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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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생생한 전달

최유정<취업준비생>

새로 나온 「Weekly경향」을 손에 넣자마자 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기사였다.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처음 몇 줄 읽다가 차분히 보기 위해 방으로 달려갔다”는 알베르 카뮈처럼, 연재글의 초입만 확인한 뒤 차분히 앉아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2010 연중기획-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이하 ‘역사의…’)는 살아있는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했다. 한일병합 100년, 한국전쟁 60년, 4월혁명 50년, 전태일 분신 40년, 광주항쟁 30년의 현장을 탐방해온 기획 연재 ‘역사의…’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이나 의미를 되짚는 것을 넘어, 실제 현장에 가서 호흡하고 사유하는 여정으로 독자를 끌어들였다.

지난해 11월, 김호기 교수(왼쪽)와 박태균 교수가 서울 청계6가 전태일 동상 앞에 서 있다. |김석구 기자

지난해 11월, 김호기 교수(왼쪽)와 박태균 교수가 서울 청계6가 전태일 동상 앞에 서 있다. |김석구 기자


특히 그 여정의 ‘생생함’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적 장소에서 관련된 음악이나 시, 소설 등을 소개하는 도입부에서는 필자가 이끄는 현장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사라지는 농촌에 대한 애잔함을 노래한 정태춘의 ‘장서방네 노을’을 소개하며 식민지 이후 근대화의 조류를 비판적으로 논하고, 김수영의 시를 통해 4·19의 감동을 전하는 필진들의 감수성은 글을 통해 역사적 시기를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그 현장을 전해주는 데엔 사진의 힘도 컸다. 기사 한 쪽에 그려진 QR코드를 스마트폰에 대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지면에 실리지 않은 더 다양한 현장의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QR코드 통한 다양한 현장사진도
그 생생함 속에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녹여내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천안함 사건 논란이 한창일 때 박태균 교수가 쓴 ‘정전협정의 한계와 새로운 협정의 필요’에 관한 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천안함 사건 조사에 대한 남북 공조가 제대로 되지 않고, 군사적 분쟁이 거듭해서 일어나는 근본적 원인을 ‘불완전한 정전협정’에서 찾은 필자는 정전협정이 어떻게 성립돼 지금까지 작동해왔는지를 꼼꼼하게 소개한다. 나아가 장기적 평화 안착을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까지 구체적으로 논하면서, 한계를 지닌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박태균, 김호기 교수 연재 글에 뒤 이은 기자들의 기사에서는 앞선 글에서 다룬 역사를 다른 방면에서 파고들거나 현재적 의미를 더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박 교수가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은 신군부를 역사적으로 조명했다면, 기자가 뒤 이은 글에서 80년대 정부 감시와 지침에 의해 유린된 언론의 문제를 조명하며 심층성을 더하는 식이다. 김 교수가 전태일과 노동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었다면, 뒤 이은 글에서는 기자가 우리 시대 전태일인 비정규직 문제, 특히 동희오토 문제를 파고들면서 현재적 의미를 더한다. 게다가 기사 뒤에는 참고자료를 써놓아 더 찾아볼 수 있도록 한 점도 좋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박태균, 김호기, 두 필자의 글을 읽고 기대하면서 뒷장으로 넘어갔는데, 앞선 글과 다른 주제의 기사이거나(887호, 897호 등), 아예 연재가 필자들의 글 하나로만 구성된 경우에는 많이 아쉬웠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들의 글과 기자들의 기사가 나란히 맞물리는 형식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매회 읽는 맛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내용 면에서도 가끔 더 날카롭게 파고들었으면 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나’(888호)에서는 식민지화의 원인을 다각도에서 조명했다는 점이 좋았으나, “앞으로 그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구해야 한다”는 결론은 구체적이지 못해 아쉬웠다. 학자로서 필자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내세웠다면 식민지화의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잘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기대하고 매주 기다려온 연중 기획이 벌써 종착역에 왔다는 게 가장 아쉽다. 그동안 한·중·일 각지를 누비며 독자를 생생한 역사 여행으로 초대한 글들을 다시 모아 돌아봐야 겠다. 앞으로도 필진 각각의 감성과 비판적 사유를 공유할 수 있는 연재를 지면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경임<41·교사·대전 거주>

역사를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올해는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일이 많은 한 해였다. 그런 가운데 「Weekly경향」의 ‘연중기획’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주고, 나에게 교과서 밖 다양한 시선과 현재사적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끊임없이 제공하였다. 다른 기사들은 출·퇴근 지하철에서 부담 없이 읽는 편이었지만 ‘연중기획’을 읽을 때만큼은 일종의 주례행사처럼 주말에 혼자 조용히 따로 시간을 내어 읽어 왔다.

지난 5월, 김호기 교수(왼쪽)와 박태균 교수가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숙연한 모습으로 둘러보고 있다. |김석구 기자

지난 5월, 김호기 교수(왼쪽)와 박태균 교수가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숙연한 모습으로 둘러보고 있다. |김석구 기자

때로는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숙제를 부여했나 싶을 정도로 ‘읽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억에 남는 기사는 두 교수가 중국에 가서 여러 독립운동 유적지를 재조명한 것이다. 교과서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소홀히 다루고 있는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직접 현장까지 방문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것은 고등학교 1학년 국사다. 고대사나 중세사를 주로 다루는데, 사실 현재사적 의미를 가지고 학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수업하기가 만만치 않다. 다행히 내년에는 3학년 한국근현대사라는 과목을 맡게 된다. 국사과목보다는 학생들에게 현재사적 의미를 전하기에 좋은 과목이긴 하나 무엇보다 발등에 떨어진 대학입시와 근현대사 교육이라는 두 과제를 고3 학생들에게 어떻게 잘 절충해서 가르칠지 고민도 많은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80년대 끝자락에 대학에 입학해 다닌 세대이다보니, 전태일이나 광주민주항쟁과 같은 주제가 낯설지 않을 뿐더러, 20대 초반에 우리 세대들을 가장 많이 깨우치게 한 주제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과는 그때 우리가 가졌던 절박함이나 시대적 엄중한 분위기까지 공유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학생들과도 이야기해보면 광주민주항쟁을 마치 내가 고등학생 때 3·1운동과 같은 일제 하 독립운동에 대해 느꼈던 느낌과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4·19나 5·18 같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조차 요즘 10대들에게는 교과서 속 박제화된 지식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Weekly경향」의 ‘연중기획’은 박제화된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기념하는 상투적인 기획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적 의미와 쟁점을 제기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과제를 읽는 이들에게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했다. 개인적으로 젊은이들이 이 기획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역사적 사실의 현재적 쟁점 제기
‘연중기획’을 꾸준히 읽어 오면서 두 교수의 시선에서 차이를 읽어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역사학 전공자로서 박태균 교수가 꾸준히 새로운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잘 소개했다면, 김호기 교수는 주제에 맞는 적절한 장소에서 ‘개인적 경험’까지 녹여가며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을 택했다. 나름대로 참신한 기획이었고, 읽는 이들에게 정서적 공감까지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접근으로 평가한다.

요즘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보고 있는 주제는 박노자 교수나 임지현 교수가 주장하는 민족과 근대에 대한 회의와 해체와 관련된 것들이다. 정규 학교 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이고 여러 모로 논란이 될 수 있기는 하나 역시 다양한 시선과 쟁점을 던져주고 있다.

같은 측면에서 「Weekly경향」에서 혹시 앞으로도 새로운 ‘연중기획’을 하게 된다면, 역사학 분야에서는 주류 역사학이나 정규 교과서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나 사건을 발굴하면서 왜 이 인물들과 사건들이 주류 역사학이나 정규 교과서에서 비켜날 수밖에 없었는가까지 짚어주었으면 좋겠다. 또 신화화된 근현대사 인물들을 재조명하여 공식적으로 박제화된 우리 사회의 집단적 주술을 풀어주는 기획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2011년에도 일요일마다 마치 주말 숙제라도 해내듯이 ‘연중기획’을 신중히 읽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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