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회 유토피아적 기획의 종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모두스 비벤디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한상석 옮김•후마니타스•1만원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한상석 옮김•후마니타스•1만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모두스 비벤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현대인의 불안정한 삶의 양식을 설명한 저작이다. 책 속에 표출된 문제 의식은 <액체 근대>, <쓰레기가 되는 삶들>, <유동하는 공포> 등 기왕에 국내에 번역돼 있는 그의 다른 책들과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유동한다는 것은 잡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세상은 갈수록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사회 제도는 빠른 속도로 해체되거나 소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공동체는 그 역할이 쇠퇴했다. 국가의 보호나 공동체적 유대를 상실한 개인들은 불안 속에서 끼리끼리 안전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더 큰 불안을 초래할 뿐이다. 안전망을 구축할 만한 힘이나 자본이 없는 이들은 사회에서 배제되고 분리되고 격리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쓰레기’라는 용어다. “금융과 상품 및 노동시장, 자본에 의한 근대화, 그리고 근대적 생활양식의 전지구적 확산”은 수명이 다한 제품만이 아니라 인간도 쓰레기로 만든다. 극도의 궁핍이나 극심한 내전으로 제 나라를 떠나 난민이 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난민들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 정착할 수도 없다. 선진국들이 망명 신청에 대해 점덤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단지 남아도는 존재가 아니라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비단 난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복지국가가 해체되면서 더 이상 개인의 사회적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서 장기 실업자 또한 쓸모 없는 존재다. 사회는 이들을 “오히려 없어도 사회는 잘 굴러갈 수 있고, 제거되어야 사회가 얻는 것이 있게 되는 사람들”로 취급한다.

‘유동하는 근대성’이 넘쳐 흐르는 세계에 존재하는 공포가 가장 예리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도시다. 오늘날 도시는 배제의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그 원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생활공간의 분리다. 양극화의 심화로 도시 상류층은 24시간 보안장비를 갖춘 그들만의 요새지역을 만들어 살고, 도시 하류층은 상류층이 그어놓은 장벽 바깥으로 배제된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이방인’들이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의 공포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요새에 틀어박힌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날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이제 “전 지구적으로 잉태되고 부화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뉴욕 맨해튼 거주자들을 위협하는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발원한 테러리즘이다.

저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근대사회의 유토피아적 기획이 종언을 고했다고 본다. “당신은 더 이상 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진지한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어떻게든 혼자서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안전한 곳이란 없다.” 그는 이처럼 희망 없는 세상을 ‘지옥’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그는 “지옥이라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온갖 종류의 압력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신간 탐색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