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과 무상급식 정면충돌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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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성 토목예산 삭감, 보편적 복지에 담아야”

약속 시간을 한 차례 미룬 끝에 인터뷰가 이뤄졌다. 한 시간을 내달라고 했는데 30분 뒤에 다음 일정이 잡혀 있다고 했다. “시기를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은 미안하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 말은 많은데 회기 중이고, 현안이 쌓여 있고, 전국적인 관심이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집중돼 있는 시기라서 느긋하게 시간을 잡아 인터뷰할 형편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오세훈 시장과 무상급식 정면충돌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

사실은 그래서 시기를 잘 잡은 것이다. 시쳇말로 서울시의회가 ‘뜨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중앙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서울시의회가 8대 들어 자주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울시 행정부(시의회에서는 집행부라고 부른다)와 정책 현안을 놓고 정면충돌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 1일 서울시의회가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하자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시의회 출석 거부 및 시의회와의 시정협의 중단으로 맞대응했다. 서울광장 조례안과 마찬가지로 무상급식 조례안도 시의회에 재의 요구, 시의회의 재의결, 시장의 공포 거부, 의장의 직권 공포, 서울시의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 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허 의장과 인터뷰한 시점은 무상급식 조례안을 의결하기 이틀 전인 11월 29일이었다. 이날 서울시의회는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행위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앞서 11월 24일에는 국가 안보상황을 감안해 모든 의정활동을 잠정 중단했고, 27일에는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2011년도 서울시 예산안 분석 토론회를 열었다.

안보문제는 서울시의회나 서울시 살림하고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 의정활동을 중단한 것은 좀 과한 것 아닙니까.
“꼭 그렇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국민으로서, 또 시의원으로서 이런 군사적 도발행위에 대해서 강력히 규탄하고 또 다시 이런 일이 재발돼서는 안 되겠다는 뜻입니다. (결의안에) 평화로운 속에서 대화를 통해 통일의 역정을 이어가는 정책이 마련돼서 국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사태 해결을 기해달라는 메시지를 함께 담았고요. 무엇보다 유가족에게 다시 한 번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서울시의회는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75%에 육박하는 79석을 차지하고 있다. 27석에 머문 한나라당을 압도하는 거야소여(巨野小與) 구조다.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의회의 단독 소집은 물론 의안 통과도 가능하다.

오세훈 시장이 시의회의 여소야대 상황 때문에 매우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만났을 때 시의회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더군요.
“20년 만에 여소야대 구도가 그려지다 보니까 지난 4년간 시장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 시절부터 관행적으로 해오던 대로 되지 않은 거죠. 그동안 (시의회와) 어려움이 없었죠. 이것 좀 통과시켜줘 하면 통과시켜주니까 편안했죠. 여기에 젖어서 사무처장 문제부터 시작해서….”

서울시와 시의회의 ‘불통’은 8대 시의회의 임기 첫 날부터 시작됐다. 지난 7월 1일 오 시장이 7대 시의회 의장의 추천을 받아 시의회 사무처장을 임명하면서다.

“그건 실수할 일도 아니에요.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그런 기본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관행에 젖어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생각지 않고 힘들다거나 발목 잡는다는 식으로 비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시의회 사무처장 인사는 오 시장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재임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 뒤 시와 시의회는 소통하는 노력을 보이는 듯했으나 조직개편안이 담긴 행정기구 설치조례라든가 집회·시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서울광장 조례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시와 시의회가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습입니다. 시의회 입장에서 볼 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울광장 문제는 잘 아실 테고… 시의회에서 재정 TF를 구성해서 예산을 보니까 금고가 텅텅 비어 있고 빚만 쌓여 있는, 이런 행태가 그동안 서울시가 해온 정책이었어요. 그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방만한 예산 투입이죠. 토건사업에 예산이 마음대로 쓰인 겁니다. 시민과 토론회 한번,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해나간 거지요. 서울 시민과의 소통이 너무 막혀 있는 상태에서의 정책이 펼쳐진 것이라고 보고 이걸 바로잡기 위해서 저희 8대 의회는 시작하자마자 현장 중심으로 뛰었습니다. 그 토대를 가지고 현재 정례회를 준비하고 이어서 예산안까지 처리할 것입니다.”

그저께(11월 27일) 시민단체와 서울시 예산을 분석하는 토론회를 가졌는데 참석자로부터 내용이 좋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오세훈 시장과 무상급식 정면충돌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

“그동안 시민의 뜻을 반영해서 정책을 펼쳐나가는 부분이 막혀 있었던 거죠. 저희는 통로를 열어놓고 다양한 분야에 시민이 참여해서 정책도 만들어가고 예산 분야까지도 함께 분석·토론하는, 그야말로 시민과 함께 하는, 시민 속에서 만들어가는 정책을 담아낼 것입니다. 그것이 저는 시의회와 또 서울시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시민 없는 서울시가 있습니까. 또 시민 없는 서울시의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든 서울시의회든 서울시민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만 강조점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오 시장은 서울시의 국제 경쟁력을 강조하고, 허 의장은 삶의 질이라든가 행복지수를 앞세우는 모습이다.

오 시장과 자주 만나지 않습니까.
“자주 만납니다. 자주 만나고, 많은 얘기를 나누지요.”

서로 대화가 안 통하던가요.
“수도 서울을 세계 속의 도시, 소위 글로벌 톱10에서 톱5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 물론 필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민과 함께 가는 톱10, 톱5가 돼야지 시민은 동떨어진, 보여주기 위한 톱10, 톱5는 곤란하죠. 저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서 봤을 때 올바른 정책 방향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시민이 희망 있고, 꿈이 있고, 부푼 마음이 있을 때 톱5가 되든 톱1이 되든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이른 시간 내에 시민의 동의와 협력에 의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성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울시와 크게 부딪친 게 서울광장 조례잖아요. 시와 의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 꼴이 됐는데….
“아마 시장이 고민이 많을 겁니다. 정치적인 무게를 많이 안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잘 아시겠지만 판례로 보나 광장의 원래 기능, 서울시민의 여론, 역사적 상징성 등 어느 측면에서 보든 시민에게 되돌려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집회·시위 문제 때문에 우려하는데, 그건 걱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희도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만 서울시가 제소를 취하해야 하고, 취하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까 8대 국회가 구성되고 보니까 서울시 금고가 텅텅 비었다고 했는데, 지금 서울시 부채 규모가 어느 정도입니까.
“25조750억원 정도 됩니다. 서울시 내년도 예산안(20조7107억원)을 뛰어넘는 규모입니다.”

오 시장 시절에 많이 늘어난 겁니까.
“그렇습니다. 오 시장 시절 4년 만에 10조원 이상이 늘어났습니다. 원인을 살펴보면 무리한 토목·건설행정, 그리고 보여주기식 전시행정 때문이죠. 1회성 낭비행정도 꽤 많습니다. 잘못하면 8대 의회는 빚잔치하게 생겼습니다. 재정문제로 꼭 나가야 할 예산마저도 삭감하거나 연기해야 할 소지를 많이 안고 있습니다. 자치구도 당연히 비어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조기집행을 강요받다 보니 선거 치르고 나서 딱 들어가 보니까 엉망이 돼 있습니다. 순수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 확보까지도 미력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고민이 큽니다.”

시의회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까.
“정책 전문가의 자문과 시민 여론 청취, 의원들의 연구 등 다각도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전시성·홍보성 사업,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사업, 완급 조절이 필요한 사업, 불요불급한 사업, 이런 걸 철저히 분류해서 효율적인 예산 편성과 집행이 될 수 있도록 건전재정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 시장이 추진하는 여러 사업 중에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사업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서해뱃길, 노들섬, 한강르네상스, 디자인서울, 가든파이브 등과 같은 토목사업이 문제점이 많죠. 그 외에 각 분야별로 상임위원회에서 찾아내겠습니다만 전시성 토목사업은 완급 조절 또는 예산을 삭감해서 보편적 복지에 담아야 합니다.”

복지 부문은 서울시와 시의회가 첨예하게 대립한 서울광장 조례 못지않게 큰 정치적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정책과 관련해서는 오 시장도 재임 기간에 가장 주력할 분야의 하나로 교육·보육복지를 꼽고 있다. 교육복지에서 서울시는 오 시장의 공약사업인 사교육·학교폭력·학습준비물 없는 ‘3무학교’에, 시의회는 민주당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선거공약인 ‘친환경 무상급식’에 각각 정책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지난 12월 1일 무상급식 조례안을 두고 서울시의회가 격렬한 몸싸움을 연출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문제에 관한 한 양쪽은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상급식은 허 의장이 말하는 ‘보편적 복지’와 맥이 닿는다. 오 시장은 시의회가 강행처리한 무상급식 조례안이 ‘부자급식’이자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말하자면 ‘선별적 복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허 의장 측은 “오 시장의 3무학교 가운데 무상 학습준비물 부분은 무상급식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복지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교육복지를 정치적 입장에서, 보편적 복지를 당리당략적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잘했거나 잘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아… (잠시 말을 멈춘 뒤) 오 시장께서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4년 동안 한 게 왜 없겠습니까. 우선 서울의 공기가 좀 맑아졌습니다. 그리고 공원녹지 사업, 예를 들어 서서울호수공원이라든지 북서울 꿈의숲 조성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노력한 점이 있습니다. 동네 뒷동산 공원화 사업, 경의선과 경춘선 폐선 부지 공원화 사업도 그렇고요. 특별한 것은 여성정책 사업인데요, 여행프로젝트라는 사업을 해서 많이 활성화된 것 같고… 그 다음에 물 재생센터 고도처리 및 시설 현대화 사업, 이런 것도 잘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허 의장은 서울시민이 느끼고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업에는 시의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삶과 직결되고 시민의 행복지수와 직결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거지요.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서울을 세계 속의 5위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이 아파하고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에, 즉 먼저 사람 중심의 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게 이번 8대 시의회와 의장의 뜻입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국회가 제 기능을 한다고 보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지방의회는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 8대 서울시의회가 제 위상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이번 기회를 지방의 새로운 원년, 지방의회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여소야대가 새로 이루어진 게 20년 만이잖아요. 아직까지 지방정부가 고유권한보다 중앙정부에 예속돼 있는 부분이 더 많다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더더구나 지방의회는 고유사무가 30%에 불과합니다. 의장이 인사권도 없습니다. 입법 보좌 기능도 없습니다. 지방자치제도는 만들어놓고 중앙에 예속된 법과 틀 속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방의회의 기본적인 권한이 마련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저나 시·도협의회 각 의장단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법을 제정해서 제대로 된 지방의회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그런 부분을 국회에 촉구하고 싶습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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