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당당한 중심’ 꿈꾸는 이시종 충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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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태양광산업이 충북의 신성장동력”

참 인색한 사람이다. 저런 성격을 가지고 어떻게 선거를 치르고 정치를 했을까 싶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보통 사람보다도 말을 절제하고 웃음을 아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금방 대화가 끊겼다. 웃는 표정을 찍게 하려고 좀 실없는 얘기를 해봐도 희미하게 미소를 띠려다 말곤 했다. 자기 자랑을 할 줄도 모르고, 할 생각도 없는 사람, 즉 말과 웃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한 사람….

[신동호가 만난 사람]‘대한민국의 당당한 중심’ 꿈꾸는 이시종 충북지사

그런데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의 선거 전력은 경이롭다. 6번 출마해 6번 당선됐다. 무패 전승, 그것도 연승 기록이다. 확고한 지역 텃밭도 아닌, 표심이 요동친 충청권에서 말이다. 충주시장 3선, 국회의원 재선, 그리고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이룬 대역전극.

지난 10월 8일 충북지사에 취임한 지 딱 100일째 되는 날 그를 만났다. ‘이시종의 충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했다. 뭔가 특별한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도청 담장을 철거하고 도지사 공관을 개방한 것이 작은 변화라면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 동안 충청도만이 아니라 전국을 뒤숭숭하게 했던 세종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크게 보면 도정의 핵심은 예산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것일 터이다. 충북은 내년도에 도정 사상 최대 규모인 3조5140억원의 정부 예산을 확보했다. 1국 5과 10팀 49명의 정원을 감축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해 4년간 120억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얻었다. 이 지사 취임 후 100일 동안 벌어진 일이다.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도정을 하니까 어떻습니까.
“도지사는 집행에 책임을 지는 자리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요. 국회의원은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남이 결정한 것을 가지고 잘잘못을 따지는 거니까….”

어떤 일에 더 보람을 느낍니까.
“국정 전반을 다루다가 지역이란 단위로 축소가 되지만, 크고 작은 방향에 대해서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고 결과를 보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도지사 직이) 의미가 있다고 보죠.”
답변이 너무 단답식이고 건조하다. 이 지사는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4년 동안 주로 내무부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그 후 민선 충주시장 8년, 국회의원 6년을 지냈다. 경력으로 보면 생의 대부분을 공무원으로 있었다. 불필요한 언행을 삼가야 하는 공직자로서의 처신이 몸에 밴 듯하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모범생 티가 난다.

내무부에 오래 있었으니까 정치보다 행정이 더 익숙하고 체질에도 맞겠습니다.
“그렇죠. 업무 자체야 항상 해왔던 것이고요. 국회에 있을 때 관심을 늘 갖던 사업이기도 하니까 업무 자체가 생소한 건 전혀 없어요. 다만 모든 업무에 대해 가(可)냐 부(否)냐 결심해야 되는 심적 부담이 커요.”
국회의원 시절 이 지사는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림해양수산위, 산업자원위, 건설교통위(국토해양위)를 거쳤고, 예산결산특별위 민주당 간사를 지냈다. ‘일 잘하는 국회의원 톱10’ ‘베스트 국정감사위원’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 베스트5’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의정활동 경험이 도정을 수행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되겠네요.
“국정에 대해서 본 게 있기 때문에 도정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는 게 좋겠다, 국정과 어떻게 연결시키는 게 좋겠다, 이걸 해결하자면 국회의 어느 파트하고 협력해 나가면 될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하는 데 아무래도 도움이 됩니다.”

지사 취임 후 체면을 내던지고 열심히 뛰어 도정 사상 가장 많은 정부 예산을 확보했다고 들었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줬어요. 열심히 뛰도록 제가 오자마자 계속 독려를 했고요.”

다양한 경력을 쌓았지만 도지사 직은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100일밖에 안 됐지만 소감이 어떻습니까.
“충청북도는 현안 사업이 많습니다. 도민과 언론이 관심을 많이 갖는 사업들이 쌓여 있어서 해결하고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때보다 현안이 많이 걸려 있는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가 많이 걸려 있어서 사실 정신이 없습니다.”

가장 주력하는 현안이 무엇인데요.

[신동호가 만난 사람]‘대한민국의 당당한 중심’ 꿈꾸는 이시종 충북지사

“충북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냐를 가지고 100일 동안 고민을 하다가 잡은 게 바이오밸리와 솔라밸리입니다. 바이오산업과 태양광산업을 충청북도의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하는 거지요.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에 오송바이오밸리, 제천에 한방바이오밸리를 조성하는 마스터플랜을 지금 만드는 중이고요. 음성·증평·진천 등에는 태양광 기업이 60여개가 들어와 있습니다. 한화L&C랄지 현대중공업, 신성홀딩스 등 태양광산업의 선도 주자들이 충북에서 터를 잡아 우리나라 태양전지 셀과 모듈의 60%를 생산합니다. 이들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고 집적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태양광산업특구 지정을 받으려고 해요.”

충북도청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함께 하는 충북’ ‘대한민국의 중심 당당한 충북’이라는 도정 목표와 슬로건이다. 너무 평이하고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듯했다. 특히 ‘함께 하는’이라는 말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궁금했다.

‘함께 하는 충북’이라는 도정 목표에 대해서는 자료나 다른 인터뷰를 통해 취지를 말씀하셨는데, 빈부·연령·계층뿐 아니라 지역간 화합도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갈라진 충북을 하나로 묶어야 된다’고도 하지 않았습니까.
“북부의 제천·단양 쪽에서는 강원남도로 간다고 그래요. 남부의 옥천·영동 쪽은 대전으로 가겠다는 얘기를 많이 하죠. 그쪽은 대전 생활권이거든요.”

섭섭하거나 소외감을 느껴서라기보다 생활권이 달라서 그렇게 된 겁니까.
“생활권도 그렇고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노력도 별로 없었던 거죠. 통합이 되려면 제일 중요한 게 충북 전체를 잇는 고속도로 내지 고속화도로입니다. 충북의 시·군이 전부 서울을 향해 종으로 교통망이 발달하고, 횡으로는 엮어주는 게 없어요. 단양~제천~충주~청주~보은~영동~옥천, 이렇게 도로가 형성이 안 돼서 경제나 문화가 교류가 안 되니까 서로 남남이 되다시피 한 거죠. 그래서 충청고속화도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보려고요. 저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자동차로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게 만드는 걸 추진하고 있습니다.”
충북의 여러 현안 가운데 이색적인 것은 프로축구단 창단이다. 현재 14개 시·도가 기업구단 또는 시·도민구단 형태로 프로축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충북과 충남만 프로축구단이 없는데, 충남의 경우 현재까지는 도청소재지가 위치한 대전이 구단을 갖고 있어 충북보다는 상실감이 덜 할 것이다. 이 지사는 ‘그간 열등감에 시달려 온 156만 도민의 자긍심 고취와 화합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프로축구단 창단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고 한다.

프로축구단이 없는 것이 도민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는 일이었습니까.
“스포츠뉴스 같은 걸 보면 각 시·도의 마크를 달고 나오는데 충북만 빠져 있으니까요. 제주도도 있고 강원도도 있는데 충북만 없잖아요. 상해 있는 자존심을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좀 무리가 되더라도 해보자고 제가 공약으로 내세운 거죠. 그런데 아직은 도민 사이에 완전하게 합의가 안 된 상태로 보거든요. 찬성하는 측도 있지만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건데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는 의견도 있고 해서 연말까지 여론 수렴을 더 해서 내년도에 가서 결정을 하려고 해요.”
이 지사는 주요 현안으로 오송메디컬시티 조성,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 정리, 세종시 편입 문제, 충북경제자유구역 지정, 충청내륙고속화도로 건설, 천안~청주국제공항간 수도권전철 연장, 청주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한 항공정비·수리 및 정밀검사(MRO) 사업 유치 등을 꼽았다. 이 가운데 청원군 11개 리의 편입 문제가 걸려 있는 세종시 법적 지위에 대해 이 지사는 ‘완벽한 특별자치시’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법적 지위에 대해 ‘완벽한 특별자치시’를 주장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세종시가 완전한 광역자치단체, 정부 직할의 특별자치시, 이런 걸로 된 거죠. 그런데 국회 행정안전위 소위에서 논의됐던 것으로는 완전한 특별자치시가 아닌 쪽이잖아요. 교육감을 줄 수 없다, 경찰청을 줄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그러면 그걸 누군가가 수행해야 하는데 충남 도지사가 수행한다, 이런 식으로 대충 가닥이 잡혀 있는 상태죠. 그러면 충남도 산하의 기초자치단체지 완벽한 특별자치시가 아니잖아요. 결국 원안이 아닌 거죠. 충남이나 충북과 완전히 단절이 된 온전한 광역자치단체가 돼야 한다는 게 저희 입장이고, 그것이 전제가 될 때 청원군 편입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는 겁니다. 가긴 가지만 행정구역 통폐합 문제이기 때문에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하지 않겠냐는 게 저희 주장인 거죠.”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도 중요한 현안이지 않습니까. 안동시·안동군, 춘천시·춘성군, 강릉시·명주군 등에 비해 통합이 늦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당시 도에서도 반대를 했고, 청원군에서도 극력 반대를 했죠.”

왜 그랬습니까.
“시와 군이 통합하면 군에서 늘 반대입니다. 이를 테면 직능단체도 통합이 돼야 하는데 세가 약한 군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그 이후에도 청주시 쪽에서 통합을 시도했는데 청원군 쪽에서는 반대하고 도에서 미온적으로 나오고 해서 죽 진행이 안 됐던 거죠. 이번에 잘 될 겁니다.”

통합이 되면 청주가 도청소재지로서 세가 커질 텐데 신청사를 지을 계획이 있습니까.
“도청 청사 (신축 또는 증축) 계획은 아직 없고, 청주·청원이 통합이 되면 통합 청사를 아마 새로 만들어야 될 겁니다.”

많은 자치단체가 청사를 초호화판으로 짓잖아요. 그런 유혹이 들지 않습니까.
“현재 이 건물 가지고 쓸 생각입니다. 특별히 돈을 투자해서 초호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는데(겨우 웃음) 아직 거기다가 우리 예산을 투자할 형편이 못 됩니다.”

취임할 때 친서민·복지 정책을 특별히 강조했는데, 도정을 이끌면서 현실적인 벽에 부닥치지는 않습니까.
“내년도 무상급식을 제가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사실은 예산 규모가 만만치 않거든요. 쉽지는 않은 과제이지만 친서민·복지 부문에서 상징적으로 꼭 해야 될 사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교육청하고 각 시·군하고 비용 부담 문제를 가지고 협의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진척은 안 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초·중학생에 대해서는 무상급식이 시행되도록 노력을 할 겁니다.”

사업 계획을 보니 여성·장애인 전용 산업단지 조성이 눈길을 끕니다.
“아직 계획이 확정된 건 아닙니다. 장애인 전용, 여성 전용 산업단지를 만들어서 거기서 입주하기 쉽게 만들고 여러 가지 지원을 하면 장애인 기업, 여성 기업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해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얘기를 해본 것이죠.”

평소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가지고 있었어요. 여성·장애인 단체와 얘기해보면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협의가 안 됐지만 제목만 보고도 좋아하는 분위기거든요.”
이 지사는 선거 구호에서도 써먹었듯이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런 모습이 단지 오랜 공직생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충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동안 휴학하고 음성에 있는 금광 갱도에서 일했다. ‘소년 광부’에서 지게꾼·참외장수·농부 등을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사연이 드라마틱하다. 그의 서민정책은 이런 전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자칭 ‘서민 도지사’, 타칭 ‘칼국수 도지사’라고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공직을 그만둔 뒤 쉬운 길로만 가지 않은 그의 이력이다. 2기 충주시장 선거 때는 무소속,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열린우리당을 택했다. 관료 출신답지 않게 도전적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도지사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중도에 사퇴를 하고 도지사 선거에 나서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심을 했습니까.
“제가 내무공무원으로 출발을 해서 평소에도 한번 도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옛날에는 임명제였지만 ‘내무공무원의 꽃’이 도지사 아닙니까. 세종시라든지 충북의 큰 현안들을 해결하려면 내가 도지사 돼서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또 당에서 강력히 권유를 했죠. 세 가지가 겹쳐서 결심하게 된 겁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정치적인 수사나 제스처와는 거리가 먼 듯한 이 지사가 정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무기가 어렴풋이 짐작됐다. 서민적이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미지가 아닐까. 그것도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결과로 드러난 이미지로서 말이다.

좌우명이 ‘진실이 가장 큰 무기다’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좌우명을 갖게 되었습니까.
“공직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건데, 로비라든지 이런 것과 담을 쌓고 일로다가 승부를 본다… 진실하게 일을 열심히 하면 나중에 하늘이 알아준다는 거지요. 처세술로다가 인생을 살지 않고 일로써 업적을 남기는 게 제가 즐기는 스타일이 돼가지고 그런 좌우명을 갖게 됐습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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