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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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 /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1만8000원

조지 오웰 지음 /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1만8000원

세상에는 수만 갈래의 길이 있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방황하게 된다. 글쟁이들에게 좌표축 구실을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글쓰는 이유다. ‘나는 왜 쓰는가.’

<동물농장>과 <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이 질문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에 실린 같은 제목의 글이 이를 웅변한다.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그를 글쓰기를 향해 밀어붙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오웰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순전한 이기심.” 한마디로 남들 앞에서 잘나 보이고 싶은 욕구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다음은 “미학적 열정.” 세상의 아름다움과 언어 자체에 내장돼 있는 미학적 특성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다. 세 번째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는 “역사적 충동”이고, 마지막이 “정치적 목적”인데, 오웰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치적 목적이었다.

오웰은 1936년 이후 10년 동안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왜 1936년인가. 1936년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해로, 오웰은 내전 당시 프랑코의 전체주의 정치에 반대하는 스페인 공화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오웰의 글쓰기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스페인 내전을 통해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확실하게 자각하면서, 그의 글쓰기는 청소년기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이기적 충동과 미학적 충동, 역사적 충동 대신 정치적 목적이라는 확고한 좌표축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오웰은 말한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치적 목적이 좌파나 좌파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또렷이 보여주는 것은 책에 실린 ‘좌든 우든 나의 조국’이라는 글이다. 오웰은 세상을 계급투쟁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던 당대 영국의 좌파 지식인들을 “너무 ‘계몽’되어서 가장 일상적인 정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 지식인”이라고 비판하면서, 당시 세력을 넓히고 있던 파시즘에 맞서기 위한 수단으로서 애국주의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한다.

오웰이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자유에 대한 억압이었다. 그가 스페인 공화군의 일원으로 전장에서 싸운 것이나 소련식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문학예방’이라는 글에서 그는 말한다. “전체주의 사회 또는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역사는, 자유의 상실이 모든 형태의 문학에 해가 된다는 점을 넌지시 말해준다.”

<나는 왜 쓰는가>는 역자가 오웰이 쓴 무수한 에세이들 중 29편을 골라 묶은 책이다. 조지 오웰을 막연히 <동물농장>과 <1984년>을 쓴 소설가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신념을 고수했던 한 깐깐한 문필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깨끗한 유리창이 될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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