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의 그늘 ‘잠입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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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리포트

귄터 발라프 지음·황현숙 옮김·프로네시스·1만6000원

귄터 발라프 지음·황현숙 옮김·프로네시스·1만6000원

관찰은 기자의 숙명과도 같다. 기자 노동의 태반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기자의 육안과 취재원의 증언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의 일들은 간접성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마치 유리창을 통해 그 건너편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일과 비슷해서 최상의 경우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투명하게 지켜볼 수는 있지만, 그 창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생생한 공기를 느낄 수는 없다. 독일 언론인 귄터 발라프는 기자 생활 초기부터 이같은 관찰자의 숙명을 ‘언더커버 리포트’(잠입취재)라는 방식으로 돌파해 왔다. <언더커버 리포트>는 1942년생인 그가 2008년부터 2년 동안 취재한 르포 기사 일곱 개를 묶은 책이다.

발라프가 지닌 비장의 무기는 몰래카메라나 녹음기가 아니라 변장술이다. 독일 내 인종차별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그는 흑인으로 변장한다. 전문 아티스트는 전형적인 게르만인인 그를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완벽한 흑인으로 바꿔놓았다. 흑인이 된 발라프가 목격하는 것은 독일인들 사이에 만연한 인종 차별이다. 차별은 대체로 은밀하고 더러는 노골적이다. 대놓고 무시하거나 뒤에서 딴소리를 한다. 쾰른시 중심가의 한 집주인은 방을 구하러 온 발라프를 친절한 태도로 대하지만 방을 내주진 않는다. 집주인은 취재팀의 다른 구성원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저런 사람은 원하지 않아요. 전혀요. 흑인이라니까요. 아주 시커멨어요.”

콜센터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동안 겪은 일은 더욱 기막히다. 2007년 기준으로 독일에는 6000여개의 콜센터가 있다. 발라프는 이 중 두 군데 콜센터에 취업한다. 먼저 한 복권 판매업체. 이곳 텔레마케터의 임무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게 하고 자동이체 계좌번호를 알아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취업한 ZIU 인터내셔널은 독일 식당 입구에 의무적으로 걸어두어야 하는 청소년보호법 규정표를 판매한다. 업종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고객 동의 없이 수집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사기’를 치는 것이다.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돈의 최대치는 4200 유로(약 630만원)에 불과한데도 당첨금을 뻥튀기해 사람들을 꼬드긴다. 청소년보호법 규정표는 인터넷으로도 다운받을 수 있는데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당장 사지 않으면 처벌된다고 윽박지른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텔레마케팅 업체들이 고용지원센터와 연계돼 있다는 사실이다. 고용지원센터는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방편으로 실업자들에게 콜센터 일자리를 소개하고,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손쉽게 인력을 충원하는 한편 노동자 임금의 절반을 정부 보조금을 받아 지급한다.

책에 실린 다른 르포들의 파괴력도 만만치 않다. 대형마트에 빵을 납품하는 한 업체는 비위생적인 빵으로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며, 한국과 비교해 노조의 힘이 세다고 알려진 독일에서도 노조 파괴 전문 변호사들이 성업 중이다.

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자민족과 자본의 천국을 꿈꾸는 우익과 자본가들의 인권유린 위협이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엄존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세력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이든 양식 있는 시민이든 말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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