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쥐 그림 재판, 대한민국 ‘국격’ 만방에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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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돋네.” G20 행사의 여파로 벌어진 사건에 대한 한 누리꾼의 반응이다. G20 행사가 열린 건 벌써 지난해의 일이다. 거리의 G20 안내 광고에 쥐 그림을 그렸던 박정수씨(39)를 기억하시는지. 박씨의 재판은 현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일련의 재판과정에 대해서는 박씨 부인인 영화평론가 황진미씨가 세세하게 기록을 남겨뒀다.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 헌정 웹 사이트에서 ‘한국의 쥐에 자유를!’이라는 주제로 소개된 박정수씨의 재판 사연.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 헌정 웹 사이트에서 ‘한국의 쥐에 자유를!’이라는 주제로 소개된 박정수씨의 재판 사연.

“국격 돋는 사건”이라고 누리꾼들이 이야기하는 건 다른 건이다. 바로 쥐 그림 낙서의 원조,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팬들이 만든 헌정 사이트에서 ‘한국 쥐 구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홈페이지 운영자가 전한 운동의 배경은 이렇다. “우리는 위 사진-박씨가 G20 ‘청사초롱’ 정부광고 위에다 쥐가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 것으로 덧그린 사진-과 관련한 이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한국에서 우리 사이트를 접속한 사람이다.” 사이트 운영자는 ‘한국으로부터 온 메일’ 전문도 게재해놓고 있다. 런던대학 문화인류학과에서 시각문화를 전공하는 J.R.이라고 밝힌 이 누리꾼은 박씨의 구속과 재판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사건과 관련해 청원할 대상을 찾다가 당신들의 사이트를 찾게 되었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뱅크시 팬들의 반응은 침착했다. 먼저 이 누리꾼이 보낸 청원의 내용이 사실인지, 한국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 등을 통해 확인했다. 코리아타임즈와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관련 기사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에 대한 우리들의 대답은 간단하다”며 “낙서는 간단한 예술형식(art form)이며, 기껏해야 즉결심판이나 민사상으로 재산손괴에 해당하는 벌이지 (한국검찰의 구형처럼) 10개월 동안 감옥에 가야 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뱅크시의 작업물 등을 인터넷으로 출판해온 ‘맥기네스출판사’는 언론에 박씨 석방을 위한 온라인 시위에 나선다는 성명을 배포했다. 이들은 “최근에야 박정수씨가 지난해 G20 포스터에 쥐 낙서를 했다고 체포되었고 감옥에 갇힐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한국의 법무부 장관에게 ‘한국의 쥐들에게 자유를!’이라는 포스터와 구명의견서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뱅크시의 ‘쥐’와 뱅크시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낙서 속 ‘쥐’의 맥락이 조금 다르긴 하다. 인터넷에 올라간 뱅크시의 쥐 낙서를 보면 반전(反戰)이나 반자본주의, 혹은 반기업의 주인공으로 쥐가 등장한다. 그런데 박정수씨의 그림 속 쥐는 청사초롱을 들고 ‘G20’을 선전하는 모양새다. 이게 검찰의 착안점인 모양이다. 박정수씨의 부인 황씨가 올린 재판참관기를 보면 검찰은 “쥐 그림은 행사를 방해할 목적 또는 ‘특정인’의 명예훼손 내지는 인격모독을 ‘의도’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검찰이나 정부당국으로서 쥐 그림 낙서 재판은 외통수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간에 재판이 계속되면 될수록, G20 행사를 통해 증명하려고 했던 대한민국의 ‘국격’을 만천하에 자랑(?)하게 된다. 예술작품의 사회적 구성을 주창하는 예술비평론이 있다. 거칠게 말한다면 예술작품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소비되는 ‘과정’까지 다 포함해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훗날, 박씨의 ‘쥐 그림 퍼포먼스’ 역시 재판 ‘과정’까지 포함된 하나의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물론 퍼포먼스에 참여한 ‘누군가’는 상당히 부끄러워 할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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