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서는 어떻게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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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선 모든 것을 납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리는 줄이고, 몸은 웅크리고, 짐은 버려야 한다. 물리적인 점유 공간을 압축하고 발생 가능한 소음을 줄이는 건 전국 6126개(2009년 1월 기준) 고시원을 지배하는 무언의 규율이다.

<자기만의 방><br>정민우 지음·이매진·1만7000원

<자기만의 방>
정민우 지음·이매진·1만7000원

고시원은 시간이 멈춘 방이다. 한정된 공간을 잘게 쪼개 최대한 많은 수의 방을 확보해야 하는 고시원의 특성 탓에 창문이 있는 방이 드물다. 채광이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낮과 밤은 구분되지 않는다. 고시원에는 사람은 있지만 관계는 없다. 고시원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익명으로 존재한다.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이 고시원의 불문율이다. 항의조차도 말이 아니라 글로 한다. ‘빨래가 다 말랐으면 지체 없이 수거해주세요’ ‘문 좀 닫고 다닙시다’ 같은 메모지들이 고시원 구석구석에 붙어 있다.

<자기만의 방>은 청년 세대의 고시원 주거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집이란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저자는 실제 고시원에서 한 달을 살며 고시원의 생리를 익히고, 고시원에 살고 있거나 산 적이 있는 20대 청년 22명을 인터뷰했다.

청년 세대가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개별적인 사연은 다양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대체적인 공통점이 있다. “첫째, 고시원은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이주해온 젊은이들이 주로 진입하게 되는 공간”이며 둘째, 이들은 “청년 세대가 놓인 전반적인 경제적 조건과 생애 단계의 결합 속에서 개별 청년층이 실제로 지불 가능한 주거 선택지는 매우 한정되기에, 보증금이 없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시원으로 수렴”된다.

고시원은 집이면서 집이 아닌 모호한 경계 지대다. 잠자는 공간이란 점에서는 분명 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집’이라는 공간에 통념적으로 결부되는 관계나 기억의 역사가 부재하는 공간이다. 고시원은 누군가를 초대하기에 부끄러운 불안정한 공간이자 입주할 때부터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을 전제하는 부정적 공간이다. “고시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가 연장되면 미래의 하루를 내놓아야 하는 절망의 시간이자, 사회적으로 집이라고 인정받는 공간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악몽의 공간”이다.

고시원을 통해 드러나는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란 결국 가족의 소득수준에 따라 청년의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구조의 문제다. 생애 과정의 기준으로 보면 청년은 취업과 결혼을 통해 성인으로 독립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그러나 취업과 결혼이 지연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청년들이 독립할 수 있는 길은 고시원, 옥탑방, 반지하 등으로 대표되는 불안정 주거로 귀결된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청년들은 독립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요건을 마련할 때까지 부모의 지원을 받는 ‘캥거루족’이 된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을 “청년기는 가족 전체가 관리하고 기획하는 시기가 됐으며, 개인의 생애 과정을 구성하는 데 점차 계급화된 가족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기만의 방>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지난한 사업이라는 사실에 대한 학문적 주석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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