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사용자만 국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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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법학부 교수는 1951년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다. 지난 1992년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출간된 이후, 그는 섬세한 문장을 구사하는 에세이스트이자 식민지배와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집요하게 성찰하는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언어의 감옥에서>는 한국에서 간행되는 그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책은 크게 모어와 모국어의 괴리를 절감하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글들과 식민지배의 문제를 다룬 글들로 나뉜다.

<언어의 감옥에서><br>서경식 지음·권혁태 옮김 돌베개·2만원

<언어의 감옥에서>
서경식 지음·권혁태 옮김 돌베개·2만원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한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인간 존재라는 집에 나 있는 창과 같다. 그러나 서경식 교수에게 언어는 감옥이다. 왜 그런가.

그는 모어와 모국어를 구분한다. 모어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에 익힘으로써 무자각인 채로 자신 속에 생겨버리는 언어”다. 모국어는 “국가가 정해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인민에게 주입하는 언어이며, 인민을 ‘국민’으로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란 서 교수의 모어는 일본어다. 그는 일본어로 사유하고 일본어로 글을 쓴다. 한국어는 학습을 통해 뒤늦게 습득한 언어일 뿐이다. 문제는 언어가 단순한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어 표현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내 골수까지 일본어가, 그리고 일본어에 바탕을 둔 일본적 정서가 침투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일본어는 식민종주국의 언어다. 식민종주국의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식민지배의 문제를 성찰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그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벽’에 갇힌 수인”이라고 표현한다.

서 교수가 비판하는 것은 모국어 사용자만을 국민의 범주에 집어넣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외국인으로 간주해 배제해버리는 일체의 국어 내셔널리즘이다. 그의 국어 내셔널리즘 비판은 재일조선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본 사회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재일조선인을 외국인 취급하는 한국 사회의 무의식까지 겨냥한다. 두 가지 태도 모두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인 까닭이다.

최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와 관련해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책의 3부와 4부에 실린 글들이다. 서 교수는 일본 우익보다는 오히려 <아사히신문>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리버럴 세력을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 우익에 비해 그 위험성이 잘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리버럴은 겉으로는 노골적인 국가주의에 반대하고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 리버럴은 도의적 책임은 말하지만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반성과는 거리를 둬 왔다. 

서 교수는 “일본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오히려 원래 내재하고 있었던 자기중심주의에 몸을 맡기고 ‘국민주의’로 퇴락”했다며 “‘국가주의’와 ‘국민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우파 대 리버럴 세력의 대립관계에 있지만, 외부의 타자로부터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서로 보완하면서 바로 공범관계를 맺는다”고 비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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