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사회 양극화 ‘현실’ 착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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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역사의 현장’을 마치며 김호기·박태균 교수 좌담

돌아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4월혁명, 광주민주화항쟁, 한국전쟁, 한일강제병합, 전태일 분신. 각기 그 자체만으로도 수십, 수백권의 책들을 쏟아낼 수 있는 주제들을, 과거를 조망하는 망원경과 현재를 톺아보는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10개월 동안 단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이어진 숨가쁜 여정이었다. 연재를 하는 동안 김호기·박태균 교수는 우리 근현대사 100년을 상대로 무수한 질문을 던졌다.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 사회 민족·평화·민주·노동의 미래를 모색했다. 지난 11월 2일, 두 사람은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좌담을 했다. 연재는 여기서 끝나지만, 두 사람이 쏘아보낸 질문의 화살은 아직 그 과녁에 도달하지 않았다. 해답은 어느 한 시점에서 완성되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찾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연중기획에 참여한 필자들과 취재진. (왼쪽부터) 윤호우 편집장, 박태균 교수, 김호기 교수, 김석구 기자, 정원식 기자

연중기획에 참여한 필자들과 취재진. (왼쪽부터) 윤호우 편집장, 박태균 교수, 김호기 교수, 김석구 기자, 정원식 기자

사회 _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사회학자와 역사학자가 같은 주제에 대해 번갈아 글을 쓰는 이례적인 방식의 기획이었습니다. 역사학자가 본 사회학자의 글, 사회학자가 본 역사학자의 글은 어땠습니까.

김호기 _ 사회학은 ‘지금 여기’의 현상을 다루는 반면, 역사학은 ‘지금 여기’의 현상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과거’의 사실에 집중합니다. 사회학은 역사적 시각을 동반해야 오늘의 현상을 보는 시선의 깊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박 교수님이 쓰신 글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은 물론, 그것들을 바라보는 역사학자 특유의 시각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미완의 과제가 근대를 이루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박 교수님이 쓰신 글들 중에서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이 개화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친일의 논리와 식민지 근대화론의 양면성을 들여다본 글(890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태균 _ 사회학자의 글은 논리적이고 건조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김 교수님 글은 문학적인 감수성이 듬뿍 배어 있어 좋았습니다. 제 글은 역사적 사실을 위주로 쓰다보니 딱딱한 느낌을 주는데, 김 교수님은 문학적인 필치를 구사해 독자들에게 머리만이 아닌 가슴으로도 다가가신 것 같습니다.

사회 _ 올해 가장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와 관련하여 가장 논쟁적인 사안 중 하나인데, 박 교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좀더 말씀해주시죠.

박태균 _ 19세기 이후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담론이 있다면 그것은 개화, 근대화, 산업화, 세계화로 이어지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과연 그 내용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우리 사회를 계속해서 규정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2005년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이었다”고 한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의 발언입니다. 당시 한 교수가 소속돼 있던 우익단체가 이 사태 이후 한 교수를 제명시키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그 발언이 우리나라 보수우익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후쿠자와 유키치에 관한 글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실체를 이해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쓴 겁니다.

지난 8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은 김호기 교수.

지난 8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은 김호기 교수.

김호기 _ 저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도전은 개방이었다고 봅니다. 개화, 식민지 시기 근대화, 박정희 시기의 산업화, 최근의 세계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주요 흐름은 모두 개방과 관련돼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방이었나 하는 점입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도 어떻게 개방할 것인가의 문제죠. 야당은 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배제하자는 입장입니다. 개방을 거부하자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개방을 하자는 겁니다. 다수 국민을 위한 개방, 국민의 복지와 양립하는 개방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실증을 앞세워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100퍼센트 실증만으로 이루어지는 사회과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민지 시기에 근대화의 성과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근대화였는지 질문하는 것이 진지한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태도일 것입니다.

사회 _ 4·19혁명 50주년, 광주민주화항쟁 30주년, 한국전쟁 60주년, 전태일 분신 40주년 등의 사건들이 지니고 있는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박태균 _ 연중기획에서 다룬 사건들 치고 오늘의 우리 사회 문제들과 이어져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안함 사건을 볼까요? 사건 자체가 정전체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정전체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바로 60년 전 한국전쟁의 산물이죠. 하지만 천안함 사고가 군사정전위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정전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1970년대로 오면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1970)와 청년 전태일의 분신(1970)이 있습니다. 산업화 시기에 발생한 속도전식 개발과 노동착취의 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난 사건들입니다. 둘 모두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들이죠. 4대강 사업은 막무가내 개발주의라는 점에서 와우 아파트 붕괴 사고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한편,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것이 벌써 40년 전 일이지만, 최근에도 구미 KEC 노동자가 분신하는 사건이 있었죠.

[2010 연중기획]“민주주의 위기·사회 양극화 ‘현실’ 착잡”

김호기 _ 같은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00년이 우리에게 제기한 도전들을 일단락짓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러질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제병합과 60년 전 한국전쟁은 동북아의 평화라는 도전을 제기한 사건이죠.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남북관계는 위기상황입니다. 4월혁명과 광주항쟁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였는데,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의 분신은 중산층 서민의 사회경제적 삶의 질에 관계된 문제인데, 정작 우리가 목도하는 건 심각한 수위의 사회적 양극화입니다. 연재를 끝낸 지금, 우리의 심경은 착잡합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평화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사회적 양극화이기 때문입니다.

박태균 _ 연재를 하는 동안 몇 가지 희망적인 소식도 있었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됐고, 그보다 얼마 전에는 KTX 승무원 문제도 해결이 됐죠. 오래 미뤄졌던 이산가족 상봉도 이뤄졌습니다. 이런 일들에서 희망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 _ 지금 동북아 정세를 보면 100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때가 떠오릅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입니까.

박태균 _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100년 전이나 6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과거처럼 깡패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진 않습니다. 그 정도의 근대적 합리적 이성은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고 과거의 사고방식이 현재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까지 연속돼 있는 것은 무엇이고 바뀐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위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할 겁니다. 김 교수님께서 연재를 시작하면서 쓰신 글에 이런 문제의식이 잘 집약돼 있습니다.

김호기 _ 역사에는 반복과 비약이 공존합니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죠. 지난 여름 상하이에서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첫째는 세계가 팍스아메리카나시대에서 G2(미국과 중국)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우리에게 드넓은 상품시장을 제공함으로써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이 앞으로는 위협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발전 전략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은 일본과 미국이라는 해양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앞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대륙세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라는 양날개를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정파적 이념의 차이를 떠나 어떻게 균형잡힌 대외정책을 추구할 것인가가 지금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지난 7월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박태균 교수.

지난 7월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박태균 교수.

사회 _ 연재하는 동안 여러 곳을 답사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어딥니까.

박태균 _ 저는 상하이 푸단대학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상하이는 100년 전 중국 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오랫동안 침체해 있다가 중국식 개혁·개방과 함께 다시 중심도시가 됐죠. 푸단대학교는 그러한 상하이의 학문적 중심인데, 이 대학 정문 앞에 서면 곧바로 그 안에 있는 마오쩌둥 동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의 중국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중국과 관련해서는 지금 중국 위협론이 정부와 언론에서 과도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호기 _ 저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박태균 교수님과 제가 지난 봄 망월동 묘지를 찾았을 때 그곳을 단체로 방문했던 초등학생들입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따라 묘지를 향해 올라가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단체방문객들이 있을 때 이 노래를 틀어준다고 하더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상하이에서 만난 박수호씨입니다. 상하이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2박3일 동안 운전과 통역을 맡아주셨죠. 이분이 연변 출신인데, 돈을 벌어 댜시 연변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하더군요. 지난 100년이라고 하는 것은 한반도 안에 살았던 사람들만의 100년이 아니라 만주, 일본, 미국에 있었던 한인들의 100년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의 굴곡과 비극을 함께한 재외 국민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사회 _ 앞으로의 100년을 전망하면서 지금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해 얘기해주시죠.

[2010 연중기획]“민주주의 위기·사회 양극화 ‘현실’ 착잡”

박태균 _ 앞으로의 100년은 굉장히 예측하기 힘든 100년일 것 같습니다. 저는 향후 10년이 아주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문제는 지속되고 있지만 어쨌든 조금씩 진보해왔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중요한 것은 평화와 인권의 문제라고 봅니다. 소수자의 문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소수자 권리를 확대하는 데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100년 뒤 한일강제병합 200주년 기획을 한다고 했을 때 지금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호기 _ 2030년이면 중국이 미국의 GDP를 앞서고 2050~2060년 무렵이면 미·중 패권 경쟁 구도가 아니라 인도·중국의 패권 경쟁 구도가 나타나리라고 미래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 변화는 갈수록 압축적이고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100년 후를 예측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한일강제병합을 다루면서 매천 선생과 영재 선생 이야기를 했는데, 두 분의 곧은 정신은 충분히 경외스러운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간파했느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과제라면, 사회 전 부문이 좀더 미래지향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있는 가치와 제도를 뒤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도해야 합니다. 대외적인 측면에서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만나는 중간자적 위치에서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민주주의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는 결국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에서 ‘민주화 이후’로 넘어가는 이행과 전환의 시대를 거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죠. 이 중요한 시기에 현 정부는 과거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수와 진보를 넘어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에게 근심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박태균 _ 4대강 같은 토목사업은 북한이 했어야 어울릴 사업입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상하이 중심가의 한 맥주집에 가보니 중국 젊은이들이 원더걸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더군요. 우리가 제국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은 미국이나 소련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소프트파워의 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는 인권·평화·소수자·선진국과 후진국의 동시 발전 등이 중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들이기도 합니다.

<진행·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정리·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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