는 주엽산, 소리봉, 축석령 일대는 세조가 자주 찾던 사냥터였다. 사냥꾼은 죽어서 자신의 사냥터에 묻혔고, 이후 이 일대 산야는 경작과 매장은 물론 풀 한 포기 뽑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덕분에 숲은 온전히 보존되었고 수종이 다양하고 건강한 산림을 이루었다. 소리봉 쪽은 서어나무, 졸참나무가 대종을 이루는 천연 활엽수림이고, 주엽산 쪽 정상은 소나무, 서어나무가 대종을 이루면서 남동쪽 능선을 따라 느티나무들이 나타난다. 광릉 능원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들어섰고 이 숲에 크낙새가 산다.

“숲 속에서는 숲이 숨이고 숨이 숲인데, 숲은 숨에 실려 몸에 스민다.”

“숲 속에서는 숲이 숨이고 숨이 숲인데, 숲은 숨에 실려 몸에 스민다.”

광릉 숲에는 주봉인 소리봉을 중심으로 서어나무 군락이 번창하고 있다. 식물학자들은 이런 숲을 ‘극상림’이라 부른다. 안정된 숲은 나무들의 세력이 조화에 도달해서 먹이 피라미드가 정돈되고 모든 나무와 풀과 새와 벌레들이 위계 속에서 질서를 갖는다. 세조의 무단정치는 잔혹한 피바람을 몰고 왔지만, 왕도의 꿈은 그의 사냥터였던 광릉 숲에서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다. 광릉의 극상림은 지금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광릉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에서 저자는 수백 년 된 고목의 나이테에 주목한다. 나무의 나이테 동심원에는 그 나무의 과거가 온전히 드러난다. 그 동심원 안쪽은 고요하고 단단해 보인다. 관조자는 나무의 나이테에서 세대의 의미를 읽는다. 나무는 개체 안에 세대를 축적한다. 지나간 세대는 동심원의 안쪽에 모이고 젊은 세대가 몸의 바깥쪽을 둘러싼다. 그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무위의 중심이 곧게 서지 못하면 나무는 쓰러지고 바깥쪽의 젊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는 자전거 또한 다르지 않다.

“노랑어리연꽃이 피면 여름 연못은 어지러운 절정이다.”

“노랑어리연꽃이 피면 여름 연못은 어지러운 절정이다.”

나무들 사이를 자전거로 달릴 때, 바퀴는 굴러도 바퀴의 중심축의 한 극점은 항상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 극점이 움직인다면 자전거 바퀴의 회전운동은 불가능할 것이다. 적막한 중심은 나이테 동심원 속에 있고 자전거 바퀴 속에도 있다. 그 중심이 자전거를 나아가게 해준다. 숲 속으로 자전거를 저어갈 때 나무와 자전거는 다르지 않다. 나무는 늘 인간의 마을에서 자란다.

연못은 또 어떤가. 광릉 숲 속 연못에는 수련이 피어 있다. 수련이 피면 여름의 연못은 살아 있는 동안의 시간 속에서 가득차고 고요한 순간을 완성한다. 수련은 절정의 순간에서 오히려 고요하다. 여름 연못에서 수련이 피어나는 사태는 ‘이 어인 일인가’라는 막막한 질문을 반복하게 한다. 나의 태어남은 어인 일이고, 수련의 피어남은 어인 일이며, 살아서 눈을 뜨고 수련을 들여다보는 일은 대체 어인 일인가. 수련은 물 위에 떠서 피지만 한자로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들 ‘수(睡)’를 골라서 ‘수련(睡蓮)’이라고 쓴다. 아마도 햇살이 물 위에 퍼져서 꽃잎이 벌어지기 전인 아침나절에 지어진 이름인 듯싶지만, 어차피 꽃잎이 빛을 향해 활짝 벌어지는 대낮에도 물과 빛 사이에서 피는 그 꽃의 중심부는 늘 고요해서 수련의 잠과 깸은 굳이 구분되는 것도 아니리라.

여름 산은 물소리로 흘러내린다

“조종암은 우암 송시열의 존명주의를 몇 구절의 문자로 표상하는 바위다.”

“조종암은 우암 송시열의 존명주의를 몇 구절의 문자로 표상하는 바위다.”

이제 자전거는 가평의 산골마을을 밟아 나간다. 장마가 갠 가평의 산들은 푸르고 비린 여름의 힘으로 눈부시다. 여름 산의 힘은 젖어 있고, 젖은 산의 빛이 천지간에 가득하다. 가까운 산이 먼 산의 앞자락을 가리고, 먼 산은 더 먼 하늘 쪽으로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달려 나가 산의 출렁임은 끝이 없는데 골짜기는 들판으로 치달아 내리면서 넓어지고, 골마다 물이 넘쳐 가평의 여름 산은 물소리로 흘러내린다. 양평에서 가평군 설악면으로 넘어가는 37번 지방도로는 여름의 축복으로 가득하다. 길은 중미산, 유명산 두 산의 언저리를 이리저리 비껴가는데 농다치고개로 중미산을 지나고 선어치고개로 유명산의 낮은 자락을 넘는다.

청평천으로도 불리는 조종천은 가평군의 북쪽 지역인 하면 상판리에서 하판리를 지나 북한강에 닿는다. ‘조종(朝宗)’은 삶의 정통성 앞에서 반듯하게 무릎 꿇는 인간의 경건성에 바쳐진 문자다. 이 물이 휘도는 강변 언덕에 솟은 바위가 조종암이다. 조종암은 우암 송시열의 존명주의(尊明主義)를 표상하는 바위로 우암은 청나라에 굴복했던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의 치욕을 역사의 일부로 수용하거나 굴복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을 비롯해 선조, 효종 등의 글씨를 얻어 바위에 새기게 하였다. 그 위에 세운 비석의 비문은 자못 비장하지만 그러나 그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의 무심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아, 슬프다. 명나라 사직이 폐허가 되고 중국이 피비린내 나는 땅이 되어 우리가 사모할 곳이 없더니 이제 여기에서 얻었구나.

글·사진 | 유성문<여행작가> meonb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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